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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년 12월 동래부 서목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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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XC.0000.2626-20180331.KY_X_1096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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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문서-첩관통보류-서목 | 경제-상업-공인문기
· 작성지역 동래부
· 작성시기 병신
· 형태사항 1
· 현소장처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 청구기호 1096

안내정보

병신년 12월 동래부의 훈도와 별차가 대관에게 병신년조 공목 중 일부를 지급하고 작성한 서목의 표지이다. 진상과 공무역의 대가로 지급되는 목면이나 쌀은 역관인 훈도와 별차가 대마번의 대관에게 수표로 주었다가, 훈도와 별차가 교체되는 연말에 한꺼번에 지급하였다. 즉 매달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연말에 모아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때때로 해당년도에 지급을 제대로 하지 못해 다음으로 이월되는 수도 있었다. 이 서목은 공목을 지급하고 대관에게 지급했던 수표를 되받으면서, 공목 지급 내역과 회수한 수표의 내역을 기록한 것이다.
이 문서에는 서목 표지와 함께 서목 1장, 왜관의 대관이 작성한 수표 1장이 점련되어 있다. 표지에는 '丙申條公木'이라는 제목과 함께 '六百二同 標十三丈'이 부기되어 있다. 즉 지급한 공목 액수가 602통이고, 회수한 수표가 13장이라는 의미이다.

상세정보

병신년 12월 동래부의 훈도와 별차가 대관에게 병신년조 공목 중 일부를 지급하고 작성한 서목의 표지이다. 공목은 일본과의 공무역(公貿易)에서 수입품에 대한 댓가로 지급된 목면을 말한다. 공무역은 대마번에서 수출한 물건을 조선 정부가 구입하는 무역이다. 공목(公木)은 처음에는 품질이 좋은 8승 40척의 무명으로 양끝에는 청사(靑絲)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목면의 품질이 떨어졌고, 17세기 이후 일본 국내 목면 산업이 발달하였다. 이와 같은 공목 품질의 저하와 일본 국내에서의 목면 생산 발달에 따라 일본은 목면으로 결제하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게다가 대마도에 쌀이 부족해지면서 공목 중 일부를 쌀로 지불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 결과 17세기 중반 이후 공목 중 일부를 쌀로 지급하였다.
진상과 공무역의 대가로 지급되는 목면이나 쌀은 역관인 훈도와 별차가 대마번의 대관에게 수표로 주었다가, 훈도와 별차가 교체되는 연말에 지급하였다. 즉 매달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연말에 모아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이 문서에는 서목 표지와 함께 서목 1장, 왜관의 대관이 작성한 수표 1장이 점련되어 있다. 표지에는 '丙申條公木'이라는 제목과 함께 '六百二同 標十三丈'이 부기되어 있다. 즉 지급한 공목 액수가 602통이고, 회수한 수표가 13장이라는 의미이다.
집필자 : 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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