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7년(고종 24) 윤4월에 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에서 咸悅縣監에게 보낸 關이다. 이 關은 개항이후 새로 정한 형식으로 작성되었다. 關字印을 문서의 우측여백에 찍고, '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爲'과 같이 발급관서를 적은 부분이 인쇄된 상태의 종이를 사용하고 있다.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은 1882년(고종 19) 12월에 외교통상사무를 관장할 목적으로 통리아문을 확충개편하여 만든 중앙관청이다. 咸悅 熊浦에서 영업하는 東萊 지역 담당 船旅閣主人 池永祿이 올린 所志에 의거하여 關을 보내고 있다. 池永祿이 소지에서 요청한 바는 다음과 같다.
일본 상인의 물건은 어떤 곳의 선박에 싣고 있는 것과는 상관없이, 그 일본 상인이 소속된 지역을 관할하는 船旅閣主人이 담당하는 것이 관례였다. 즉 仁川의 日商은 仁川을 관할하는 船旅閣主人이, 德源의 日商은 德源을 관할하는 船旅閣主人이 관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東萊府의 일본 상인이 북어 10여 駄를 順天 소속 선박에 싣고 順天의 船旅閣主人인 安聖信에게 정박했다. 그리고서 각 浦는 일본 상인을 관할하는 규례가 원래 없으니, 싣고 온 선박이 소속된 지역에 따라서 물건을 看檢하는 船旅閣主人을 정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池永祿은 선박이 아니라 商賈가 소속된 지역에 따라서 괄할하는 船旅閣主人을 배정하는 것이 通行之例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東萊府의 상인을 관할하는 船旅閣主人인 池永祿이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에 요청하는 바는 順天의 船旅閣主人에게 關을 보내어 더 이상 소란을 일으키지 말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요청에 의거해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은 熊浦가 소재하고 있는 咸悅縣監에게 關을 보내어 商賈에 의거하여 상인을 관할토록 하라고 지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