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분류

1888년 도당(都堂) 소임(所任) 최(崔) 등 단자(單子)

이미지+텍스트 가+ 가-

자료UCI: RIKS+CRMA+KSM-XE.1888.0000-20160331.KY_X_1220_002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문서-명문문기류-시전문서 | 경제-상업-시전문서
· 작성주체 발급 : 최(崔) , 정(鄭)
수취 : 대방(大房)
· 작성시기 1888
· 형태사항 1張 | 종이 | 한자
· 인장서명 1 (흑색, 원형)
· 현소장처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 청구기호 1220

안내정보

1888년(고종 25) 정월 일에 도당 소임인 崔○○와 鄭○○가 면주전에서 매년 도당에 지불하던 돈을 보내 달라고 대방(大房)에 청원하는 단자이다.

상세정보

1888년(고종 25) 정월 일에 도당 소임인 崔○○와 鄭○○가 면주전에서 매년 도당에 지불하던 돈을 보내 달라고 대방(大房)에 청원하는 단자이다.
이 문서를 발급한 도당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 수 없다. 통상 도당은 의정부를 지칭하지만, 문서에 찍힌 도장이나 내용을 봐서 의정부라고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면주전에서는 장사의 신인 관우를 모시는 현성묘(顯聖廟)에 올리는 제사를 주관하였다. 이 제사를 지내는 이들은 무당이었고, 이들의 거처를 도당이라고 불렀다는 점에서, 이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다음으로 대방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면주전 상인들의 집합체이면서 최고 의사 결정 기구는 도중이었다. 도중은 크게 간부들의 모임인 大房과 일반 조합원들의 모임인 裨房(혹은 卑房, 群衆)으로 구분되었다. 즉 대방은 면주전 전체를 통괄하는 조직이었다. 대방에는 면주전 전체를 대표하는 대행수 1명과 도영위, 부영위, 삼영위가 각 1명, 상공원, 하공원이 각각 1명씩 두어졌다. 대행수와 공원은 2개월마다 교대했지만, 영위는 상위자가 퇴임하면 그 자리를 채우는 형태로 승진해서 장기간 영위 직책을 담당했다. 이들 6명은 면주전의 책임 임원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로, 관청의 물품 수주와 관련된 장부나 각 조직의 자금 운영을 기록한 『전장등록』의 모든 기사 말미에 이들 6명의 서명이 기재되어 있다. 또 업무의 필요에 따라 군중행수, 난전차지 등의 직위도 마련되어 있었다. 임원들에 대해서는 다양한 형태로 수당이 지급되었다.
집필자 : 이욱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