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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면주전(綿紬廛) 제3방(後三房) 장무(掌務) 백재경(白在慶) 수본(手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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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XE.1890.0000-20160331.KY_X_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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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문서-명문문기류-시전문서 | 경제-상업-시전문서
· 작성주체 발급 : 백재경(白在慶)
수취 : 면주전 차지소(綿紬廛 次知所)
· 작성시기 1890
· 형태사항 1張 | 종이 | 한자
· 현소장처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 청구기호 1021

안내정보

1890년(고종 27) 10월 12일에 면주전(綿紬廛) 제3방의 장무(掌務)인 백재경(白在慶)이 차지소(次知所)에 올린 수본(手本)이다. 세폐(歲幣)용으로 진배할 면주(綿紬) 27필을 소속 상인에게 배정한 내역을 보고하고 있다.

상세정보

1890년(고종 27) 10월 12일에 綿紬廛 第3房의 掌務인 白在慶이 次知所에 올린 手本이다. 면주전 조직원인 都員의 집합체이면서 최고 의사결정기구였던 都中은 간부들의 모임인 大房과 일반 조합원들의 모임인 裨房으로 구분되었다. 다음으로 면주전 도중 산하에는 영업을 관리하는 각종 契조직으로, 水紬契, 吐紬契, 白絲契, 措備契, 貿紬契, 生殖契 등이 있었다. 다시 所라고 불리는 조직이 있었는데, 水紬一所나 水紬二所와 같이 契 산하의 영업조직인 所도 있었으며, 倭單所나 次知所처럼 별도의 업무를 전담했던 것으로 보이는 所도 있었다. 그러나 次知所가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담당하기 위한 조직이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영업을 하는 최하단위로서 房이 존재했다. 면주전은 第1房, 第2房, 第3房, 後1房, 後2房, 後3房, 外3房 등 7개의 방이 존재했다. 각 방에는 적게는 2명에서 20여명의 상인들이 있었다. 각 방은 같은 시전조직이라도 다른 방과는 구분되는 독립적인 회계를 지녔으며, 한 방 안에서는 기본적으로 공동구매, 공동출자, 공동회계를 하고 있었다.
白在慶은 歲幣용으로 나라에 進拜할 綿紬로 배정받은 물량인 27필을 소속 상인에게 다시 배정한 내역을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다.
- 林 : 27필.
당시 면주전은 일반 백성을 상대로 물품을 판매하는 것보다 국가 기관이나 왕실에 水紬, 吐紬, 上紬 등의 綿紬을 납품하고 그에 대한 貢價를 받는 것이 영업에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납품한 물건에 대한 受價가 현실 물가에 비해 낮게 책정되거나, 受價의 지급이 지연되어 손실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참고문헌
고동환, 「조선후기 市廛의 구조와 기능」, 『역사와 현실』 44, 한국역사연구회, 2002.
고동환, 「「개항전후기 시전상업의 변화 - 綿紬廛을 중심으로 -」」, 『서울학연구』 32,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2008.
집필자 : 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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