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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면주전(綿紬廛) 후1방(後一房) 장무(掌務) 김순희(金純熙) 수본(手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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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XE.1891.0000-20160331.KY_X_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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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문서-명문문기류-시전문서 | 경제-상업-시전문서
· 작성주체 발급 : 김순희(金純熙)
수취 : 면주전 비방(綿紬廛 裨房)
· 작성시기 1891
· 형태사항 1張 | 종이 | 한자
· 현소장처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 청구기호 1001

안내정보

1891년(고종 28) 9월 2일에 면주전(綿紬廛) 후1방의 장무(掌務)인 김순희(金純熙)가 비방(裨房)에 올린 수본(手本)이다. 후1방 소속 상인인 유○응(劉○膺)이 앞문 동쪽 네 번째 점포[房]에서 영업하고자 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상세정보

1891년(고종 28) 9월 2일에 綿紬廛 後1房의 掌務인 金純熙가 裨房에 올린 手本이다. 면주전 조직원인 都員의 집합체이면서 최고 의사결정기구였던 都中은 간부들의 모임인 大房과 일반 조합원들의 모임인 裨房으로 구분되었다. 다음으로 면주전 도중 산하에는 영업을 관리하는 각종 契조직으로, 水紬契, 吐紬契, 白絲契, 措備契, 貿紬契, 生殖契 등이 있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영업을 하는 최하단위로서 房이 존재했다. 면주전은 第1房, 第2房, 第3房, 後1房, 後2房, 後3房, 外3房 등 7개의 방이 존재했다. 각 방에는 적게는 2명에서 20여명의 상인들이 있었다. 각 방은 같은 시전조직이라도 다른 방과는 구분되는 독립적인 회계를 지녔으며, 한 방 안에서는 기본적으로 공동구매, 공동출자, 공동회계를 하고 있었다.
후1방의 掌務인 金純熙가 보고하는 바는 후1방 소속 상인인 劉行首膺이 前門 동쪽 네 번째 점포[房]에서 영업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면주전 후1방은 종로의 큰 길 뒤쪽에 난 피맛길 건너편에 있었고, 동쪽과 서쪽에 각각 8개의 방과 남쪽에 5개 방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참고문헌
고동환, 「조선후기 市廛의 구조와 기능」, 『역사와 현실』 44, 한국역사연구회, 2002.
고동환, 「「개항전후기 시전상업의 변화 - 綿紬廛을 중심으로 -」」, 『서울학연구』 32,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2008.
집필자 : 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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