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고종 32) 7월 23일에 綿紬廛이 進排할 綿紬 가운데 後一房이 매입할 물량을 卜定한 내역을 정리한 成冊이다. 綿紬廛의 장부에는 行首나 十坐와 같은 임원직을 맡고 있는 상인의 이름은 '太十坐亨'과 같이 이름자의 한 글자를 생략하고 표기한다. 면주전의 구성원은 혈연적 유대가 강한 친족이 많기 때문에 생략한 이름자는 친족끼리 생략하는 돌림자였을 것이고, 이를 생략해도 이름을 식별하기에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後一房의 掌務인 劉泰完과 首座인 太十坐亨이 서명하고 있다. 後一房이 매입해야할 綿紬의 물량은 총 3동 10필이고, 가격은 매필당 45냥으로 책정하여 총 8100냥이다. 이를 소속 상인에게 다시 분정한 내역은 다음과 같다.
- 太十坐亨 : 70필, 3150냥.
- 劉十坐膺 : 70필, 3150냥.
- 劉十坐晳 : 40필, 1800냥.
後一房을 포함해 세 개의 房에 분정한 물량의 가격은 총 22500냥이다. 처음에는 이상과 같이 분정했으나, 7월 28일에 劉十坐晳이 매입해야 하는 山紬를 20필을 면제해 주는 등 9월 10일 까지 총 6차례에 걸쳐 소속 상인에게 배정한 물량을 면제해 주었다. 그로 인해서 부족한 자금은 倭單所에서 받아서 사용했다고 하고 있다.
참고문헌
고동환, 「조선후기 市廛의 구조와 기능」, 『역사와 현실』 44, 한국역사연구회, 2002.
집필자 : 명경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