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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면주전(綿紬廛) 황태후육순상휘호칭경 진하사방물 진헌 수가초책(皇太后六旬上徽號稱慶陳賀使方物進獻受價草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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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XG.1894.0000-20170331.KY_X_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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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차하기 | 경제-회계/금융-차하기
· 작성시기 갑오 사월 일(1894)
· 형태사항 10張 | 종이 | 한자
· 현소장처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 청구기호 722

안내정보

이 장부는 1894년 면주전에서 청나라 황태후 육순을 기념하여 휘호를 올린 것을 축하하는 진하사의 方物로 進獻한 綿紬 2통 20필에 대한 정부의 지급 액수 및 그에 따른 지출 내역을 1차로 정리한 것이다. 겉표지에는 "甲午四月日皇太后六旬上徽號稱慶陳賀使方物進獻貳同貳拾疋受價草冊"이라고 제목이 적혀있다.
제목 오른편에는 정부로부터 쌀을 지급받으면서 사용한 제용감 分文 등의 인정 지출 내역과 함께, 인정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한 내역이 기록되어 있다. 숫자 부분에 오류를 바로 잡은 것과 붉은 색으로 확인한 흔적이 있다. 또 '準'라는 숫자와 함께 '謄書'라고 붉은 글씨가 적혀있다. '준'이라는 것은 장부 정리에 문저가 없다는 것이고, 등서는 베껴 적으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본문에는 정리 과정에서 잘못되어 고치거나 지운 부분이 있다. 또 군데군데 지출액 부분에 붉은 색으로 표시하거나 지출 내역에 점을 찍은 부분이 있다. 계산의 오류를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제목 뒷장인 2쪽에는 면주전으로부터 인정 67냥 7전 2푼을 받았음을 확인하는 전례방집리 辛○의 수결이 붙어있는 문서가 첨부되어 있다. 오좌 오○업이 인정을 전달했기 때문에, 배달사고가 없었음을 확인하기 위해 붙여놓은 것 같다.
이 장부는 크게 3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있다. 앞부분은 수입과 지출 내역을 정리한 것으로, 지불 댓가는 화폐 1,280냥, 米 160석이었고, 면주전은 정부로부터 받은 돈과 쌀을 방매하여 얻은 돈을 합쳐 총 6,967냥 1전 8푼의 수입을 얻었다. 이후 방물로 진헌한 면주의 원가와 시전 분아, 각종 인정 및 잡비, 보폐소의 재정 결손 충당 등으로 9,435냥 5전 3푼을 지출하여 2,468냥 3전 5푼의 적자를 보았다. 이는 1893년 동지사 진헌시 남은 617여 냥과 보용소로부터 1,850여 냥을 대출하여 충당하였다.
중간에는 '戊子十月日方物三起進獻紬七同十疋受價'라는 제목으로 첨부되어 있는 문서이다. 1888년 방물로 진헌한 면주 7통 10필에 대해 정부에서 쌀로 지급한 것을 환전하여 얻은 소득을 대략 정리한 것이다. 이 내용은 장부와 전혀 관계가 없는데 첨부되어 있다.
마지막은 각종 인정으로 사용한 비용을 기록한 후록이다. 제용감 分文, 房納, 前例房執吏, 井間色, 公事掌務, 支調色計士, 兩郞廳色驅, 使喚 등에게 지급한 비용 등이 들어있다. 아울러 이 비용을 마련한 방법과 지불한 상인의 이름도 기록되어 있다. 인정으로 총 324냥 2전 9푼을 지출하였다.

상세정보

수가책은 면주전 등이 정부에 면주를 진배한 이후 그 대가를 받은 시점에서의 입금액과 목적별 지출을 기록한 것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이전의 장부가 초책이다. 장부에서 수입은 上下(차하로 읽음), 지출은 上用으로 표현했다.
수가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가와 지출에 관한 절차를 우선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용되는 용어도 알아야 한다. 수가책의 기재내용에 따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순서로 수가 절차가 진행되었다.
① 대가의 수취(受價) : 납입 품목별로 1필당 공정납입가격이 정해져 있어, 그 가격에 따라 돈, 무명, 쌀을 지급받았다. 면주 1필에 대한 무명, 쌀의 교환비율은 시세와는 별도로 공적으로 정해진 가격이 있었다. 그리고 대가를 지급받을 때는 관의 창고 관리에게 人情米 몇 석을 건넸다. 이렇게 해서 수취한 동전, 무명, 쌀 등의 종류와 수량을 적었다. 무명과 쌀을 판매해서 현금화하고, 시세에 따른 作錢 비율과 현금화된 입금 총액을 기입하였다. 여기에서 사전에 들어간 잡비를 공제하고, 다시 세폐 납입과 관련된 관리, 군인 등에게 지급하는 인정을 대략 수가총액의 10% 정도 공제한다. 이외에 염색과정에서 들어간 공전이나 인정도 제외하며, 세폐 납입이나 대가를 수취할 때의 짐꾼들에게 들어가는 비용 역시 공제하였다. 또 大房이나 영위, 수가차지와 같은 면주전 임원들에게 할당되는 추가이익 부분도 공제하였다. 이와 같은 다양한 비용을 공제한 실수입을 확정해서 기재하였다. 통상 인정이나 운반 금액의 상세한 내역은 항목별로 명기해서 후록에 기재하며, 앞부분에는 합계만 기록하는 경우가 많다.
② 면주의 조달 : 납입용 면주 1필의 구입가격을 결정한다. 품질, 시가에 따라 약간의 변동이 있다. 면주 조달에 드는 비용을 本色이라고 한다.
③ 분배 : 수가하면 면주전 소속 상인들에게 이익을 분배한다. 통상 대가는 화폐와 면포로 지급되었는데, 화폐의 지출에 대해서는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 면포는 화폐로 바꾼 다음, 면주전 소속 상인들에게 분배한다. 면주전에 정식으로 출전한 상인뿐만 아니라, 사망한 시전 상인, 공깃(空衿: 구체적으로 어떤 상인을 말하는지 알 수 없음)으로 표현된 시전 상인, 시전 소속 상인은 아니지만 면주전의 점포에서 영업을 하는 출시인에게도 이익의 일부를 배분하였다. 이들에게는 모두 동일한 액수를 지급하였다. 1깃이나 반깃도 같은 액수를 분배하였다. 반면 未參人, 즉 세폐 진배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시전상인의 경우는 이들보다 훨씬 작은 액수만 분배받았다.
이렇게 분배가 끝나고 남은 액수와 공깃 몫으로 분배된 액수를 합하여, 세폐를 진배하는 데 들어간 원가를 보상해주고 있다. 그리고 남는 돈은 보용소의 수입으로 기록하였다.
수가책에 나오는 보용소는 면주전 전체의 주요한 운영 자금을 관리한 재무담당 조직이다. 왜단소는 왜인 예단을 조달, 납품하는 조직이다. 명치유신 이후 왜인 예단은 폐지되지만, 재무조직으로 존속했다.
이 장부는 1894년 면주전에서 청나라 황태후 육순을 기념하여 휘호를 올린 것을 축하하는 진하사의 方物로 進獻한 綿紬 2통 20필에 대한 정부의 지급 액수 및 그에 따른 지출 내역을 1차로 정리한 것이다. 겉표지에는 "甲午四月日皇太后六旬上徽號稱慶陳賀使方物進獻貳同貳拾疋受價草冊"이라고 제목이 적혀있다.
제목 오른편에는 정부로부터 쌀을 지급받으면서 사용한 제용감 分文 등의 인정 지출 내역과 함께, 인정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한 내역이 기록되어 있다. 숫자 부분에 오류를 바로 잡은 것과 붉은 색으로 확인한 흔적이 있다. 또 '準'라는 숫자와 함께 '謄書'라고 붉은 글씨가 적혀있다. '준'이라는 것은 장부 정리에 문저가 없다는 것이고, 등서는 베껴 적으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본문에는 정리 과정에서 잘못되어 고치거나 지운 부분이 있다. 또 군데군데 지출액 부분에 붉은 색으로 표시하거나 지출 내역에 점을 찍은 부분이 있다. 계산의 오류를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제목 뒷장인 2쪽에는 면주전으로부터 인정 67냥 7전 2푼을 받았음을 확인하는 전례방집리 辛○의 수결이 붙어있는 문서가 첨부되어 있다. 오좌 오○업이 인정을 전달했기 때문에, 배달사고가 없었음을 확인하기 위해 붙여놓은 것 같다.
이 장부는 크게 3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있다. 앞부분은 수입과 지출 내역을 정리한 부분이고, 중간에 1888년 정부로부터 쌀을 지급받은 내역과 그것을 화폐로 전환하여 처리한 내역이 첨부되어 있다. 이 장부와 관련이 없는데 첨부되어 있다. 뭔가 오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은 각종 인정 등으로 지출한 부분을 정리한 후록이다.
① 1894년 면주전에서 방물로 진헌한 綿紬 2통 20필에 대한 정부의 지급 총액과 지급 방식, 그리고 지출 내역을 정리한 부분이다.
가. 정부의 지급 방식 및 지급 총액 : 정부에서는 면주전이 1894년 진헌한 綿紬 2통 20필에 대해 몇 차례에 걸쳐 나누어 지급하였다. 정부에서는 면주 1필당 下地木 8疋씩 계산하여 19통 10필을 지급하되, 다시 하지목 1필 당 돈 2냥씩 계산하여 총 1,920냥을 지불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실제 지불은 2/3는 화폐 1,280냥, 1/3은 화폐 4냥을 米 1석으로 환산하여 160석을 지급하였다. 면주전에서는 정부로부터 받은 돈과 쌀을 방매하여 얻은 돈을 합쳐 총 6,967냥 1전 8푼의 수입을 얻었다.
나. 지출 내역
1. 진헌 면주 원가 지불 : 면주전에서 진헌했던 면주에 대한 가격을 지불했다. 2통 20필과 함께 각종 인정 등으로 사용된 4필을 합한 총 2통 24필에 대해, 1필 당 40냥씩 총 4,960냥을 지불했다.
2. 후록에 정리된 각종 인정 : 324냥 2전 9푼
3. 수가 이전에 다양한 지출로 사용한 돈 : 200냥
4. 시전상인 분아 : 2,348냥
5. 보폐소 재정 결손 충당 : 500냥
6. 보폐소 대출금 상환 : 782냥
6. 각종 잡비 지출 : 287 여냥
다. 결산 후 남은 돈 처리 : 총 지출 9,435냥 5전 3푼으로, 2,468냥 3전 5푼의 적자를 보았다. 이는 1893년 동지사 진헌시 남은 617여 냥과 보용소로부터 1,850여 냥을 대출하여 충당하였다. 이처럼 보용소로부터 대출을 받아야 할 정도로 재정 적자가 심한데도 불구하고, 진헌에 쓴 면주 가격을 16냥에서 40냥으로 증액하여 지불하였고, 아울러 시전 상인들에게 분아도 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지출이 갖는 의미에 대해 고찰할 필요가 있다.
② '戊子十月日方物三起進獻紬七同十疋受價'라고 제목이 붙어 첨부되어 있는 문서이다. 1888년 방물로 진헌한 면주 7통 10필에 대해 정부에서 쌀로 지급한 것을 환전하여 얻은 소득을 대략 정리한 것이다. 미곡을 총 240석을 지급받았는데, 전례방집리, 정간색, 공사장무, 별영집리와 사환, 고직 등에게 인정으로 12석 5두 4승을 지급하고, 실제로는 227석 여를 지급받았다. 이를 미곡 1석당 15냥 5전의 가격으로 방매하여 총 3,518냥 5전의 화폐를 얻어 보용소와 왜단소에 절반씩 비축했다는 내용이다. 이 내용은 장부와 전혀 관계가 없는데 첨부되어 있다.
③ 각종 인정으로 사용한 비용을 기록한 후록이다. 제용감 分文, 房納, 前例房執吏, 井間色, 公事掌務, 支調色計士, 兩郞廳色驅, 使喚 등에게 지급한 비용 등이 들어있다. 아울러 이 비용을 마련한 방법과 지불한 상인의 이름도 기록되어 있다. 인정으로 총 324냥 2전 9푼을 지출하였다.
집필자 : 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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