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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2월 19일 청국 예부(禮部)에서 조선 국왕 고종 앞으로 보낸 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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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XJ.1867.0000-20180331.KY_X_0906_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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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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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외교문서류-외교문서 | 정치/행정-외교-외교문서
· 작성시기 경응 3(1867)
· 형태사항 1張 | 종이 | 한자
· 현소장처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 청구기호 906

안내정보

1867년 2월 19일 청국 예부(禮部)에서 조선 국왕 고종 앞으로 보낸 자문으로, 다섯 가지 신문지 보도 내용을 통해 프랑스와 일본의 군사 동향과 조선 정벌 시기, 영국 등의 반응을 전하고 있는 문서이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867년 2월 19일 청국 예부(禮部)에서 조선 국왕 고종 앞으로 보낸 자문이다. 내용은 크게 두 개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청국 총리아문에서 상하이(上海)와 톈진(天津)의 통상대신과 총세무사로부터 얻은 정보로, 일본이 군함 80여 척을 준비하여 조선을 정벌하러 떠난다는 소식이 신문지에 게재되었다고 했다. 이에 조선 국왕이 이 사실을 조사해 보고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는 내용을 청국 황제에게 상주한 접(摺)의 내용이다. 아울러 신문지를 통해 파악한 5가지 정보를 하나씩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기사는 프랑스와 일본의 군사 동향과 조선 정벌 시기, 영국 등의 반응 등이 주요 내용을 차지하고 있다.
첫 번째 내용은 일본의 객인 야도 준슈쿠(八戶順叔)의 전언으로 일본이 80여 척의 군함을 준비하여 조선을 토벌하려는 뜻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대에 신공황후(神功皇后)가 신라를 비롯한 3국을 정벌한 이래로, 조선이 5년에 한 번씩 도쿄로 와서 대군에게 조공을 바쳐오다가 이를 끊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 책임을 묻기 위해서 출병한다고 했다. 두 번째 내용은 프랑스와 일본의 병력 출동에 대한 것이었다. 현재 날씨가 추워져서 프랑스가 군사 활동을 중단하였는데, 봄이 되고 날씨가 풀리면 다시 출병할 것이라 했다. 이 때 일본도 병력을 일으킬 것이라고 전했다. 세 번째 내용은 에도(江戶)의 준수하고 영민한 자제들이 영국에 가서 유학을 하면서 언어와 문자에 능통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가운데 나카하마 만지로(中濱萬次郞)의 존재를 특별히 거론했다. 그는 영민하고 기계에 재주가 있었는데 중국 상하이(上海)에 가서 화륜선을 제조할 정도였다고 한다. 현재 일본 내 260명의 제후와 함께 무비(武備)와 국위 선양에 힘쓰고 있는데, 군사를 일으켜 조선을 토벌할 계획이 있다고 했다. 네 번째 소식은 중국 지푸(芝罘)에서 온 소식으로, 화륜선이 조만간 그곳을 경유하여 조선을 조사하러 간다는 내용이다. 다섯 번째 내용은 영국 신문지에 실린 기사를 전하는 것이었다. 영국 군주는 프랑스와는 달리 조선을 공격할 의사가 없으며, 선박이 조선으로부터 피해를 입기는 했으나 추호도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자문과 다섯 가지의 신문지 기사 내용은 󰡔同文彙考󰡕 卷3 「洋舶情形」 '禮部知會鈔錄新聞紙咨'에도 수록되어 있다. 문서 내용은 조선 정부에서도 한 달 후인 3월 초에는 이미 받아서 파악을 하고 있었으며, 여기에 입각하여 일본 측에 청국 예부에서 보내온 내용의 사실 여부를 문의하는 서계를 보냈다.
집필자 : 박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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