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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마 교사쿠(前間恭作, 1868-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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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소개
마에마 교사쿠(前間恭作, 1868-1942)는 대마도(對馬島) 출신의 한국어학자로서 1894년에 조선의 영사관(領事館)에 서기(書記)로 부임하였다. 후에 조선총독부의 통역관으로 재직하였으며, 재직 기간 동안 조선의 고서(古書) 수집과 연구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한국어 및 고서 서지학 분야에 있어서 상당한 학문적 식견을 갖춘 학자로 평가를 받는다. 조선에 머무는 동안 자신의 학문 분야와 관련한 상당량의 고서를 수집하였으며, 일본에 귀국한 후 두 차례에 걸쳐 동양문고에 일괄 기증하였다. 그가 기증한 한국 고문헌의 규모는 854종 2,478종에 달한다. 저서로는 자신이 수집한 서적에 대한 목록인 『재산루수서록(在山樓蒐書錄)』과 열람한 서적에 대해 간략한 해제를 기록한 『고선책보(古鮮冊譜)』가 있다.
한국에서의 활동과 고문헌 수집
마에마는 1891년 24세의 나이에 유학생의 신분으로 조선에 건너왔다. 3년 후인 1894년부터 영사관에 서기로 부임한 이후 주로 외교 문제를 담당하는 통역관으로 근무하였다. 이후 1911년 4월에 사임을 하고(『조선총독부관보』 제 177호, 1911년 4월 6일 발행) 일본으로 돌아갈 때까지 약 20년의 긴 기간 동안 조선에 머물렀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는 자신이 수집한 대부분의 책에 보라색 스탬프를 찍어 수득(收得) 일자를 기록해 두었다. 가장 이른 시기는 1892년 1월 7일로 확인되는데, 이를 통해 그의 한국 고문헌 수집이 조선에 건너온 직후부터 시작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날 날짜로 찍혀 있는 책은 『역어류해(譯語類解)』, 『역어류해보한언문(譯語類解補漢諺文)』, 『비소기(悲笑記)』 등이다.
『비소기(悲笑記)』/ 동양문고 소장
K. Mayema Jan. 7 1892 라고 찍힌 스탬프인이 선명하다. 날짜를 바꿔가며 사용할 수 있는 스탬프를 이용했던 듯하다.
이밖에 날짜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검토해 보면 몇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 그가 일본으로 돌아간 1911년까지 자료 수집이 지속적으로 이루어 졌다는 점이다. 둘째, 그가 일본으로 돌아간 시점이 분명치는 않지만 1911년 9월 2일과 3일에 수득한 것으로 확인되는 자료들이 상당수라는 점이다. 이는 마에마가 자신의 귀국 일정을 전후해서 많은 수의 책을 집중적으로 사들였을 가능성을 말해준다. 셋째, 귀국 이후에 구입한 것으로 확인되는 자료들의 수도 제법 많다. 이는 그가 귀국 후에도 계속해서 한국 고문헌 수집에 공을 들였음을 말한다.
마에마는 1909년에 설립된 조선고서간행회(朝鮮古書刊行會)의 제1기 멤버로도 활동하였다. 1기 멤버들은 1909년부터 1910년까지 활동했는데, 당시 그의 직책은 통감부 통역관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가 이미 20여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조선에서 생활을 했고, 한국어에 능통했으며, 고문헌을 적극적으로 수집했다는 이력을 감안한다면 이는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911년부터 1918년까지 활동한 제2기 멤버에는 그의 이름이 빠져 있는데, 이는 그가 1911년 조선에서의 임기를 마치고 귀국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제1기로 함께 활동했던 아사미 린타로(淺見倫太郞, 1869-1943), 아유까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 1864-1946)과는 지속적으로 교유를 이어나갔으며,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 1882-1944) 등의 학자와도 수십 년에 걸친 학문적 교류가 있었다.
동양문고의 마에마 컬렉션
마에마 컬렉션은 동양문고의 한국 관련 장서 가운데 단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일반적으로는 자호(自號)인 ‘재산루(在山樓)’를 따서 재산루장서(在山樓藏書)라고 부른다. 마에마는 1924년과 1942년,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이 수집한 한국 고서를 동양문고에 기증하였다. 1924년에는 생전에 자신이 직접 기증한 것으로서 423종 1,764책 규모이다. 1942년에는 사후(死後)에 유족들이 기증한 것으로서 431종 714책 규모이다. 이를 모두 합치면 854종 2,478책에 달한다.
마에마 교사쿠가 사용한 장서인 2종, 在山樓蒐書之一(좌) / ま邊滿(우)
왼쪽 장서인을 주로 사용하였다. 우측 장서인은 편지를 봉할 때 사용했던 투서로 보인다.
동양문고의 기록에 따르면 마에마의 1차 기증은 1924년 3월 25일에 이루어졌다. 동양문고가 1924년 11월에 개관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문고의 설립 과정에서 마에마가 수집한 책들을 개관과 함께 확보하고자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시라이 준(白井順) 선생의 연구에 의하면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인해 많은 문헌이 소실되었음을 우려한 시라토리 구라키치(白烏庫吉, 1865-1942)가 마에마 쿄사쿠에게 동양문고에 장서를 기증할 것을 권하였고, 이듬해에 실제 기증을 진행했다고 한다. 이후 1942년 세상을 떠난 후에 나머지 책들이 유족들에 의해 기증되었다.
마에마는 자신이 직접 수집하거나 다른 이들을 통해 열람한 책에 대해 비망록(備忘錄) 형태의 메모를 남겨두었다. 마에마 생전에 미처 간행하지 못했던 원고본이 동양문고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그의 사후 동양문고의 노력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 그 책이 바로 한국 고문헌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초기 해제집으로 평가받는 『고선책보(古鮮冊譜)』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