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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고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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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악보”의 명칭과 범주
현재까지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종류의 옛 악보들이 전하고 있다. 이 악보들은 통상 ‘고악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데, 고악보의 개념이나 범주는 다소 모호하다. 여기에는 ‘옛 음악을 담고 있다’, ‘악보 표기 방식이 옛날 방식이다’, ‘시기적으로 과거에 제작되었다’ 등의 여러 함의가 있겠지만 어떤 명확한 선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첫째, 고악보를 옛 음악을 담고 있는 악보라고 본다면, 우리의 음악은 옛 음악과 지금 전승되는 음악에 명확한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작곡가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이 아니고, 기존의 음악이 끊임없이 변화되고 새로운 모습으로 구축되면서 전승된 음악이기 때문에, 옛 음악이라는 정의는 전통음악에서 적절하지 않다.

둘째, 표기방식(기보법)이 옛날 방식으로 되어 있는 악보를 고악보라고 한다면, 그것은 오선보로 되어있지 않은 악보를 지칭하는 것이 되겠지만, 현재도 많은 음악들에 고유한 정간보가 사용되고 있고 시조창 같은 경우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기보양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셋째, 시기적으로 과거에 제작된 악보를 고악보라고 한다면, 대략 구한말 이전에 만들어진 악보를 고악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오선보가 광범위하게 쓰인 일제강점기까지도 옛날 방식대로 악보를 제작해서 남겨놓고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이런 모호함 때문에 고악보는 편찬시기, 기보법, 수록악곡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하게 되며, 대략 일제강점기이전에 편찬되고, 오선보가 아닌 방식으로 기보되며, 오늘날 전승되는 전통음악 악곡들을 담고 있을 때 이를 고악보로 지칭하게 된다.
악보 기록의 역사
오늘날 우리의 고악보는 약 130여 본이 전하고 있으며, 그중 연대가 확실한 악보는 약 20여 본이 있다. 하지만 명확한 연대표기가 없다고 해도 악보의 대략적인 연대추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연대추정은 악보에 수록된 악곡명, 기보방식, 선율비교를 통해서 비교적 정확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15세기에서 19세기로 갈수록 악보에 수록된 악곡들이 달라지고, 기보방식도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또한 옛 악보들에서 같은 제목의 악곡도 시대에 따라 선율이 조금씩 변화하는데, 거의 예외없이 후대로 갈수록 선율에서 음표수가 증가한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악보의 연대가 추정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에서 악보에 대한 기록은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116년에 송나라에서 대성아악이 수입될 때 악보가 같이 수입되었고, 고려 말까지도 문집기록에는 악보가 존재했음을 시사하는 구절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현재 고려시대의 악보는 전하고 있지 않으며, 현재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악보는 『세종실록 악보』이다.(조선왕조의 실록 중에서 유독 『세종실록』과 『세조실록』에는 악보가 포함되어 있다) 이 악보는 우리의 고유한 정간보를 발명해서 적용시킨 악보인데, 악보체제의 합리성이나 정확성에 있어서 당시 중국이나 서양에 비해 우수한 기보체계로 인정받고 있다. 이를 좀 더 합리적으로 개선한 것이 『세조실록 악보』이다.
고악보의 분류
고악보는 다양한 분류체계에 의해 분류될 수 있지만, 편찬목적과 편찬주체에 따라 관찬악보와 민간악보로 분류할 수 있다. 관찬악보는 말 그대로 국가에 의해 공식적으로 편찬된 악보이고 이는 국가의 중요한 음악들을 잘 기록ㆍ전승하기 위한 목적에 의해 편찬된 것들이다. 여기에는 조선전기의 『세종실록 악보』, 『세조실록 악보』, 『시용향악보』, 조선후기의 『대악후보』 등이 있다. 관찬악보는 그 편찬목적에 충실하기 위해 비교적 명확한 음악전승을 위해서 정간보를 사용하며 정간 안에 음표를 표기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들 외에 현재 전하는 대다수 악보는 민간악보인데, 이는 다시 어떤 악기를 위한 악보인지에 따라 세분된다. 가장 많이 전하는 악보는 거문고 악보이고, 다음이 양금 악보이다. 거문고와 양금 악보가 거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소수의 가야금, 대금, 비파, 칠현금, 생황 등 악보들이 전하고 있다. 악보의 판본은 일부 목판으로 찍어낸 악보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악보는 필사본의 형태로 전한다. 악보의 대부분은 임진왜란 이후 조선후기에 편찬되었으며, 18세기까지는 거문고 악보가 주를 이루었으나 19세기 들어서면서 양금 악보가 다량으로 편찬되었다.
악보에서는 기보법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는데, 마치 말을 문자로 표기하는 방식이 다르듯이 음악을 시각적으로 표기하는 방식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흔히 서양음악은 오선보로 표기하고 우리음악은 정간보로 표기한다고 알지만, 오선보와 정간보는 일대일 대응관계에 있지 않다. 정간은 음표를 표기하는 공간의 의미이고 그 안에 어떠한 방식의 음표를 표기해 넣을 것인가에 따라 기보법은 달라진다. 즉 정간 안에 음표를 ‘율명’을 넣을 것인가, 음들의 상하관계를 지시하는 표기를 넣을 것인가, 연주기호를 조합한 방식인 ‘합자보’를 넣을 것인가, 음고와 연주기호가 혼합된 ‘구음 전통음악에서 악기소리를 모방해서 표현한 의성어지만, 단순한 의성어를 넘어서서 악기의 연주법과 음정관계까지 지시한다. 예를 들어 거문고에서 ‘둥’이라는 구음은 거문고 셋째줄을 왼손 검지를 눌러서 내는 소리를 지시하지만, 의성어임과 동시에 왼손주법을 지시함과 동시에 ‘당’이라는 구음의 완전4도 아래 음을 나타낸다.
’을 넣을 것인가, 아니면 이들을 함께 병기할 것인가는 악보에 따라 차이를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고악보 편찬동기
우리의 고악보를 바라보는 태도에 있어서 매우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관찬악보를 제외한 대부분 민간악보의 편찬동기는 음악의 정확한 재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으면 우리의 고악보와 기보법이 ‘불완전’하고 서양 오선보에 비해 ‘원시적’이라는 편견을 갖게 된다. 서양의 오선보는 작곡가에 의해 창작된 음악의 정확한 재현을 목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의 정확성을 위해서 후대로 갈수록 많은 보완을 거치면서 ‘발전’해왔다. 하지만 우리의 고악보는 정확한 음악재현이 목적이 아니라 연주자의 기억을 돕고 학습자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서 편찬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보니 후대로 갈수록 사용자 편의성이라는 기준에 부합하는 형태로 변모하게 된다.

예를 들어 16세기 거문고 악보는 비교적 많은 정보를 악보에 담았고 이로 인해 음악 재현에 수월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점점 악보에서 정보의 수를 줄여가고 합자기호를 비롯한 음표 표기방식이 점점 단순해진다. 19세기가 되면 아예 복잡한 합자보를 사용하지 않고 단순한 구음만을 표기하는 형태로 변모한다. 이것은 얼핏 보면 서양의 기보법 발전과정과 정반대의 양상처럼 보인다. 후대로 갈수록 기보방식이 단순해지고 음악재현의 측면에서 후퇴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사용자 편의성에 충실하면서 악보에서 쓸모없는 부분을 제외시키고 필수적인 정보만을 남겨놓는 방식으로 ‘발전’한 것에 해당한다.

악보 편찬 동기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지 않은 채 우리의 악보가 정확성이 떨어지는 미발달의 기보방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형적인 서구중심적 편견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우리의 악보는 가독성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빨강, 파랑 등의 색깔을 이용해서 음표·선율 표기의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아서, 악보의 실제 모습은 대단히 화려한 모습을 보인다.
고악보 음악의 복원
많은 고악보 음악들이 오늘날 ‘복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여러 음악가들이 15세기 음악이나 18세기 음악의 복원에 관심을 갖고 있고, 일부는 이미 여러 차례 <복원연주회>라는 이름으로 무대화되기도 했다. 사실 고악보의 음표를 해석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우리의 음악에서는 어떤 음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음을 끊임없이 밀고 당기고 흔드는 움직임 처리를 하게 된다. 이 움직임을 ‘시김새’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문제는 대부분 고악보에서 이런 시김새 표시가 불분명하거나 오늘날과 다른 방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시김새 외에도 리듬 해석의 어려움도 적지 않아서, 옛 음악 복원은 여전히 난제로 남아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