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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사 연구와 고문서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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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활용의 방향과 가능성
현재까지의 한국경제사 연구에서 고문서를 통해 경제생활의 역사에 접근한 방법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문서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의 전후 관계와 맥락을 짚어 냄으로써 당대인의 경제생활을 미시적으로 속속들이 파악해 내는 것이다. 이를 테면, 특정 가문에서 행한 일상생활에서의 경제적 측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집안에서 남긴 각종 서책, 즉 문집이나 일기를 포함한 자료들만을 통해서도 대강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겠지만, 구체적으로 재산의 변동 상황이나 각종 거래의 내역 등을 정밀하게 추적하기 위해서는 고문서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고문서가 현존하지 않는 상황에서 고문서를 등초(謄抄)한 기록이라도 확인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인 경우가 많다. 아무튼 고문서 또는 고문서 관련 정보가 전혀 남아있지 않다면 당대인의 실상에 구체적으로 근접하였다고 단언하기 어려울 것임에 틀림없다.

다른 하나는 특정 유형의 문서 집단으로부터 경제학적 분석에 유용한 정보만을 필요에 따라 발췌하여 집계(aggregation)하거나 추세(trend)를 파악하는 ‘추출’의 방법으로서, 통계 분석을 수행함으로써 신뢰할 만한 추정치(estimate)를 확보하는 과정에 해당한다. 하지만 고문서는 그 특성상 파편화된 형태로 발견되기 쉽기 때문에, 여러 시기에 대해 여러 지역에 걸쳐 발견되는 단편적인 고문서를 그 유형 및 유래나 작성자의 식별 등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묶어 하나의 데이터베이스(database)를 구성하여 분석하는 것은 무모한 접근법인 경우가 많다. 전근대 자료에 대해 숫자가 가지는 의미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하게 통계 처리하는 것은 의미 없는 논의만 양산할 뿐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계량 분석의 결과에서 근대경제학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일관성(consistency)이 확보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쉽게 깨어질 수 있는 허상일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분석에 사용한 개별 변수에 대한 이해 없이 해석된 결과에서는 우연과 필연을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조영준(2011: 283)에서 지적한 바 있듯이, 잘 정비된 집계 변수라고 하더라도 역사통계는 근대통계와 달리 단순한 해석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물며 이질적인, 게다가 어느 정도 이질적인지도 전혀 알 수 없는 정보를 취합하여 분석하는 것은, 당대의 경제 실상에 다가가는 데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문서가 생산된 배경이나 맥락이 이해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문서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문서를 활용할 수 있는 폭도 좁아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하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古文書)』는 그 수집 경위가 밝혀지지 않은 것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특정 지역에 편중되거나 특정 유형의 문서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러한 경향이 왜 어떻게 발생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 없다. 그러므로 그런 문서의 표본 수를 점점 늘려 가면서 대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을 내세우며 이런 저런 평가를 하는 것은 조선 시대 경제의 실상과는 괴리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적절한 더미 변수(dummy variables)를 적용할 수 없는 경우에는 더욱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고문서가 그런 특징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유의미한 결론을 낳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가능성 있는 유형으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규장각의 『장토문적(庄土文績)』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의 『고문서집성(古文書集成)』이다. 『장토문적』은 조선 왕실 자료의 대표적 소장처인 규장각의 ‘성책고문서(成冊古文書)’이다. 굳이 ‘성책고문서’라고 부르는 이유는, 지역별・소유자별・재산별로 문서가 잘 분류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태의 문서 군에서는 ‘연결문서’가 손쉽게 확보된다. 이미 30년 전에 알려진 자료이지만, 일부 자료만 분석되었을 뿐 여전히 연구자의 분석을 기다리고 있다(조영준 2013: 510-512).

『고문서집성』은 민간의 각 가문에서 보유한 문서를 기증 또는 기탁한 것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장토문적』과 마찬가지로 ‘연결문서’를 제공한다. 또한 『고문서집성』은 대체로 가문이나 서원 등 특정 기관 또는 집단에 현존하는 다양한 유형의 문서를 포함하기 때문에 해당 집안의 서책이나 장부 등과 결합함으로써 미시적 분석과 집계 분석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우선 미시적 분석에서는 각종 유형의 문서 또는 서책들을 상호 교차하는 방식을 통한 유기적 이해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낱장의 형태로 파편화되어 현존하는 (일반적인) 고문서와 차별화된다. 또한 통계적 분석에서는 해당 가문(또는 기관) 내의 장기 시계열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예컨대, 특정 필지의 매매내력이나 특정 권리의 거래내력을 세기를 넘어서까지 추적할 수 있는 사례도 제공한다.

물론 『장토문적』과 『고문서집성』이라는 두 가지 자료 집단만이 ‘유용한’ 고문서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들어 디지털화가 급진전하고 있는 시점에서 다양한 고문서를 온라인으로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곳에서는 원문 이미지만을, 어떤 곳에서는 복사본의 이미지만을, 또 어떤 곳에서는 활자화된 텍스트만을 제공하는 등 품질의 차이는 있지만, 각각의 제공 방식에 장단점이 있으므로 그 활용은 연구자의 몫이 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온라인으로 서비스되고 있는 주요 고문서를 포함한 고문헌은 대부분 한국학자료센터의 한국학자료포털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http://www.kostma.net). 이하에서는 현재까지 한국경제사 학계에서 계량적 분석기법을 통해 고문서 활용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 그것이 가지는 의의와 문제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은 어떠한지에 대해서 논의해 본다.
고문서 활용의 문제점과 대안
그렇다면 고문서의 개별 유형이 기존의 계량적 연구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용되어 왔을까? 여러 가지 고문서의 유형 중에서 현재까지의 연구에서 가장 널리 활용된 것은 분재기(分財記)나 매매문기(賣買文記) 정도로 한정되어 있다. 분재기는 부동산이나 동산 등의 재산을 상속하기 위해 작성한 문서이고, 매매문기는 부동산이나 동산 또는 무형의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이전(거래)하는 과정에서 작성한 문서로서 양자 모두 증빙의 수단에 해당한다. 분재기에는 가격 정보가 기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가족 제도에 관한 분석 등 경제학 이외의 학문 분야에서 관심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반면에 매매문기에는 거래의 대상이 특정화되어 있고─이를 테면 전답의 경우 소재지, 지목, 면적 등이 명기되어 있고─결제 수단 및 가격이 기재되어 있다. 이에 매매문기에 경제사 연구자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또한 그 현존 수량으로 보더라도 매매문기의 분량은 압도적이다.

여기에서 매매문기를 활용한 모든 연구를 나열하여 정리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매매문기를 활용한 분석의 기법 중에서 특징적인 것을 뽑아 유형화하여 소개해보자. 기존 연구에서 가장 널리 그리고 쉽게 구상되었던 것은 역시 가격을 발췌하여 시계열을 구성한 다음에 분석하는 방식이었다. 토지매매문기로부터 논이나 밭 등의 가격을 발췌하여 분석한 연구로는 차명수・이헌창(2004), 이정수・김희호(2006b) 등이 있다. 또한 노비매매문기로부터 노와 비의 가격을 발췌하여 분석한 연구로는 김재호(2005), 이정수・김희호(2006b), 이우연・차명수(2010) 등이 있다. 李憲昶(1999), 이정수・김희호(2006a)에서는 일부 지역의 토지매매문기나 노비매매문기를 활용하여 부동산의 거래 과정에서 결제 화폐의 사용 양상이 어떠하였는지를 검토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전근대 시기에 있어서 토지와 노비는 가장 중요한 재산에 해당하였으므로, 이들 두 가지의 매매문기를 활용한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었다.

매매문기 중에는 토지매매문기나 노비매매문기 외에도 산지매매문기, 가옥매매문기, 어전매매문기 등 다양한 부동산의 매매문기가 있을 뿐 아니라, 도장권매매문기, 공인권매매문기, 여객주인권매매문기 등 무형의 권리에 대한 매매문기도 있다(이영훈 외 2005: 6-54). 유무형의 재산에 대한 거래의 증빙 자료인 매매문기는 오래 전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여러 연구자에 의해 분석되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제사 연구에서는 매매문기의 분석 방법론으로서 ‘추출’의 방식을 택해 왔다. 분석 대상이 되는 매매문기를 (관련 문서와의 맥락 속에서) 전체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문기에 기입된 내용만을 ‘추출’하여 통계 분석용 DB의 필드를 채워 분석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분석하는 과정에서 눈에 띄는 정보는 더미 변수의 형식으로 파악되어 추가 필드를 구성하게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정보는 간과되거나 무시될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특정 연구의 진행을 위해서 DB 구성에 반드시 필요한 필드가 있고 그러한 필드의 필요성이 기존 연구에서 밝혀져 있다고 하더라도, 해당 정보가 문기를 통해서 확보되지 않는다면, 분석에 포함시킬 수가 없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존 연구의 노비매매문기 분석에서 노비의 유형에 관한 정보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노비매매문기를 통해 노비의 가격을 파악하고자 하는 경우, 노비의 유형이나 성격에 대한 이해―이를 테면, 입역노비(立役奴婢)인지 납공노비(納貢奴婢)인지―가 필요하다. 만약 방매 대상이 되는 노비가 입역노비라면 부동산이나 동산에 준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고, 납공노비라면 무형의 권리에 준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존하는 노비매매문기에서는 그런 정보를 구하기가 무척 어렵다.

고문서를 활용한 한국경제사 연구에서는 이와 같이 필요한 필드를 온전히 구성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장토문적』이나 『고문서집성』의 고문서를 활용하는 경우에는, 연결문서 또는 방계의 자료를 확보함으로써 그러한 필드를 추가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그런데 기존 연구에서는 추출이나 발췌의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하다 보니, 그렇게 확보할 수 있는 정보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오류가 미미하거나 사소한 경우에는 무시해도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여기에서는 여객주인권(旅客主人權)의 사례를 통해 ‘추출’ 분석의 문제점을 짚어 본다.
조선후기의 포구상업에 대한 이해를 획기적인 수준으로 끌어 올린 것은 李炳天(1983)이었다. 주로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장토문적』 중에서 여객주인권의 매매문기를 정리하여 여객주인권의 지역별 집중과 표준화에 관해 분석한 것이다. 같은 시기에 다른 지면을 통해 발표된 高東煥(1985) 및 李榮昊(1985) 등은 경강주인(京江主人)과 외방주인(外方主人)을 포괄하는 포구주인(浦口主人) 연구를 진전시키면서 포구수세권(浦口收稅權)의 성립까지 논의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 연구가 발표되고 나서는 더 이상 관련 연구의 진전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지금까지 거의 30여 년이 경과하였다. 이미 충분히 연구되었고, 그러한 연구 결과가 어느 정도 설득력 있는 가설로 받아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일한 자료를 활용하여 검토하였는데도, 여객주인에 대한 기존의 이해에서 몇 가지 문제점이 발견되었다(조영준 2013). 여객주인이 상인으로 전화(轉化)하여 상업자본을 축적하였다는 가설에 대한 비판, 여객주인권의 표준화와 집중화에 대한 개별 사례의 재확인, 여객주인권 가격의 장기적 상승 추세에 대한 비판적 검토 등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세 가지 중에서 특히 여객주인권 가격의 장기적 변동에 관한 가설은 金容燮(1964) 이래로 196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50년 동안 변함없이 여러 연구자에 의해 지지되어 온 것인데, 그러한 이해가 적절하지 못하다는 점이 최초로 제기되었다. 잘못된 이해의 원인은 고문서의 오독과 발췌독, 그리고 기존 연구의 무비판적 수용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과를 압축적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단편적인 사례에서 확인된, 여객주인권의 가격이 장기적인 상승 추세에 있었다는 사실이 점점 일반화되어 받아들여지자(金容燮 1964: 622; 李世永 1983: 243-252; 李炳天 1983: 154-164; 류승렬 2002: 214; 이정수・김희호 2007: 246-257; 李憲昶 2012: 140), 그러한 가격 상승의 원인에 대한 해석의 시도도 이어졌다(李炳天 1983: 130; 高東煥 1998: 340; 류승렬 2002: 213-214; 이정수・김희호 2007: 256). 하지만 여객주인권의 가격은 오히려 고정적인 경향을 강하게 보이기도 했고(李榮昊 1985: 114), 장기적 상승 또는 연속적 변동의 양상이 아니라 외생 요인에 의해 급변하는 단절적 변동을 보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조영준 2013: 528-529).

이러한 오해가 생긴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 바 있다(조영준 2013: 529-530). 첫째는 여러 가지 서로 성격이 다른 권리를 한 곳에 늘어놓고 섞어서 비교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착시 현상이고, 둘째는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하는 시기를 그렇지 않은 시기와 연결해서 이해함으로써 장기 추세에 허상이 개입되었다는 점이며, 셋째는 해당 권리의 내용 변동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중에서 특히 세 번째 이유가 고문서에 포함된 가격 정보만을 단순히 발췌하여 분석함으로써 발생한 오류에 해당한다. 거래 과정에서 권리의 통합과 중첩이 발생한 경우에는 매매문기에 적혀 있는 가격 정보를 통해 가격의 상승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렇게 오랜 시간이 경과한 뒤에 기존 가설의 오류가 발견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기존 연구에서와 같은 발췌독 형식의 방법론이 아닌, 여객주인 관련 자료의 전체를 대상으로 한 전수(全數) DB를 구축하고 여러 문서의 상호 관계를 방계(傍系) 자료까지 포함하여 면밀히 파악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장토문적』 자료는 대체로 초서(草書)로 작성되어 있고, 그래서 일반 연구자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선행 연구에서 가공된 2차 자료가 후속 연구에 그대로 계승되면서 오류의 재생산이 반복되는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단지 전체 자료를 판독 가능한 형태로 옮겨 적고 번역하여 일반인의 접근을 가능하게 하였을 뿐인데도, 그 동안 가려져 있던 실체가 비로소 부각되기에 이른 것이다.

물론 매매문기를 활용한 연구는 앞에서 설명한 ‘추출’ 방식을 취하더라도 전체 문서에서 유용한 정보를 놓치지 않는 정도의 보정을 거친다면 앞으로도 가능성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며, 그 가능성을 타진하는 시론 역시 이루어진 바 있다(정수환・이헌창 2008). 이와 관련하여 각종 채용문권(債用文券)의 분석을 통해 조선후기의 방채와 이자에 대해 살핀 연구인 崔承熙(2003)를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담보부 채권과 무담보 채권으로 구분하여 문서의 내용을 하나하나 짚어 가면서 분석하였다는 점에서 고문서를 활용한 경제사 연구의 모범을 보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적절한 가공을 통한 시계열 확보 등 경제이론을 적용한 분석에까지 응용되지 못하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부표(附表)를 통해 내용을 발췌하여 정리하고 있지만, 재가공을 거쳐야만 유의미한 정보가 제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발췌와 추출을 통한 통계 분석이라는 한 가지 방법과, 정독과 내용 파악만 하고 통계 분석은 생략하는 다른 한 가지 방법, 그 두 가지 방법 모두가 한계를 가짐을 의미하며, 양자가 상호 보완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매매문기를 활용한 연구 외에도 고문서를 활용한 연구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우선, 기존에 널리 활용되지 않았던 자료를 새롭게 소개하거나 재해석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혼서(婚書)를 통해 혼인연령을 파악하고자 한 연구를 비롯하여(박희진 2006), 장기(掌記)를 상거래 회계문서의 일종으로 유형화한 연구(이헌창 2009), 왕실의 조달에 관계된 문서로서 내서(內書), 내첩(內帖), 표지(標紙), 계표(啓票), 체지[帖紙], 표(票) 등을 새로운 형태의 고문서로 파악하고자 그 유형화를 시도한 사례도 있고(조영준 2010), 호구단자와 유사한 형태의 군적단자(軍籍單子)를 새로운 유형으로 추가한 사례도 있듯이(조영준 2012: 142-143), 고문서의 범주는 아직도 확정되어 있지 않으며 점점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새로운 유형의 고문서를 추가하여 분석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존에 충분히 알려져 있는 유형에 대해서도 보다 깊이 있는 분석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일례로, 도서패지[圖署牌子]의 사례를 들 수 있다.

고문서의 한 유형인 도서패지는 아라이 겐타로오에 의해 패칙(牌飭)이라고 알려지면서 “각 궁방으로부터 관찰사 또는 군의 삼공형(이속의 우두머리)에게 명령 또는 위탁을 한 서류”로 이해되었다(荒井賢太郞 1911: 70). 아라이는 패칙과 패지(牌旨)를 구분하여 소개함으로써, 일반적인 매매의 위임장(대개 매매문기와 점련되어 현존함)으로서의 배ᄌᆞ[牌旨]와 궁방의 도서패지[牌飭]가 명칭의 유사성과 관계없이 그 용도 및 작성 주체의 차이가 명확함을 분명히 한 바 있다. 현재에는 도서패지라고 하면 궁방의 도서[印章]가 찍힌 배ᄌᆞ[牌子・牌旨]로 정의되며(최승희 1989: 136), 그 내용속에 ‘패칙(牌飭)’이라는 표현이 종종 등장하기 때문에, 도서패칙(圖署牌飭)이라고 지칭되기도 한다. 현재까지 확인된 도서패지의 원본 문서는 6점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되었으며(박성호 2009a: 305; 2009b: 11), 그로 인해 심도 있는 연구가 진행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장토문적』에 다수의 도서패지가 원본의 형태로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서패지의 원본 문서가 다수 확보되면, 이를 필사한 각종의 등록과 연계하여, 조선후기 왕실 토지의 관리에 대한 보다 충실한 해석이 가능해질 것이다. 관련된 추가 논의는 조영준(2014)에서 이루어진 바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유형의 고문서를 경제사 연구의 분석 대상으로 삼을 수 있으며, 이는 연구자의 창의력과 관심에 달려있는 문제라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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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