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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각본(坊刻本) 소설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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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각본․방각본 소설의 연원(淵源)
방각본이란 용어는 중국(中國)의 남송(南宋)과 북송(北宋) 때에 “서방(書坊)․서사(書肆)․서림(書林)” 등으로 불리던 현재의 상업출판사와 같은 곳에서, 사람들의 구매 수요가 많았던 경서(經書), 과거시험을 위한 수험서적, 일상에 필요한 생활 의학서와 같은 것들을 목판(木板)으로 제작하여 판매했던 책에서 나온 말이다. 따라서 방각본은 이윤 추구를 위하여 대량 공급의 목적으로 만든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방각본은 목판에다가 내용을 새겨서 책을 제작했기 때문에 비용이 필사본에 비하여 많이 들었다. 방각본 업자들은 이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원 책의 내용을 생략하거나 축약시켜서 간행했다. 이러한 방각본을 본 당대의 많은 지식인들은 방각본을 조악(粗惡)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방각본으로 많은 책들이 간행되었고 일반 서민들까지 이를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지식의 대중적 확산”이라는 측면에서 방각본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중국의 방각본 소설 『삼국지평화(三國志平話)』
방각본이 인기를 얻자 여러 출판사에서 경쟁적으로 출판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동일한 내용의 책들을 중복해서 출간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방각본 업체 간의 표절 문제도 불거졌다. 먼저 방각본을 간행한 업체는 이러한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장수(張數)를 축소시켜 나가는 방법을 택했다. 아울러 판본에는 자사의 특별한 표식이나 독자적인 삽화를 새겨 넣거나 출판사와 출판업자의 이름 등을 기재하여 다른 방각업체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려 노력했다. 이러한 경쟁과 다양한 시도 덕분에 당대 상업출판물 시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방각본을 흔히 “상업출판물의 효시”, “상업출판 발전의 기여자”라고 말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초기 방각본은 주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실용서 위주로 간행되었지만 명․청(明淸) 시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바로 서민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이야기와 소설을 방각본으로 간행한 것이다.

당시 중국에서는 잡극(雜劇)이나 연희(演戱) 등이 성행하여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또한 활발한 대외무역으로 서민 경제가 최고의 호황을 누리던 시기이기도 했다. 방각본 출판업자들은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들을 겨냥하여 소설을 상품화했다. 이렇게 해서 방각본으로 만들어진 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금병매』와 같은 소설이다.

방각본 소설은 서민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렇게 되자 조금이라도 글재주가 있는 문인이나 과거시험을 준비하던 이들까지 소설의 작가로 나서는 일이 생겨났다. 그 결과 “소설의 시대”, “소설의 전성기”라고 부를 만큼 다양한 소설이 쏟아져 나왔다. 이처럼 “방각본 소설”은 당대 지식인 사회를 변화시킬 만큼 파급력이 컸다.
조선에 등장한 방각본․방각본 소설
중국에서 기원한 방각본은 조선시대에 등장했다. 조선시대 초기의 출판은 중앙 관청이나 지방 관아에서 담당했고 필요한 수량만을 제작하여 유포시켰다. 하지만 조선시대 중기에 접어들면서부터 변화가 생겼다. 책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고, 더 이상 관(官)의 주도만으로는 출판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이로 인해 조선에서도 사설 출판사의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민간업자에 의해 간행된 방각본이다.

조선시대 방각본의 출현 시기를 놓고 그동안 15세기, 16세기, 17세기 설 등의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었다. 최근에 들어와서는 16세기 설이 지지를 받고 있다. 그 이유는 16세기에 간행된 『고사촬요』(송석하 소장본)에 “만력 4년(1576) (서울의) 수표교 아래 북변 이제리의 수문 입구에 있는 하한수(河漢水) 집에서 목판을 새겼으니 살 사람은 찾아오라(萬曆四年七月日, 水標橋下, 北邊二第里門入, 河漢水家刻板, 買者尋來)”라는 간기(刊記) 때문이다. 학자들은 이 기록을 조선시대 방각본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방각본은 임진왜란 이후부터 본격화 되었다. 한문 『천자문』, 『유합』, 『동몽선습』과 같은 서당에서의 학습교재류, 『논어』와 『맹자』와 같은 경서류, 『통감』, 『사략』과 같은 역사서류, 시헌력(時憲曆)과 같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실용서가 전주, 나주, 태인, 서울 등지에서 간행되었다. 특히 전라도의 태인에서는 아전(衙前)이었던 전이채와 박치유, 두 사람이 다수의 방각본을 출간했다. 이후 여러 상인들이 출판시장에 뛰어들어 다양한 방각본이 간행되었다.

한편, 소설이 발달하고 소설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자 이들을 위한 한글 방각본 소설이 등장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이 쓴 소설 작품 가운데 최초로 방각본 소설로 간행된 것은 전라도 나주에서 1725년(영조 1년)에 나온 한문본 『구운몽』이다. 한글 방각본 소설의 정확한 출현 시기는 알 수 없지만 현재 확인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은 1780년 서울의 방각업체 “경기(京畿)”라는 곳에서 간행된 『임경업전』이다.

한글 방각본 『임경업전』 이외에 이 무렵에 판각된 작품은 1785년에 간행된 『숙향전』(44장본)과 1749년에 간행되었던 『십구사략언해』 표지에 낱장으로 존재하는 『구운몽』과 『장풍운전』 등이 있다. 이 자료들을 보면 작품의 서체나 판의 형식 등이 대부분 일치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본다면 한글 방각본 소설은 1780년 전후로 간행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볼 수 있는 대다수의 방각본 소설은 한글본이다. 반면에 한문으로 간행된 방각본 소설은 거의 없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방각본 소설의 주류는 한글 방각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한글을 주된 언어로 사용했던 서민들이 한글 방각본 소설의 독자였음을 보여준다.
1780년 간행된 한글 방각본 소설 『임경업전』(연세대 소장)
한글 방각본 소설의 종류와 특징
방각본 소설은 경제 활동이 활발했던 지역을 중심으로 간행되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서울, 안성, 전주였다. 그래서 현재의 방각본 소설은 판각된 지역의 이름을 고려하여 경판, 안성판, 완판으로 부르고 있다.

경판본은 현재까지 대략 50여 종이 확인되었다. 작품을 보자면 『강태공전』, 『곽분양전』, 『구운몽』, 『금방울전』, 『금향정기』, 『도원결의록』, 『남정팔난기』, 『백학선전』, 『사씨남정기』, 『삼국지』, 『삼설기』, 『서유기』, 『수호지』, 『숙영낭자전』, 『숙향전』, 『신미록』, 『심청전』, 『쌍주기연』, 『옥주호연』, 『용문전』, 『울지경덕전』, 『월봉기』, 『월왕전』, 『임경업전』, 『임장군전』, 『임진록』, 『장경전』, 『장풍운전』, 『장한절효기』, 『장화홍련전』, 『제마무전』, 『조웅전』, 『진대방전』, 『토생전』, 『한양가』, 『현수문전』, 『홍길동전』, 『흥부전』, 『황운전』 등이다.
경판본 『삼국지』에 새겨진 간기(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경판본은 매 권 마지막에 방각소(방각업체)의 이름과 위치,간행연도 등을 새겨 넣었다. 예를 들어 <사진>처럼 “己未孟夏紅樹洞新刊”식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경판본 방각소(방각본 제작업체)는 경기, 광통방, 남곡, 동현, 미동, 무교, 송동, 석교, 석동, 어청교, 유동, 야동, 유천, 자암, 합동, 홍수동, 화산, 화천, 효교 등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이 지역은 대체로 조선시대 상업의 핵심적 역할을 했던 중인(中人)이 살았던 곳으로 확인된다.

경판본의 특징은 완판본에 비하여 글씨를 작게 하여 한 장의 많은 내용을 담아 한 권의 분량을 30~40장 정도로 적게 만든 점이다. 이로 인해 소설의 내용이 짧고 서술이 간략하다. 그리고 먼저 한 권으로 간행한 뒤에 두 권이나 세 권으로 나누어 판매했던 것도 특징이다. 그리고 여러 업체에서 동일한 제목의 작품이 간행되자 먼저 책을 간행한 업체에서는 장수(張數)를 적게 만들어 유통시켰던 특징도 있다.

완판본은 현재까지 20여 종이 확인되었다. 작품을 보자면 『구운몽』, 『삼국지』, 『세민황제전』, 『소대성전』, 『심청전』, 『월봉기』, 『용문전』, 『이대봉전』, 『장경전』, 『장풍운전』, 『적성의전』, 『정수경전』, 『조웅전』, 『초한전』, 『춘향전』, 『토별가』, 『홍길동전』, 『화용도』 등이다. 완판본 또한 경판본과 마찬가지로 매 권 마지막에 방각소(방각본 제작업체)의 이름과 위치, 간행연도를 새겨 넣었다. 재미난 점은 완판본 『조웅전』의 경우, 다른 지역의 방각본 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녁남 각슈의 박이력, 셔봉운”처럼 판을 새긴 각수(刻手)의 이름이 보이기도 한다.

현재 확인된 완판본 방각소(방각업체)는 전주의 완남, 완서, 완북, 서계서포, 다가서포, 칠서방, 양책방, 완흥사서포 등이다. 이 곳은 모두 전주의 남부시장 인근지역으로 상품 교역이 활발했던 곳이다. 완판본의 특징은 경판본과는 정반대이다. 글씨를 큼직큼직하게 써서 한 장의 적은 분량을 담아 읽기가 쉽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용이나 묘사 또한 자세하다. 특히 문체에서는 판소리 사설을 거의 그대로 판각한 것이 많아서, 판소리 율문체의 성격을 고스란히 느낄 수도 있다.
완판본 『조웅전』의 모습
안성판본은 현재까지 15여 종이 확인되었다. 작품을 보자면 『삼국지』, 『소대성전』, 『심청전』, 『양풍전』, 『임장군전』, 『장경전』, 『장풍운전』, 『적성의전』, 『제마무전』, 『조웅전』, 『진대방전』, 『춘향전』, 『홍길동전』 등이다. 안성판본 또한 경판본, 완판본과 마찬가지로 매 권 마지막에 간행소(방각본 제작업체)를 새겨 넣었는데, 확인된 것은 동문이방각소, 박성칠서점 등이다. 안성판본은 연구자에 따라서 경판본과 같은 계열로 보거나 독자적인 것으로 보기도 한다. 안성판본을 독자적인 계열로 보는 근거는 경판본에는 없는 『수호지』와 『춘향전』 20장본, 『흥부전』과 같은 판소리계 소설이 없다는 것이었다.
안성판본 『삼국지』
그러나 최근에 와서 안성판본으로 알려진 『수호지』가 경판본이었다는 점, 안성판본 『춘향전』 20장본은 경판본 『춘향전』 20장본의 복각본이었다는 점, 안성판본 『흥부전』 등이 발굴되었다. 이것들을 모두 기존의 주장과는 배치되는 것들이어서, 차후 안성판본에 독자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경판본과 같은 계열의 시각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방각본 소설 연구의 과제
조선시대 서민들의 소설에 대한 관심을 상품화 한 방각본 소설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상당한 양이 축적되었다. 개별 작품의 이본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방각본 소설이 다루어지거나 경판본, 완판본, 안성판본의 전반적인 간행 양상과 판본의 특성, 상업출판물 전체 시각에서 방각본 소설이 지닌 위상, 방각본 소설의 전국적인 유통의 문제, 방각본 소설 연구에서의 쟁점, 방각본 소설의 새 자료, 대중소설의 시각에서 바라본 방각본 소설의 성격 등이 검토되었으며, 최근에는 방각본 소설의 원천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각본 소설과 관련된 많은 과제들이 남아 있다. 가장 큰 과제는 방각본 소설의 자료 발굴이다. 최근에 와서 미처 예견되지 못했던 방각본 소설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숙향전』(경판 44장본), 『설인귀전』(경판 40장본), 『홍길동전』(경판 17장본), 완판본 『별월봉기』, 『세민황제전』, 『정수경전』, 『임진록』 등이다. 이 자료들을 보면 앞으로 방각본 소설의 새 자료가 발굴될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시장에서 퇴출된 선행 판목을 활용하여 제작된 판본, 낱장으로 배접지에 존재하는 판본의 일부가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방각본 새 자료 발굴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 방각본 소설에 대한 연구는 경판본, 완판본, 안성판본으로 각각 나누어 진행되고 있는데 이를 상업출판물 전체의 시각에서 아우르는 종합적 연구의 필요성이다. 예를 들어 방각본 소설의 특징으로 지적되었던 것, 구활자본의 특징으로 지적되었던 것들이 세책본이나 방각본에서 확인되는 특징이란 점이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지역에 근거하여 나누어 방각본을 살펴보기 보다는 상업출판물의 시각에서 방각본의 특성, 생성 및 간행 시기, 편년 설정, 저본의 문제, 방각본과 다른 상업출판물과의 관계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