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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책본(貰冊本) 소설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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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책본의 연원(淵源)
세책본은 이윤을 목적으로 세책점에서 빌려주던 책을 말한다. 현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도서대여점, 만화대여점, DVD 대여점의 기원이 바로 세책점의 세책본이다. 우리나라에 세책점과 세책본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세책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시대적으로 상품 경제의 활성화와 도시 인구의 확대가 뒤따라야 했고, 18세기의 인물인 채제공(蔡濟恭)과 이덕무(李德懋)가 세책본의 폐해를 거론한 것을 본다면 적어도 조선시대였던 18세기 전후로 세책점과 세책본이 성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전 시기까지의 고소설은 주로 상층 사대부 계층의 전유물로서, 이들 한정된 독자를 중심으로 읽혔다. 그러나 세책본이 등장하면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고소설 독자로 편입되었다.
도서대여점의 기원은 조선후기의 세책점이다
세책점에서는 독자들의 다양화에 따른 수요를 충족시켜주기 위하여 새로운 작품을 많이 창작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현재 장편 가문소설 또는 대장편 소설로 불리는 거질의 작품군, 원전이 한문이나 백화체 중국어로 되어 있어 쉽게 읽기 어려웠던 중국소설의 한글번역본은 모두 세책점에서 만들어져 유통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세책본의 현황과 종류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세책본과 세책점에 대한 연구가 대단히 활발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 분야의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세책본의 실물이 최근에서야 알려졌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외 기관이나 대학에 남아있는 세책본은 대략 90종이다. 국외에는 일본 동양문고(東洋文庫)에 31종, 일본 경도대(京都大)에 11종, 일본 천리대(天理大) 2종, 러시아 동방학연구소에 6종, 프랑스 기메박물관에 1종, 프랑스 동양어문화대학에 1종, 영국박물관에 1종이 있고, 국내에는 이화여대에 9종, 서울대에 7종, 고려대에 2종, 연세대에 7종, 한국학중앙연구원에 10종,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에 1종, 화봉문고에 1종이 있다. 이처럼 세책본의 대부분은 국외에 존재한다. 이로 인해 최근까지도 국내 연구자들은 이 자료들을 거의 접할 수 없었다. 앞서 언급했지만 현재 가장 많은 세책본을 소장하고 있는 기관은 일본의 동양문고이다. 이곳에는 모두 31종 334책의 세책본이 있다. 소설책을 비롯하여 노래책까지 모든 종류의 세책본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많은 양의 세책본을 소장하고 있는 일본의 동양문고
이 자료들을 확인하면서부터 일반 필사본과 구분되는 세책본의 외형적인 특징이 파악되었고, 이를 토대로 국내외 주요 대학과 기관에 소장되어 있는 세책본이 발굴되기 시작했다. 또한 세책점의 구체적인 운영 실태, 세책본의 구체적인 특성, 세책본의 독자, 다른 세책점과의 관계 등이 규명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세책본 연구는 일본 동양문고의 소장본으로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책본의 실상: 외형적인 특징, 세책점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
세책본의 외형적인 특성은 책의 표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세책본은 돈을 받고 빌려주는 책이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치게 된다. 세책본의 표지는 이러한 잦은 대여에서 오는 파손을 막기 위하여 책의 표지부터 두껍게 장정해 놓았다. 그리고 이윤의 극대화를 위하여 원래 한두 권으로 된 작품을 최대한 권수를 늘려 놓았다. 예를 들어 『춘향전』이 한 권이라면 세책본 『춘향전』은 10권으로 되어 있다.
세책본 『금향정기』의 첫장
세책본의 각 권은 <사진>처럼 상단에는 장수(張數)를 표시해 놓았다. 이는 책이 훼손되었을 때 해당 부분만을 쉽게 보수하기 위한 전략이다. 그리고 세책본은 한 면 당 11~12행, 한 행 당 15~20자 내외로 필사되었다. 가능한 글자 수를 많게 함으로써 책의 권수를 늘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마지막 행은 글자가 2-3자씩 비워져 있는데 이것은 대여자들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침으로 글자가 지워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세책본의 권 마지막에는 향수동(香水洞), 향목동(香木洞), 사직동(社稷洞) 식으로 세책점이 있었던 동명(洞名)을 적어놓았다. 이곳은 모두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나 인구 밀집 지역, 상업 지구인 시장 주변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외형적인 특성을 보이는 것이 바로 세책본이다.

세책본의 또 다른 특징은 책을 빌려보았던 대여자들의 낙서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낙서는 앞-뒤표지, 본문의 위-아래, 배접지처럼 세책본의 다양한 곳에 남아있다. 표지는 제목을 적는 곳이기에 원래부터 여백이 많다. 대여자들은 이러한 여백에다가 많은 낙서를 남겼다. 책의 본문 또한 낙서가 많다. 세책본은 한 면 당, 행 당 자수를 적게 써놓았는데, 대여자들은 이러한 빈 공간을 놓치지 않고 이곳에다가 많은 낙서를 남겼다. 세책본의 배접지에도 낙서가 많다. 세책본 업자는 여러 사람이 빌려보기 때문에 책을 단단히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매 장 마다 여러 겹의 배접지를 풀로 붙여 책을 두껍게 한 것이다. 그러나 대여 횟수가 많아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풀로 붙여놓은 배접지는 접착력이 떨어져 여백이 그대로 대여자들에게 노출되었다. 대여자들은 이러한 배접지의 여백을 놓치지 않고 낙서를 남겼다. 이러한 이유로 세책본의 곳곳에서 낙서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세책본에 남겨진 대여자들의 낙서는 단순히 글자 몇 자를 적어놓은 것에서부터, 세책점 주인에 대한 욕설, 음담(淫談), 세책 내용에 대한 비난, 당대의 유행가 가사, 시대 상황에 대한 자신의 소회, 세책점에 대한 정보 등이다. 이 중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세책점 주인에 대한 욕설과 성에 대한 것이다. 성과 관련된 대표적인 낙서는 위의 <사진>처럼 처녀, 총각을 등장시켜 성교나 성기를 그린 것이다.
세책본에 남겨진 대여자들의 성에 대한 낙서
세책본을 통해서 확인되는 중요한 사항은 세책점의 구체적인 운영 실태이다. 이는 세책본 배접지에 남아있는 세책장부(貰冊帳簿)를 통해 확인된다. 세책장부는 작품별 대출장부와 날짜별 대출장부로 구분된다. 작품별 대출장부를 통해서 세책점에서 보유했던 작품의 규모를 알 수 있고, 날짜별 대출장부를 통하여 날짜와 시간 순서에 따라서 누가 책을 빌려갔는지를 소상히 알 수 있다. 세책본의 세책장부를 통해서 그동안 추정만 해왔던 세책 독자의 신분, 직업, 성별 등이 파악되었고, 세책점에서 빌려주었던 다양한 세책 고소설의 규모와 존재가 확인되었다.
세책본 『동유기』에 남아있는 세책장부
현재까지 세책점의 구체적인 모습은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세책본에 남아있는 낙서를 보면 이러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낙서에는 세책점 주인, 전문필사자, 책거(冊去) 세 사람이 함께 욕설의 대상이 된다. 세책점은 적어도 이들 세 명이 함께 운영했던 것으로 보인다. 재미난 점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조선을 방문했던 외국인이 찍은 사진 중에서 이러한 세책점의 모습에 근접한 것이 있다. 외국인은 이 <사진>의 제목을 단순히 “잡화점”이라고 붙였다. 그러나 사진을 자세히 보면 한 편에서는 붓과 종이 등의 문방구를 판매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책이 많이 쌓여 있는 곳에서 어른 두 명과 아이 한 명이 서있다. 낙서에 의한다면 한 사람은 세책점의 주인, 다른 한 사람은 세책점의 전문 필사자, 아이는 세책본을 배달을 담당했던 이들로 보인다. 한 편에 책이 많이 쌓여있다는 점, 책상 위에는 필사를 하다만 흔적을 보면 이 사진은 세책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외국인이 찍은 세책점 추정 사진
세책본의 의의: 상업출판물, 기타 고소설과의 관계
세책본이 확인되면서 기존에 방각본이나 활판본의 특성으로만 알려졌던 것들이 사실은 세책본이 원래부터 지녔던 특성이거나 이들과 상업적인 목적으로 경쟁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라는 점이 확인되었다. 먼저 상업출판물인 방각본과 활판본은 세책본과 긴밀한 관계에 놓여있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방각본이나 활판본이 간행될 때 세책본이 저본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나 두 본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하여 중복되지 않게 내용을 간행했다는 점이 이를 입증해 준다. 세책점에서 빌려주던 세책본의 상당수는 장편가문소설, 대장편소설이었을 것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추정해 왔는데, 실제 새책본을 보면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해주는 다수의 자료들이 확인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하진양문록』, 『임화정연』, 『보은기우록』 등이다. 이 자료를 보면 장편가문소설, 대장편소설 등은 세책점에서 대여를 위하여 창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세책본에는 『금향정기』, 『당진연의』, 『북송연의』, 『삼국지』, 『열국지』처럼 중국소설을 한글로 번역하여 대여했던 것들이 있다. 이 자료들을 보면 세책점에서 중국소설이 전문적으로 번역되었고, 중국소설을 원문 그대로 읽을 수 없었던 사람들은 세책점을 통해서 읽었을 것으로 보인다. 세책본 중에는 두 곳 이상의 세책점에서 대여되었던 작품들이 있다. 예를 들어 『곽해룡전』, 『구운몽』, 『금향정기』, 『김씨효행록』, 『남정팔난기』, 『삼국지』, 『수호지』, 『장경전』, 『정을선전』, 『춘향전』, 『하진양문록』, 『현수문전』 등이다. 이 자료를 보면 세책점 간의 관계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이 자료들은 필사 시기의 차이, 분권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내용상 큰 차이나 변화가 없다. 이는 상당한 기간 동안 세책의 텍스트가 고정된 채로 세책이 만들어져 유통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경판본이나 완판본만이 고정적인 텍스트를 보유한다고 보았지만, 이것은 세책본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이러한 점 등을 종합해 본다면 세책본은 고소설 상업출판물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고 볼 수 있다.
세책본 연구의 과제
고소설 연구에서 세책본에 대한 연구는 신생분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분야에 많은 과제들이 남아 있다. 먼저, 앞서 언급했지만 그동안 방각본이나 활판본의 특성으로 알려졌던 것들이 사실은 세책본이 원래부터 지녔던 특성이거나 이들과 상업적으로 경쟁하면서 생겨났을 가능성이 높다. 이 문제와 관련된 보다 자세한 연구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세책점의 운영 실태, 세책본 독자들의 문제를 좀 더 자세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현재 확인된 자료를 통해서 세책본 독자들의 신분, 직업, 성별 등에 대한 분석, 그리고 세책본에 남아있는 낙서의 분석을 통해서 세책본 독자들의 내면 의식, 세책점의 실상, 당대의 독서 문화에 대한 자세한 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