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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문고 소장 한국어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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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문고 소장 한국어사 자료 개관
일본 동양문고에 소장된 한국어사 관련 자료에는 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것이 많다. 특히 『이문잡례(吏文襍例)』, 『음운편휘(音韻編彙)』, 『이두편람(吏讀便覽)』의 3종이 주목된다. 『이문잡례』는 조선 후기 문서서식집 겸 이두학습서로서 현재 알려져 있는 유일한 판본이며 당시 유행하던 『유서필지(儒胥必知)』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선본(善本)이다. 『음운편휘』는 한자음을 기준으로 가나다순으로 배열하고 한글로 석(釋)을 달아놓은 한자자전으로서 지금까지 학계에 알려진 적이 없는 새로운 자료이다. 『이두편람』은 널리 쓰이는 이두와 이문의 독법과 용법을 정리한 자료로서 국내에 있는 이본들과는 계통을 달리 하며 책이 만들어지는 초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동양문고에는 『대명률홍무직해(大明律洪武直解)』, 『이문(吏文)』, 『이문집람(吏文輯覽)』 등의 한국어사 관련 자료가 있다.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는 명나라 법전인 대명률(大明律)을 조선의 관리가 알기 쉽도록 이두로 번역하여 간행한 책이다. 방대한 분량의 이두 문장이 실려 있어 이두 연구의 보고(寶庫)로 불린다. 1395년의 원간본은 전하지 않고 16세기 이후의 중간본만 전한다. 동양문고에 소장된 『대명률홍무직해(大明律洪武直解)』는 가장 후대에 간행된 평양간본 계통의 목판본을 필사한 책이다.

『이문(吏文)』은 조선시대에 이문의 학습을 위하여 승문원(承文院)에서 만든 교재로서 고려말, 조선초에 명과의 외교에서 주고받은 문서와 명에 다녀온 사신을 통해 입수한 공문서를 자료로 하여 편찬한 책이다. ‘이문(吏文)’은 중국과 주고받는 외교문서 및 관청의 공문서 등에 사용되던 독특한 한문의 문체로‚ 한문의 골격에 중국의 속어(俗語) 또는 특수한 용어 등을 섞어 쓴 공문서식을 말한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이문’이 그러한 문체에 사용되는 어휘 자체를 가리키기도 하였다. 『이문』은 성종 9년(1478)의 문서까지 수록됨으로써 성종 연간에 편찬 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원간본 계통의 을해자본이 규장각 상백문고 등에 전한다. 동양문고 소장 『이문』은 을해자로 인쇄한 것을 목판으로 다시 새긴 복각본으로서 만력(萬曆) 연간(1573-1620)의 장서기가 있으며 인쇄와 보존 상태가 좋은 선본(善本)이다.

『이문집람(吏文輯覽)』은 최세진(崔世珍, 1465(?)-1542)이 왕명을 받아, 명나라와 주고받은 외교문서 등을 모은 책인 『이문(吏文)』에서 어려운 어구를 뽑아서 풀이한 책이다. 원간본은 1539년에 간행되었을 것이나 전하지 않고 현재는 중간본만 전한다. 현전하는 이본 중에는 16세기 중엽에 간행된 『(增定)吏文輯覽』이 가장 빠르다. 동양문고 소장 『이문집람』은 중간본을 베껴 적은 필사본이지만 16세기 중엽의 한국어 자료로 이용할 수 있다.
주요자료 소개
(1) 『이문잡례(吏文襍例)』

『이문잡례』는 이두(吏讀)가 섞여 있는 각종 문서의 서식을 모으고 이두에다 한글로 독법을 달아놓은 조선 후기 문서서식집 겸 이두학습서이다. 편저자는 미상이다. 모두 14장으로 이루어진 목판본이다. 권두에는 ‘이문잡례(吏文襍例)’라는 제목 다음에 목차나 저자에 관한 사항 없이 바로 본문이 시작되고 권말에도 본문이 끝난 뒤 제목이나 간행과 관련된 정보가 없다. 서문이나 발문도 없으며 판심 또한 ‘一’부터 ‘十四’까지의 장차만 새겨져 있는 매우 소박한 형식이다.

제1장부터 제9장까지는 보장식(報狀式), 서목식(書目式), 소지식(所志式), 상언식(上言式), 중수동추식(重囚同推式), 결송입안식(決訟立案式), 매득사출식(買淂斜出式), 이관하첩식(移關下帖式)의 8가지 문서 양식이 차례로 소개되어 있다. 각각의 문서는 시작할 때 행을 바꾸어 문서 제목 및 부제를 한 행에 표기하고 다시 행을 바꾸어 문서의 본문을 시작함으로써 다른 문서와 분명히 구분되도록 하였다. 그러나 서목식은 그렇지 않고 보장식의 뒷부분에 바로 붙어 있어서 형식적으로는 7개의 문서처럼 보인다. 이는 편집상의 잘못으로서 『이문잡례』의 문서들을 옮겨 실은 필사본 『경리잡설(經俚襍說)』이나 목판본 『유서필지(儒胥必知)』에는 모두 서목식이 보장식과는 별도의 문서로 편집되어 있다.
『이문잡례(吏文襍例)』의 문서양식 – 보장식(報壯式)
『이문잡례(吏文襍例)』의 문서양식 - 소지식(所志式)
『이문잡례(吏文襍例)』의 문서양식 - 상언식(上言式)
8개의 문서 가운데 상언식과 중수동추식의 사이에는 ‘지금 쓰고 있는 이두는 거의 다 앞의 세 가지 문서에 포함되어 있다. 그 나머지 긴요하지 않아 드물게 쓰이는 것들은 아래에 싣는다(行用吏吐幾盡入於上項三件文字其餘不緊罕用者列錄於左)’라고 하는 이른바 ‘한용자(罕用者)’의 설명 문구가 등장하고, 이어서 ‘貌如使內良如敎즛다부리다이’ 등의 드물게 쓰이는 이두 11항목의 표기와 한글 독법이 실려 있다. 이 설명 문구에서 말하는 ‘세 가지 문서(三件文字)’는 앞의 보장식, 소지식, 상언식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여기서도 서목식은 보장식의 한 부분인 것처럼 다루어져 있으나 이 또한 편집자의 부주의로 보인다. 한용자 조항을 경계로 하여 그 이전의 네 문서에는 이두에 한글 독음이 비교적 빠짐없이 달려 있고 그 이후의 네 문서에는 새로 출현하는 이두 위주로 한글 독음이 드문드문 제시되어 있다.

제10장부터 끝까지는 ‘이상국거관훈범(李相國居官訓範)’이 실려 있는데 이두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한문으로 되어 있어서 ‘이두로 작성된 문서의 여러 가지 사례’라는 의미의 ‘이문잡례(吏文襍例)’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글이다. 따라서 형식상 앞의 8가지 이두 문서와 나란히 배치되어 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본문이 아닌 부록의 성격을 띠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음운편휘(音韻編彙)』

『음운편휘』은 19세기에 같은 음을 가진 한자들을 모아 가나다 순으로 배열하고 각각의 한자에 한글로 풀이를 달아놓은 한자자전이다. 모두 64장으로 이루어진 불분권 1책의 필사본이다. 표지와 권두에 ‘음운편휘(音韻彙編)’라는 제목만 있고 바로 본문이 시작된다. 본문은 변란이나 판심, 계선이 없는 백지에 10행으로 작성되었다. 각 행의 맨 위 가로줄은 한자음의 한글 표기를 가나다 순으로 배열하여 이 책이 기본적으로 한자음을 기준으로 한자들을 모아놓은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책의 이본(異本)으로는 유일하게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같은 이름의 필사본이 있다. 동양문고 소장본보다 반엽에 1행이 적게 적혔으나 동양문고 소장본과 구성과 내용이 거의 동일하며, 여기에도 편저자를 알 수 있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올림말에 해당하는 한자들은 한글로 표기된 한자음 아래 기본적으로 1행 10개씩 배열하고, 각 한자의 훈(訓)을 비롯한 그 밖의 정보는 한자 밑에 쌍행의 작은 글씨로 적었다. 한글로 표기된 한자음은 모두 540개이고, 각 한자음 아래 제시된 한자는 모두 10,403개이다.

『음운편휘』는 서문이나 발문, 범례 등이 없어 저자와 제작 경위는 알 수 없다. 다만 본문의 뒤에 “무술계동신안번등(戊戌季冬新安飜謄)”이라는 필사기와 이석호(李晳鎬)의 인장 및 마에마 쿄사쿠(前間恭作)의 장서인이 찍혀 있다. 이석호는 1858년생으로 1880년에 선전관(宣傳官)에 임용된 뒤 삼척영장(三陟營將), 영산(靈山)군수, 정주(定州)군수 등을 지낸 인물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이석호가 1898년 겨울 신안에서 베껴 간직하던 것을 마에마 쿄사쿠(前間恭作)가 입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음운편휘』에서는 19세기 당시의 한자음과 관련한 음운현상을 살펴볼 수 있다. 한자음 표기에서 모음 ‘ㅏ’와 ‘ㆍ’의 표기가 혼란을 보이는 것은 ‘ㆍ’가 더 이상 ‘ㅏ’와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ㄷ’계열 한자음에서 구개음화가 가능한 부분이 ‘뎌/져, 뎍/젹, 뎐/젼, 뎡/졍, 뎨/졔, 디/지’로 병기가 되어 있는 것은 구개음화가 아직 진행중임을 보이는 반면 ‘ㅌ’계열 한자음의 경우 ‘ㅣ’모음과 공기한 표기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이미 구개음화가 끝났음을 암시한다.
<좌>『음운편휘(音韻編彙)』 필사기와 장서인
<우>서울대 중앙도서관본 『음운편휘(音韻編彙)』
(3)『이두편람(吏讀便覽)』

『이두편람』은 19세기에 이두(吏讀) 및 이문(吏文)에서 널리 쓰이는 어휘를 모아 그 독법과 의미를 주석해 놓은 책이다. 모두 17장으로 이루어진 불분권 1책의 필사본이다. 다음과 같이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두편람범례(吏讀便覽凡例: 제1장)’, ‘이두편람(吏讀便覽: 제2~7장)’, ‘집람이문(輯覽吏文: 제8~11장)’, ‘행용이문(行用吏文: 제12~17장)’. 따라서 ‘이두편람’은 이 책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이 책을 구성하는 첫째 편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두편람범례’에서는 먼저 서문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설총이 이두를 지은 이래 변화가 있으나 문서에서는 아직도 사용되어 특히 시체의 검안서나 옥사의 조서 등에는 이두를 쓰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사건의 처리를 신중히 하고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차원에서 이두를 널리 펴 통일하고자 하시는 임금의 뜻”을 받든다는 책의 편찬 취지를 밝혔다.
<좌>『이두편람(吏讀便覽)』 권수면
<우>『이두편람(吏讀便覽)』 범례『이두편람(吏讀便覽)』 범례
세 항목에 걸쳐 (1) 설총이 만든 100여 항목의 이두를 1자부터 10자까지 수록한다는 점, (2) 최세진이 편찬한 『이문집람(吏文輯覽)』에서 사용할 만한 100여 조를 가려 주석과 함께 뒤에 붙인다는 점, (3) 당시의 방언으로 관부(官府)나 주현(州縣)에서 사용되는 ‘尺文, 還上, 薛里, 召史’ 등은 한문에 쓰이는 것과는 음과 훈이 다르므로 이런 것들을 모아 『이문집람』의 예를 따라 제시한다는 점을 기술하였다.
다음으로 ‘이두편람’ 편에는 ‘節 디위’ 등 1자류 9개, ‘爲遣 고’ 등 2자류 105개, ‘爲在果 견과’ 등 3자류 62개, ‘爲有如乎 잇다온’ 등 4자류 70개, ‘爲白乎等以 온들로’ 등 5자류 28개, ‘爲乎乙喩在果 올디견과’ 등 6자류 12개, ‘爲白乎等以用良 온들로쓰아’ 등 7자류 8개, ‘便亦不納爲乎樣以 여블납온양으로’ 등 8자류 5개, ‘使內有亦爲白臥乎事 라온이여누온일’ 등 9자류 3개, ‘某戈只進叱使內良如爲 이모과그리나잇라아허트러’ 등 10자류 3개 등 총 305개 항목의 이두와 독법을 제시하였다.

‘집람이문’ 편에는 『이문집람』(명나라와 주고받은 외교문서 등을 모은 『이문』에서 어려운 어구를 뽑아서 풀이한 책으로 최세진이 편찬하여 1539년 간행)에 수록된 어구 중에서 당시 필요한 것을 선별하여 모두 124개 항목을 옮겨 실었다. 옮겨 싣는 과정에서 약간의 첨삭이 있었다. 그런데 이 편은 편집상 완전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이 편이 시작하는 제8장에는 아무런 이름 없이 ‘端布’ 등의 40개 항목만 실려 있고, 그 다음 장에 가서야 첫 줄에 ‘집람이문’이라는 이름이 나오고 다음 줄부터 ‘奏’ 등의 84개 항목이 1자류부터 4자류까지 나열되어 있는 것이다(자류의 명칭은 없음). 책의 체제상 ‘端布’ 등의 40개 항목은 뒤의 2자류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 아마도 1차 편집이 이루어진 후 40개 항목이 추가되었는데 그것이 미처 편집에 반영되지 못한 상태인 것으로 추정된다.

마지막으로 ‘행용이문’ 편에는 당시 관청의 공문서에서 사용하던 이문 가운데 한문의 지식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어구들을 모아 1자류부터 4자류까지 모두 172개의 항목을 나열하고 주석을 달아 놓았다(‘집람이문’ 편과 마찬가지로 자류의 명칭은 없음). 주석에는 먼저 한글로 독법을 보이고 한문으로 용법이나 어원을 풀이하였는데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역옹패설(櫟翁稗說)』,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의 『지봉유설(芝峯類說)』, 남학명(南鶴鳴, 1654-1722)의 『회은집(晦隱集)』, 남극관(南克寬, 1689-1714)의 『夢囈集』 등과 『東國輿地勝覽』에서 인용하였다.

『이두편람』은 범례를 통해 편찬의 동기가 분명한 관찬본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이 실제 출간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크다. 현재 전해지는 4종의 이본이 모두 필사본이며 간본은 발견되지 않은 점, (전주본을 제외하면) ‘집람이문’ 편의 편집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는 점, (동양문고본을 제외하면) 책 내용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는 문장이 본문 사이에 협주로 기록된 경우가 많으며 이는 출간된 책에서는 보기 어려운 현상이라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현전하는 『이두편람』의 저본은 출간 이전의 원고 상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두편람』의 네 이본 가운데 동양문고 소장본은 전 소장자인 마에마 교사쿠(前間恭作)가 직접 펜으로 옮겨적은 것으로서, 여기에는 다른 세 이본과는 달리 잘못된 내용을 지적하는 문장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두 및 이문 항목의 배열이나 독음표기 등 세부적인 면에서도 다른 이본들과 부분적으로 차이를 보인다.

『이두편람』은 위의 특징을 기준으로 크게 두 가지 계통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초고에 가까운 원고를 필사한 계통(동양문고본)이고, 둘째는 초고의 내용을 일부 수정하거나 수정해야 할 부분을 협주로 기록해 놓은 원고를 필사한 계통(고마자와대학본, 전주본, 가람본)이다. 동양문고본은 그 중 첫 번 째 계통의 모습을 보여주는 유일본으로서 서지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이 책에 수록된 이두 항목들은 ‘이두휘편(吏讀彙編)’ 등 비슷한 시기에 민간에서 편찬하여 널리 유행한 다른 이두학습서류에 수록된 자료와의 비교 고찰을 통해 이두의 당시 독법을 추정하는 자료로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집람이문’ 편과 ‘행용이문’ 편에 수록된 이문 항목들은 『이문집람』이 편찬된 16세기 이후 조선의 공문서에서 실제 사용된 관용적인 표현에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게 해주는 19세기 당대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동양문고 소장 한국어사 자료의 가치
『이문잡례』는 조선 후기 문서서식집 겸 이두학습서로서 현재 알려져 있는 유일한 판본이며 당시 유행하던 『유서필지(儒胥必知)』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선본(善本)이다. 국내에 홍순혁 교수 가장본(家藏本)이 있다는 본인의 기록이 있으나 실물이 공개된 바 없다. 또한 동양문고본은 인쇄와 보관 상태가 좋은 선본(善本)이어서 책의 내용을 확인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따라서 이 자료를 연구하는 데에 동양문고본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

『이문잡례』는 널리 유포되지는 않은 듯 현재 남아 있는 책이 거의 없다. 그러나 비슷한 성격의 문헌으로 당시 폭넓게 읽혔던 『유서필지(儒胥必知)』에 『이문잡례』에 실린 문서 8종 가운데 소지식과 상언식을 제외한 6종이 다시 실렸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유서필지』와 관련하여 『이문잡례』의 가치는 텍스트의 정확성에서 찾을 수 있다.

『이문잡례』에는 조선 후기에 사용되던 한자의 다양한 이체자(異體字)와 약자(略字)가 등장한다. 예를 들면 间(問), ㅁ(關), 㝳(等) 또는 朩(等), 阝(隱), ㅁ(齊), ㅁ(發), ㅁ(實), ㅁ(號), 囙(因), ㅁ(條), (京), 与(與), ㅁ(須) 등이 보이는데 이들은 조선 후기에 민간에서 널리 사용하던 자체였으므로 한국 한자의 이해와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이들 이체자나 약자들은 특히 이두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阝(隱)’자의 경우 ‘은’이라는 음절을 적을 때는 정자인 ‘隱’을 쓰고 ‘ㄴ’이라는 음소를 적을 때에는 약자인 ‘阝’를 쓰는 식으로 구분하여 사용한 경향이 있어 흥미로운 모습을 보인다.

『음운편휘』는 한자음을 기준으로 가나다 순으로 배열하고 한글로 석(釋)을 달아놓은 한자자전으로서 지금까지 학계에 알려진 적이 없는 새로운 자료이다. 19세기 당시의 어휘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예컨대 ‘柯’자의 풀이가 서울대 중앙도서관본에서는 ‘나모가지’로 되어 있는 반면 동양문고본에서는 도끼자루를 뜻하는 ‘도치자로’로 되어 있다. ‘柯’자에는 ‘나뭇가지’와 ‘도끼자루’의 의미가 모두 있으므로 어느 한 쪽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고, 필사자가 필사하는 과정에서 저본에 있는 풀이말을 자신에게 더 익숙한 다른 단어로 대치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동양문고본의 필사자인 이석호는 ‘柯’자의 1차적인 의미를 ‘나뭇가지’가 아닌 ‘도끼자루’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19세기 당시의 한자 교육의 일면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도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이두편람』은 널리 쓰이는 이두와 이문의 독법과 용법을 정리한 자료로서 국내에 있는 이본들과는 계통을 달리 하며 책이 만들어지는 초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두편람』은 왕명에 의한 편찬 동기가 확실하므로, 비록 현전하는 이본들이 최종 편집을 마친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편찬 과정에서 책임있는 사람이 신중하게 작업했을 것임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19세기 당시에 실제 널리 쓰여서 그 독법과 의미를 통일할 필요가 있었던 이두와 이문을 수집하여 정리한 믿을 만한 자료집이라는 데에 커다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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