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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클리대학 소장 시문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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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클리대 소장 시문선집의 현황
버클리대학교에 소장된 도서 중에는 개인 문집류에 속하는 고도서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시문선집(詩文選集) 가운데에는 국내외에 없는 유일본 및 필사본이 대량으로 소장되어 있어, 한국학 연구에 매우 긴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시문선집의 편찬과 간행의 구체적 실상을 조사하고 분석하는 작업은 새로운 작가 및 작품 발굴이라는 자료 보완의 측면에서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시대별 문학의식의 성향, 문학 창작 및 학습 방법의 추이, 문학사의 흐름과 변화, 동아시아 서적 교류의 실상 등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소장 『동시정화(東詩精華)』
버클리대학에 소장된 한국본 고서 가운데 시문선집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한시선집〉

제목

편저자

책권수

내용

鶴林寶訣

이학

2책

유일본. 한중통합 한시선집. 李강 장서인.

羅麗七律

미상

1책

유일본. 최치원부터 이광려까지 칠언율시 선집

海東名詩

미상

1책

유일본. 고려부터 18세기까지 칠언율시 선집

五家詩摘句

丁學淵

1책

유일본. 丁若鏞, 李書九, 朴齊家, 柳得恭, 李學逵 5인의 시 총 71聯 142句를 摘句한 책

朝鮮詩選全集

藍芳威

7권 2책

유일본. 箕子에서부터 조선 중기까지 한시 585수 수록. 명나라에서 간행.

東詩精華

미상

2책

유일본. 김만중, 김춘택, 김창흡 등의 科體詩 선집. 洪祐奭 장서인.

東國風雅

미상

3책

유일본. 『국조시산』의 한시와 평비를 뽑아 실었음

蕙蘭詩抄

미상

1책

유일본. 당송 시대 蘭詩를 모아놓은 책.

國朝詩刪

許筠

5권 2책

목판본. 朴泰淳 장서인.

唐詩畵意

申緯

3책

필사본. 趙重弼 장서인. 安錥 발문.

佔畢齋精選

靑丘風雅

金宗直

1책

필사본.

續靑丘風雅

柳根

7권 2책

목판본. 1891년 공주에서 목판 간행

選文輟英

미상

3권 3책

금속활자본(현종실록자)

韓客巾衍集

柳琴

4권 4책

필사본. 金世均 장서인.

濂洛風雅

金履祥

7권 1책

필사본. 唐良書가 1296년에 쓴 重刊 간행의 서문.

增刪濂洛風雅

朴世采

7권 2책

금속활자본(교서관인서체자)

增刪濂洛風雅

朴世采

5권 2책

필사본. 田以采가 1796년에 간행한 5권2책의 목판본 『증산염락풍아』를 필사한 것.

百聯抄解

金麟厚

1책

목판본. 간사자, 간사지 미상

風謠三選

劉在建

7권 3책

금속활자본(전사자)

 

〈산문선집〉

제목

편저자

책권수

내용

臥遊錄

미상

10책

유일본. 지역별 분류에 의한 산수유기작품집

臥遊錄目錄

淺見倫太郞

1책

유일본. 아유카이(鮎貝房之進) 소장본 『와유록』의 목록

文趣

金昌協

1책

필사본. 중국 산수유기 작품집

怡餘略存

沈宜平

1책

유일본. 洪奭周, 洪吉周의 문장선집

東國名山記

成海應

1책

신연활자본. 東京外國語學校韓國校友會 소장인

 

〈시문선합집〉

제목

편저자

책권수

내용

東選品節

斗山

15책

유일본. 徐居正의 『東文選』에서 뽑은 작품집

東選品節目錄

淺見倫太郞

2권 2책

유일본. 『東選品節』의 목록

四先生詩文抄

미상

1책

유일본. 金邁淳, 洪奭周, 洪吉周, 洪顯周 시문선집. 沈宜平 장서인

續東文選

申用漑

11책

훈련도감자. 內賜記

詳說古文眞寶大全

黃堅

22권 8책

목판본. 1803년 간행. 韓百衍 장서인.



버클리대 소장 시문선집의 가치
첫째, 유일본 시문선집이 다수 소장되어 있다. 버클리대학 소장 시문선집 중에서 국내외에 없는 유일본으로서의 가치가 높은 자료는 『학림보결(鶴林寶訣)』, 『나려칠률(羅麗七律)』, 『해동명시(海東名詩)』, 『오가시적구(五家詩摘句)』, 『조선시선전집(朝鮮詩選全集)』, 『동시정화(東詩精華)』, 『혜란시초(蕙蘭詩抄)』, 『와유록(臥遊錄)』, 『와유록목록(臥遊錄目錄)』, 『이여략존(怡餘略存)』, 『동선품절(東選品節)』, 『사선생시문초(『四先生詩文抄)』 등이다.

이들 자료 중에서 『오가시적구』, 『조선시선전집』은 학계에 보고된 바 있으며 다른 자료는 아직까지 연구된 바 없다.

둘째, 이본으로서의 가치가 높은 시문선집이 다수 소장되어 있다. 『당시화의(唐詩畵意)』, 『한객건연집(韓客巾衍集)』, 『문취(文趣)』 등은 이본으로서의 가치가 높은 자료들로서, 국내 소장본과의 면밀한 검토 작업이 필요하다.

셋째, 도서 수장가의 기록 등을 통해 도서의 소장과 유통 경위, 과정 등을 살필 수 있다. 구한말 수장가로 유명하였던 심의평(沈宜平), 김세균(金世均)의 장서인이 찍혀 있는 도서들이 주목되며, 아사미가 정리한 『와유록목록(臥遊錄目錄)』, 『동선품절목록(東選品節目錄)』 또한 버클리대 아사미문고의 소장 경위 등에 관한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다.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소장 『동선품절목록(東選品節目錄)』
주요자료 소개
(1) 『학림보결(鶴林補缺)』

『학림보결』은 19세기 전반에 이학(李學+木, 1781~1853)에 의해 편찬되었으며, 동번(東樊), 이만용(李晩用)이 1837년에 쓴 서문이 붙어있다. 편자인 이학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이학은 우봉(牛峰) 이씨(李氏) 감찰공파(監察公派)의 후손으로, 자는 사일(士一)이며, 호는 장실(丈室)이다. 아버지 제상(濟祥)과 어머니 안동김씨 사이에서 2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부인은 안동 권씨 이성(以盛)의 따님이며, 딸 둘을 두었다. 『우봉이씨세보』의 기록에 의하면 후사가 없이 대가 끊어진 것으로 나온다. 증조부 만화(晩華)가 첨사 벼슬을 지내고 호조참판으로 추증되었으며, 조부와 부친의 경우 문과 급제의 기록을 찾을 수 없다.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소장 『학림보결(鶴林補缺)』
시선집 『학림보결』의 특징과 자료적 가치는 다음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학림보결』은 한·중통합 시선합집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한국한시집과 중국한시집은 조선시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편찬 간행되었지만, 한국과 중국을 통합한 한시집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최근에 소개된 『영롱집(玲瓏集)』이 한중시선합집의 한 사례로서 주목된다. 18세기 후반에 유득공에 의해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시선집은 고려와 조선, 송금원명청의 근체시를 선별한 책으로 18세기 후반 한시 창작과 학습의 한 양상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학림보결』은 『영롱집』 이후에 편찬된 한중시선합집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학림보결』의 두드러진 특징은 작품 선별의 광범위한 포괄성이다. 시선집의 구성은 크게 3부와 별책으로 나뉜다. 1부는 한나라 시대부터 청대까지의 중국 시인들, 2부는 신라 이후 우리나라 시인들, 3부는 편자 당대의 우리나라 시인들을 각각 시대순으로 배열했다. 그리고 3부 이외에 ‘별보(別補)’를 별도로 설정하여 불가와 도가 계통의 인물, 규방 여성과 기생 등의 한시를 수록했다.

중국과 한국, 한나라 시대로부터 당대에 이르까지 주요 시작품을 두루 선별하였던 점에 대해 이만용(李晩用)은 「학림보결서(鶴林補缺序)」(『학림보결(鶴林補缺)』)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지금 장실(丈室) 이도인(李道人)은 시를 깊이 좋아해서, 옛날 시인의 시를 음미하고 근래의 작품도 완상하면서, 한나라에서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이르기까지, 긴 작품이나 짧은 작품이나 두루 모으고 찾아냈으며, 아울러 규방의 빼어난 작품과 선가의 초탈한 작품까지 미치어 이를 三部로 선별하고 상자에 보관했다. 이름을 『학림보결』이라고 했으니, 대개 『학림옥로(鶴林玉露)』의 뜻을 취한 것이다.”

둘째, 『학림보결』은 시선집에만 그치지 않고, 평비(評批)를 함께 수록해 놓았다는 점이 또 하나의 특징이다. 중국의 여러 평점가들 - 위문제(魏文帝), 종영(鍾嶸), 엄우(嚴羽) 등으로부터 고병(高棅), 왕세정(王世貞), 종성(鍾惺), 담원춘(譚元春) 등에 이르기까지 - 의 평비를 다수 수록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이 인용된 자료는 종성과 담원춘의 『시귀(詩歸)』이다. 그 외에 왕세정의 『예원치언(藝苑卮言)』, 고병의 『당시품휘(唐詩品彙)』 등의 평어도 많이 수록되었다.

중국 평점비평서, 시화서 등의 평어들을 작품과 함께 실었을 뿐 아니라, 일부 작품에는 편자 자신의 평어도 적어놓았다. 『학림보결』은 평어가 함께 수록된 한중통합 한시선집으로서는 유일한 자료이다. 평어의 수록과 관련해 작품에 대한 세심한 읽기가 눈에 띤다. 편자가 남긴 평어들 중에는 자구 운용의 측면, 작품의 연원과 연관된 평어들이 다수 보인다. 예컨대 당나라 때 시인 류춘허(劉春虛)가 지은 「모추양자강기맹호연(暮秋楊子江寄孟浩然)」에 대해 편자는 “兼이라는 글자와 ‘仍’이라는 글자의 쓰임과 관련해 글자 운용의 방법이 위진 시대 이래로 더욱 공교해졌다”고 평하였다.

편자가 작품 선발과 배열의 원칙으로 ‘경절(警絶)’을 강조하는 것도 작품에 대한 세심한 읽기와 연관된다. 편자는 범례에서 시선발의 기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편자는 독자를 경발시키는 빼어난 구절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을 선별하고자 했음을 밝혔다. 작품의 시체에 관계없이, 작품의 길고 짧음에 관계없이 작품 선별의 우선적인 기준이 ‘경절’이었음을 강조했다.
『학림보결』의 종성(鍾惺) 평어
셋째, 편자의 선시 의식, 시적 취향과 관련하여 중국 명나라 경릉파(竟陵派)와의 연관성이 주목된다. 편자는 명대 경릉파의 대표적인 이론가였던 종성과 담원춘의 평비를 가장 많이 수록했다. 여타의 평점가들의 평비도 두루 원용했지만, 『학림보결』은 기본적으로 종성과 담원춘이 편찬한 『시귀』의 평어에 많이 의존하였다.

경릉파는 공안파의 뒤에 나타나 전후칠자와 공안파의 폐단을 수정하고, 의고와 성령의 주장을 절충하였다. 만명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시파의 하나였다. 경릉파를 대표하는 종성과 담원춘이 합편한 『시귀』(51권, 『고시귀』 15권, 『당시귀』 36권)는 “만력 말년에 문체가 점차 변했다. 경릉파의 종성과 담원춘이 첨신유령한 시풍을 제창하였고, 『시귀』를 편찬하여 천하의 이목을 바꾸었다.”고 평하듯이, 명나라 말기에 문단에 크게 성행하였다.

경릉파는 17세기 이후 우리나라 시단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경릉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한 사례로 정조와 남공철의 언급을 들어본다.

“이른바 종성과 담원춘이 평점을 하고 선별을 한 『문귀』, 『시귀』는 한번 눈으로 보게 되면 음삼하고 기이하여, 마치 산 속 숲에 들어가 상서롭지 못한 동물을 만난 듯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시름겹지 아니한데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이러한 책은 불에다가 태워버리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이 무렵 서울의 시는 수준이 점차 내려갔다. 시단에 올라 문호를 세운 이들은 공안파와 경릉파의 시학을 표방하며 당시대의 시체라고 불렀다. 비유하면 오나라 소년들이 가벼운 적삼을 입고 침을 뱉어가며 광대와 재인들이 거짓으로 웃고 우는 것과 같다. 많은 귀족자제들이 일제히 그들을 좇았으니 시의 도가 거의 피폐해질 정도였다.”

이같은 부정적 인식과 달리 그림도 잘 그렸던 17세기 전반기 문인 신유(申濡, 1610-1655)는 당 이전의 한시를 학습하기 위해 『시귀』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었다.

신유의 언급은 『고시귀』가 선진과 한위 고시의 학습서로서 활용되었던 정황을 보여준다. 그리고 김창흡(金昌翕)에 관한 다음 인용문은 시선집 편찬과 경릉파 수용의 관련성이라는 측면에서 특히 주목된다.

"삼연(三淵)의 후손 집안에서는 『시서정문(詩書正文)』을 쌓아두었는데, 삼연의 비평이 붙어 있으며, 평은 대부분 정밀하고 심오했다. 삼연옹은 또한 옛날 가요와 악부를 뽑아 두 권의 책을 만들고 제목을 『산후(刪後)』라고 했는데, 모두 소강절(邵康節)의 ‘스스로 산삭한 뒤로부터 다시는 시가 없었다(自從刪後更無詩)’라는 뜻을 취한 것이다."

종성과 담원춘의 평어를 가려 취했는데, 간혹 점을 찍어 지워버린 것도 있다. 예를 들면 “고서가 있다 해도 비록 배를 채우는 데는 한 주머니의 돈만 못하다(古書雖滿腹, 不如一囊錢)”와 같은 구절은 점을 찍어 지워버려 각자 장단점을 취하고 버린 것이 있다. 선배들이 공부에 근면하였던 것을 또한 볼 수 있다.

김창흡이 편찬한 『산후』는 현재 전하지 않아 그 구체적 내용을 알 수 없지만, 종성과 담원춘이 편찬한 『시귀』의 평어를 수록한 시선집으로, 주요 수록 작품은 고가요와 악부였다. 현재 전하는 『학림보결』이 고가요와 악부를 대상으로 하여 작품을 선별하고, 『시귀』 등의 선집에서 가려 뽑은 평어들을 함께 수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창흡의 『산후』를 계승하였다고 평가된다.

18세기 이후에도 『시귀』는 여러 문인들에 의해 수용되었는데, 예를 들어 이덕무는 『청비록』에서 심염조가 기생들에게 『시귀』를 읽게 했다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으며, 장혼은 「청보(淸寶)」 100가지 중의 하나로 『고시귀(古詩歸)』를 들기도 했다.

『학림보결』의 서문을 쓴 이만용(李晩用)이 18세기 초림체(椒林體) 시풍의 대표적 인물인 이봉환(李鳳煥) - 이명오(李明五) - 이만용(李晩用)으로 이어지는 가학의 배경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경릉파 시학의 영향권을 상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학림보결』은 경릉파의 수용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례라는 점에서, 그리고 경릉파 수용과 관련하여 19세기 전반기의 시적 취향의 일단 - 편자 및 이만용과 그 주변 시인들 - 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2) 『나려칠률(羅麗七律)』
『나려칠률』은 우리나라 시인의 칠언율시만을 수록해 놓은 유일한 시선집이다. 한시 학습의 편의를 위해 율시를 모아놓은 중국 간행 시선집들은 상당수 존재한다. 예컨대 『영규률수(瀛奎律髓)』는 원나라 때 방회(方回)가 당송시대 385가의 5언과 7언 율시 3,000 여수를 내용과 제재에 따라 분류한 시선집이다. 이 시선집은 조선 성종 이후로 여러 차례에 걸쳐 간행되면서, 학시서로서의 전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소장 『나려칠률(羅麗七律)』
중국 간본의 복각본에서 벗어나 17세기에 이르면 우리나라 문인에 의해 칠언율시 시선집이 편찬 간행되었다. 이민구(李敏求, 1589-1670)가 편찬한 『당율광선(唐律廣選)』은 조선 문인에 의해 선별 간행된 최초의 칠언율시 전문시선집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앞서 언급한 『영규율수』와 『두율우주』 등은 중국 간행본을 번각한 것임에 비해, 『당률광선』은 조선 문인에 의해 편찬되어 목활자로 간행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칠언율시만을 선집한 중국 간본으로 『당시고취(唐詩鼓吹)』이 있었지만, 우리나라 문인에 의해 편찬 간행된 칠언율시 전문시선집은 『당률광선』이 최초이다. 이 선집에 대해 일찍이 정조는 『국조시산(國朝詩刪)』, 『기아(箕雅)』 등과 함께 우리나라 시선집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한 바 있다.

칠언 율시를 전문으로 한 당시 선집으로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강세황(姜世晃, 1712-1791)이 편찬한 『당시칠률분운(唐詩七律分韻)』이다. 이 책은 시대순, 작가별 배열이 아니라, 운목(韻目)에 따라 분류하여 편찬한 선집이다. 운목에 의거해 시작품을 선집하는 사례는 정조의 명에 의해 1798년에 간행된 『두율분운(杜律分韻)』, 『육율분운(陸律分韻)』, 『두륙천선(杜陸千選)』 등이 대표적이다.

두보와 육유의 율시를 운목에 따라 분류 편집한 이들 책은 율시를 중시했던 종전의 한시선집이 지닌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운목별 배열 방식을 새롭게 채택했다. 이같은 배열 방식은 한시의 운율을 공부하고 한시 작법을 학습하는 데에 좋은 지침이 되었을 것이다.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소장 『경수당시선(警修堂詩選)』
이와 관련해 규장각에 소장된 『경수당시선(警修堂詩選)』은 중국 시인이 아니라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847)의 칠언율시를 운목과 시대순에 따라 각각 분류한 칠언율시 선집이라는 측면에서 『나려칠률』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시 학습과 창작에서 칠언율시가 선호되었던만큼 다양한 형태의 칠언율시 시선집이 나왔지만, 우리나라 시인들을 대상으로 한 칠언율시 시선집은 버클리대학에 소장된 『나려칠률』이 현재까지 확인된 유일한 예이다.

당시 칠언율시를 중심으로 한 한시선집의 관행에서 벗어나 우리나라 시인들의 칠언율시를 선별하였다는 점에서 시선집 편찬의 달라진 경향을 보여준다.
(3) 『와유록(臥遊錄)』

그동안 알려진 와유록 가운데 중요한 텍스트로는 장서각본(13책), 규장각본(7책), 영남대 취암문고본(13책), 연세대본(3책) 등이 있다. 이들 이외에 버클리대학에 소장된 『와유록』이 추가됨으로써, 산수유기 창작 및 편찬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소장 『와유록(臥遊錄)』
버클리대학 소장본 『와유록』은, 다른 와유론 이본들도 그러하듯이, 그 편자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남이성(南二星) - 남구만(南九萬) - 남학명(南鶴鳴)’으로 이어지는 의령 남씨 가문과 관련된 인물이 아닐까 추정해본다.

버클리대학본 와유록의 선정 작가에서 특징적인 면은 남이성, 남구만, 남학명 삼대의 작품 그리고 남구만의 자형 박세당, 박세당의 아들 박태보 등의 글이 다수 수록되어 있는 점이다. 적어도 이 책의 편자가 의령 남씨 집안, 박세당 집안과 관련을 맺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겠다.

버클리대학본 『와유록』의 또 다른 특징적 면모의 하나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에 이르는 기간에 활동했던 작가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는 점이다. 그 대표적 인물은 김창협, 김창흡, 박세당, 남구만, 남학명, 최창대, 권두인 등이다. 이같은 경향은 산수유람 여행이 발달하고, 산수유기 창작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17세기 후반 이후의 정황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자 한 취지로 읽힌다.

버클리대학본 『와유록』에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와 작품이 다수 수록되어 있거나 현재 전하는 문집에 미수록된 작품이 많아서 그 자료적 가치가 높다. 문집이 전하지 않는 김치(金緻), 최기언(崔基彦), 임유후(任有後), 김농(金農) 등은 새로이 발굴된 작가군이며, 윤증(尹拯)의 「동유록(東遊錄)」, 남구만(南九萬)의 「동행록(東行錄)」, 남학명(南鶴鳴)의 「금강록(金剛錄)」 등은 문집 미수록 작품이다.
『와유록』 수록 『관동일기(關東日記)』
권7에 수록된 작자 미상의 『관동일기(關東日記)』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신자료이다. 1624년에 강원도사로 부임하는 작가의 여정을 따라 전개된 「관동일기」는 분량이 101장에 달하는 장편의 산수 유기이다.

이처럼 버클리대학본 『와유록』은 산수유기를 창작한 새로운 작가를 다수 발굴할 수 있고, 또한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작품을 다수 수록하였다는 점에서 그 자료적 가치가 더욱 크다.
(4) 『사선생시문초(四先生詩文抄)』

『사선생시문초』는 19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문장가 김매순, 홍석주, 홍길주, 홍현주 네 사람의 시문을 선별한 책으로, 편자 미상이다.

이 책은 1823년에 간행된 『영가삼이집(永嘉三怡集)』에다가 김매순의 시문을 덧보탠 것이다. 『영가삼이집』은 홍석주가 자신의 삼형제의 글을 모아 엮은 것으로, 1824년 전사자(全史字)로 간행되었다. 편자는 『영가삼이집』에서 일부를 선별하고, 홍석주와 함께 19세기 문단을 대표했던 산문작가 김매순의 글을 보충해 넣었다.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소장 『사선생시문초(四先生詩文抄)』
이 책은 1823년에 간행된 『영가삼이집(永嘉三怡集)』에다가 김매순의 시문을 덧보탠 것이다. 『영가삼이집』은 홍석주가 자신의 삼형제의 글을 모아 엮은 것으로, 1824년 전사자(全史字)로 간행되었다. 편자는 『영가삼이집』에서 일부를 선별하고, 홍석주와 함께 19세기 문단을 대표했던 산문작가 김매순의 글을 보충해 넣었다.

『사선생시문초』에는 붉은색 비점이 군데군데 찍혀 있으며, 문장 평어도 수록해 놓았다. 김매순이 지은 「강화부진향문(江華府進香文)」의 상단 여백에 “恭儉寬仁四字, 一篇之綱領” “祇承太母以下, 申言恭” “四載邇密以下, 申言儉” “臨扆日久以下, 申言寬” “端居穆淸以下, 申言仁” “天高曰以下, 言恭儉寬仁之?”라는 글이 쓰여져 있다. 문장 구성과 관련된 평어들이다.

이 책의 편찬자와 편찬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대략 19세기 후반 이후로 짐작된다. 김매순, 홍석주, 홍길주 등의 시문이 19세기 후반 이후에 수용되는 양상을 살피는 데에 참고가 된다.

한편 『사선생시문초』는 구한말의 서화도서 수장가로 알려진 심의평의 수택본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심의평(1836-1919)은 구한말의 도서서화 수장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황현의 『매천야록』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전 군수 심의평은 일생동안 책을 수집하여 1만 4000여 권에 이르렀으며, 노경이 되어서도 그치지 않았다.

심의평이 구한말의 대표적인 장서가의 한 사람이었음을 『매천야록』이 알려준다. 심의평은 자가 승여(昇如), 호는 석란(石蘭), 본관은 청송이며, 음사로 군수를 지냈다. 장서가로서 뿐만 아니라, 도서의 편찬 간행에 관여하였고, 시문 비평가로서의 안목 또한 갖추고 있었다. 서울대에 소장된 『하소정전휘주(夏小正傳彙注)』를 저술했다.”

버클리대 소장본 『이여략존(怡餘略存)』을 편찬, 교정하는 등 서적 편찬 및 교정에도 힘을 기울였다. 이화여대에 소장된 『석란실신정예원삼매(石蘭室新訂藝苑三昧)』 또한 심의평이 편찬한 책으로, 시, 사, 화, 종정, 곡에 관한 중국 문인들의 절구를 모아놓은 필사본이다.
(5) 『와유록목록(臥遊錄目錄)』

『와유록목록』이라는 책자는 현재 전하지 않는 『와유록』을 보고 그 목록만을 필사해 둔 것이다. 표지 이면 제목 아래 “의점패씨소장본초지(依鮎貝氏所藏本抄之)”라고 쓰여있어, 현재 전하지 않는 『와유록』이 일제시대 일본인 학자 아유카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 1864-1946)의 소장본임을 알려준다.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소장 『와유록목록(臥遊錄目錄)』
이 목록에 따르면, 현재 전하지 않는 『와유록』은 전체가 13권으로 되어 있고, 편자 미상이다. 실제 작품은 전하지 않지만, 목록에 기재된 작가명과 작품명을 통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작가와 작품에 관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어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다.

아유카이는 일제시대 때의 언어학자, 역사학자, 민속학자이다. 언어학적 관점에서 조선 고대의 지명 등을 고증하고자 했으며, 민속학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한국 고서의 편찬, 간행, 수집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소장했던 책 중에서 알려진 것은 현재 전하지 않는 13책의 『와유록』, 유희(柳僖)의 『물명고(物名考)』 등이 있다.

규장각에 소장된 유몽인의 문집 『묵호고(黙好稿)』는 1937년 아유카이에 의해 석판본으로 간행되었다. 서문과 발문 등이 없어 정확한 발간 경위를 알기는 어렵다. 버클리본 『와유록목록』은 일제시대 한국 고서 편찬 및 간행에 관심이 있었던 아유카이의 활동을 알려주는 자료라는 점에서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아사미가 저본으로 삼은 아유카이 소장 『와유록』은 영남대에 소장된 취암문고본 『와유록』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버클리대학본 『와유록』은 이들과 다른 계열로 추정되는데, 앞으로 국내외에 현전하는 와유록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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