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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장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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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문고에는 일본인의 장서인이 여러 종 찍혀 있다. 이 장서인은 동양문고에 유입되기 이전에 소장하고 있던 개인이나 기관의 장서인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임란 당시에 약탈한 조선본 고서에 찍혀 있는 <양안원장서(養安院藏書)>가 여럿 보이고,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수집한 서적에 찍힌 마에마 쿄사쿠(前間恭作,1868~1941)의 <재산루수서지일(在山樓蒐書之一)>, 요시다 도고(吉田東伍,1864~1918)의 <낙랑서재(樂浪書齋)>, 시데하라 다이라(幣原坦,1870~1953)의 <폐원도서(幣原圖書)> 등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밖에도 <강본장서기(岡本藏書記)>, <중산씨장서지기(中山氏藏書之記)>, <운촌문고(雲邨文庫)>, <수산문고(水山文庫)>, <심천문고(深川文庫)>, <산택씨장(山澤氏藏)>, <금정문고(今井文庫)>, <대마문고(對馬文庫)>, <백운서고(白雲書庫)>, <녹원사(鹿苑寺)>, <청음사(淸音寺)>, <화학강담소(和學講談所)>, <지어암장서(帋魚庵藏書)>, <천야원씨오만권루도서지기(淺野源氏五萬卷樓圖書之記)>, <궁지(宮地)>, <궁기장서(宮崎藏書)>, <냉천부서(冷泉府書)>, <신궁성서장(新宮城書藏)>, <호천씨장서기(戶川氏藏書記)> 등의 장서인도 확인된다.

주요 장서인의 인영(印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들 장서인을 통해 동양문고 소장 조선본은 마에마 쿄사쿠(前間恭作), 요시다 도고(吉田東伍), 시데하라 다이라(幣原坦)의 구장본(舊藏本)이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밖에도 일부 서적은 임란 당시에 약탈되어 일본으로 유입된 후 여러 개인장서가를 거쳐 동양문고에 유입되었고, 기타 여러 개인 장서가들의 장서가 동양문고로 유입된 사실을 알 수 있다.
(1) 마에마 쿄사쿠(前間恭作, 1868-1942)의 장서인

마에마 쿄사쿠 컬렉션은 동양문고 소장 한국 고서 자료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在山樓蒐書之一’(165종)과 ‘ま邊滿’(7종) 두 종류의 장서인이 확인된다.
위에서 소개한 장서인 ‘在山樓蒐書之一’은 단독으로 쓰인 경우가 많으나, ‘ま邊滿’은 단독으로 쓰이지 않고 항상 앞의 장서인과 함께 쓰였다. 이 장서인이 사용된 자료는 주로 1900년도 이전에 수득한 자료들이며, 아래에 언급한 보라색 스탬프와 함께 사용된 경우가 많다. 위의 2종의 장서인 외에도, 마에마 쿄사쿠는 자신의 영문명인 ‘K. Mayema’와 자료의 수득 일자를 기록한 보라색 스탬프도 여러 차례 사용하였다. 위의 예처럼 수득일자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무척 의미가 크다. 마에마 쿄사쿠의 자료 수집 내력과 양상을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가 조선에 유학생으로 건너온 때가 24세이던 1891년이고, 조선에서의 공무를 모두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간 때가 44세이던 1911년임을 감안하면, 그의 한국 고서 수집은 일생에 걸쳐 이루어진 일임을 알 수 있다. 이후 그가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는 없으나, 일본으로의 귀국 후인 1911년 이후에 수집한 자료 역시 상당한 것으로 볼 때 조선에서뿐만 아니라 일본에 체류하면서도 계속해서 자료 수집에 열정을 들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2) 시데하라 다이라(幣原坦, 1870-1953)의 장서인

시데하라 다이라는 본래 조선사(朝鮮史)를 전공한 사학자이다. 후에 일제의 식민지 행정 및 식민지 교육을 추진하는 관료로 활동하였다. 타이페이 제국대학의 창설에 노력을 기울였으며, 1928년에 초대 총장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한편 시데하라 다이라의 동생인 시데하라 키쥬로(幣原喜重郞, 1872-1951)는 동양문고의 설립자인 이와사키 히사야와의 매제(妹弟)이기도 하며, 1947년에 동양문고 이사장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따라서 시데하라 다이라가 동양문고에 도서를 기증한 배경에는 이와 같은 두 가문의 구연(舊緣)이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데하라 다이라가 사용한 장서인은 ‘幣原圖書’ 2종과 ‘幣原坦印’ 1종으로 총 3종이다. ‘幣原圖書’는 시데하라 다이라가 가장 빈번하게 사용한 장서인으로서, 총 50종의 자료에 날인되어 있다. 또한 이들 자료에는 소화(昭和) 16년인 1941년 9월 1일에 기증했음을 알 수 있는 기증지가 함께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시데하라 다이라가 수집한 자료는 대부분 이 날짜에 일괄적으로 기증된 것으로 보인다.
(3) 요시다 도고(吉田東伍, 1864-1918)의 장서인

요시다 도고는 역사학자이자 지리학자이다. 『대일본지명사서(大日本地名辭書)』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일본 역사지리학회의 창설자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하다. ‘樂浪書齋’ 장서인 2종을 사용하였다. 형태가 거의 같으므로 여기서는 1종만 소개한다.
참고문헌
박철상, 「日本 東洋文庫 소장 朝鮮本 古書의 藏書印」, 해외한국학자료센터 학술대회(2014년 2월 27일) 발표문 중에서
박철상,「미수전과 낭선군의 장서인」, 『문헌과해석』 19호, 2002년 여름.
백진우, 「일본 동양문고 소장 한국 고서에 대하여」, 『열상고전연구』 36집, 열상고전연구회, 2012 중에서 中善寺 愼,「東洋文庫所藏本に押捺された藏書印について(一)~朝鮮本に押捺された朝鮮の藏書家の藏書印~」,『東洋文庫書報』 第35号, 東京, 東洋文庫, 2004.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