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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의 특징
풍수의 기원 및 특징
풍수(風水)는 인간이 자연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생활방식을 터득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문명이 발전하기 전부터 인간은 자연환경을 경험하고 합리적인 생활방식을 터득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상택(相宅)이라는 부분이 부각되면서 풍수가 시작되었다. 중국을 비롯한 한반도에서는 겨울철 차가운 북서풍을 견디어야 하는 대륙성 자연환경이 문제시 되었다. 그래서 대륙성 자연환경에 맞는 생활방식을 찾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남향의 집과 추운 겨울 북서풍을 막을 수 있는 지형에 의탁하여 집터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또한 인간이 삶을 영위(營爲)하기 위해서는 바람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취수(取水) 즉 물을 얻는 것도 중요하였다. 이렇게 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 데서 풍수는 시작되었다. 풍수에서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장풍득수(藏風得水)”라 하는데, 장풍득수의 줄인 말이 풍수이다.
풍수의 기원은 고대 중국의 황토 고원지대에서 굴을 파서 흙굴집을 짓고 살던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풍수에서는 좋은 터를 혈(穴)이라고 한다. 혈의 어원을 살펴보면 흙굴방(土室, cave)이라는 뜻으로 바로 굴을 파서 주택을 만드는 흙굴집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풍수의 발생적 특징은 풍수가 단순히 미신적 행위와 주술적 행위를 통한 술수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환경을 경험하면서 발생한 실증적 측면이 강한 학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풍수의 기원에서 알 수 있듯이 풍수는 장풍득수를 할 수 있는 좋은 땅을 혈(穴)이라고 부르는데 혈이라는 이상적인 장소를 찾아 정주(定住)하는데 있다. 이러한 정주 공간의 공간적 특징으로는 산을 기대고 물을 얻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을 이상적으로 가정하고 있다. 배산임수의 지형 공간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혈로 가정되는 정주 공간을 중심으로 뒤에는 병풍처럼 받쳐주는 배산(背山)이 있고, 좌측과 우측으로 바람을 막아주는 산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혈 앞으로 물이 있고, 물 너머로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는 산이 있어야 한다. 풍수에서는 정주 공간의 사면을 산이 막아주고 그 사이로 물이 흐르는 자연 지형을 명당공간(明堂空間)이라 한다.
이러한 지형적 특징을 풍수적 용어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이 풀이된다. 배산이 되는 산을 주산(主山)이라고 하며, 혈을 중심으로 좌측과 우측에서 바람을 막아주는 산을 청룡(靑龍)•백호(白虎)라 한다. 여기서 좌측의 산을 청룡, 우측의 산을 백호라 한다. 그리고 물을 건너 앞에 있는 산을 안산(案山)이라 하고, 안산 너머에 펼쳐진 수많은 산을 조산(朝山)이라 한다. 풍수에서 가정한 이상적 공간은 혈을 중심으로 주산과 청룡•백호 그리고 안산과 조산이 감싸는 지형을 이루는 것이다. 풍수에서는 주산과 청룡•백호, 조안산을 사신사(四神砂)라고 한다. 그리고 배산이 되는 산을 북쪽을 상징한다고 해서 현무(玄武)라고도 하며, 안산은 남쪽을 상지한다고 해서 주작(朱雀)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풍수의 지형 공간
풍수에서 가정한 이상적 공간은 주변의 산이 사면을 감싸는 공간으로 원형적 지형 공간을 추구한다. 이러한 원형적 공간은 지형의 특성상 공간의 안정성을 가져다준다. 현대의 정주 공간은 주변의 자연을 경관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선호하여 조망을 위한 트인 공간을 선호한다. 하지만 풍수에서는 현대와 같이 트인 공간보다는 내적인 안정감을 위한 막힌 공간을 선호한다. 그리고 정주 공간은 혈로 가정된 곳으로 산을 타고 흐르는 기(氣)가 응축되어 있다고 본다. 여기서 혈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양택(陽宅), 죽은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음택(陰宅)을 모두 포함한다. 혈의 공간을 좀 더 넓혀보면 마을 또는 읍치 단위까지 가정한 양기(陽基)의 넓은 범위를 포함할 수 있다. 광의로 본다면 국가적 통치의 공간도 혈의 공간으로 포함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풍수는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는 양택 또는 양기를 중심에 두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음택을 중심에 두고 있다. 그리고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의 풍수서는 조선시대에 발된 것으로 음택을 중심으로 하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풍수에서의 공간은 양택이든 음택이든, 양기든 음기든 태조산(太祖山)에서 시작해서 중조산(中祖山), 소조산(小祖山), 주산(主山), 혈(穴)로 이어지는 산맥의 조종적(祖宗的) 흐름을 중요시 한다. 이러한 산맥의 조종적 흐름은 혈이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가진 필연적 연결고리로서 가치를 가진 존재로 본다는 것이다. 조종적 연결을 가진 혈과 주변의 자연 지형이 유기적(有機的)으로 결합된 공간에 혈이 존재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풍수에서 자연 지형은 용혈사수(龍穴砂水)와 향(向)이 유기적(有機的)으로 결합되어 인간에서 많은 영향을 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동양적 사고에서 산은 선형적이고 유동적인 흐름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상징적 동물인 용(龍)으로 비유하고 있다. 그래서 풍수에서는 산을 용이라 하고 땅의 기운 즉 지기(地氣)가 운행하는 통로로 보았다. 그리고 이 용을 통해서 흐르는 기가 물을 만나면 운행을 멈추게 되는데 이곳을 혈이라 한다. 그리고 지기는 바람을 만나면 흩어진다고 인식하여 바람을 감추는 주변의 지형이 필요로 하는데 이것을 사(砂)라고 한다. 물은 기를 멈추게 하고, 물의 모양에 따라 길흉의 척도로 삼는다. 용의 흐름과 물의 흐름에 맞는 이상적인 방향을 향(向)이라 한다. 이들 용혈사수와 향이 유기적인 형태로 결합하여 이상적인 공간을 만들게 되면 이것을 명당이라 하고 이곳에 양택과 음택을 조성하게 되면 복을 받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풍수에서 자연은 단순히 인간의 지배를 받는 피동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능동적 존재로 보고 있다. 혈이라는 공간에 음양택이 있으면 산맥을 타고 흐르는 기(氣)로 인해서 복을 받는데, 산의 모양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고 보고 있다. 특히 배산의 모양을 중요시하고 있다. 배산이 소의 모양이면 풍요를 주고, 뱀의 모양이면 자손이 번성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산은 그 모양에 따라 5가지로 표본을 정하고 있는데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라 한다. 산은 목화토금수의 모양에 따라 인간에서 영향을 준다고 보았다.
한반도의 풍수
한반도와 만주를 중심으로 생활의 터전을 마련했던 우리 조상들은 그 기후에 맞는 생활방식을 터득하면서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를 이루었다. 특히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생활문화는 우리 풍토에 맞는 집터 또는 묏자리를 잡는 방식에서 자리잡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풍수에서는 이것을 자생풍수라 한다. 우리 기후와 자연 지형에 맞게 집터를 잡고, 묘지를 조성하는 것은 넓게 보면 상택(相宅)이라는 관점에서 풍수가 된다고 할 수 있다. 특이 터에 대한 신성성(神聖性)은 땅을 어머니로 보는 지모관념(地母觀念)으로 승화되어 우리 전통의 토지관이 되었다.
통일신라 이후 중국의 풍수사상이 유학승을 중심으로 도입되었고 우리의 전통의 상택 또는 토지관과 결합하여 비보풍수(裨補風水)라는 독특한 풍수이론이 정립하게 되었다. 도선(道詵)에 의해 주창된 비보풍수는 명당의 절대성과 불변성을 부정하고 불완전하고 취약한 땅이라도 인간의 노력으로 좋은 땅으로 만들 수 있다는 가변적(可變的) 명당관을 중요시하는 이론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비보숲과 비보사찰 및 비보사탑을 들 수 있다. 마을 앞뜰로 바람이 들어오기 쉽거나, 물이 넘치기 쉬운 경우 숲을 조성하여 마을의 안녕을 찾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보사찰 또는 비보사탑으로는 전라남도 화순군의 운주사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이러한 비보풍수는 고려시대의 중요한 풍수논리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중국의 풍수이론인 음택 풍수를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조선전기에는 형세론(形勢論)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며 임진왜란 이후에는 형세론과 이기론(理氣論)이 공존하다가 조선후기에는 도참적(圖讖的) 성격이 강화되면서 이기론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형세론은 앞에서 언급한 용혈사수를 통하여 명당의 길흉을 판단하는 이론이고, 이기론은 여기에 향을 더하여 향에 따른 길흉을 판단하는 이론이다. 여기서 이상적인 향의 방위는 음양택의 방위가 물이 혈을 지나 빠져나가는 방위와 합리적으로 배치되는가 판단하는 이론이다. 여기서 물이 빠져나가는 곳을 파구(破口)라 한다. 합리적인 방위의 기준은 파구의 방위와 음양택의 방위가 음양(陰陽)의 논리와 오행(五行)의 논리, 주역(周易)의 논리를 적용하여 부합하는가에 있다.
이러한 이기론은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전쟁과 질병, 수탈에서 벗어나 피안의 세계를 그리게 민중들의 심리와 부합되었고, 도참적 성격이 강한 비결서의 책들이 만들어지게 만들었다. 특히 전쟁과 질병을 피할 수 있는 명승지로서 십승지(十勝地) 또는 전국의 명당을 풍수적 상징성으로 소개하는 결록류(訣錄類)가 여기에 해당한다. 결록류에 대표적인 것으로 도선국사결록(道詵國師訣錄), 무학비기(無學秘記), 손감묘결(巽坎妙訣), 명산록(名山錄), 명산도(名山圖), 산도(山圖) 등의 책을 들 수 있다. 그리고 풍수이론서도 발간되었는데, 한반도에 맞는 풍수이론을 재정립한 것은 찾아 볼 수 없으며 대부분 중국의 풍수이론을 소개하거나 요약해서 필사한 것이 주류를 이룬다. 그런데 일부 내용에서 우리 정서에 맞는 독한 이론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교산금두경(喬山金斗經), 일편금(一片金), 무기해(戊己解) 등이 있다.
동양문고 소장 『산도』
현대의 풍수이론은 새로운 이론과 적용의 다양화를 추구하면 발전하고 있다. 특히 과학적 사고와 실증적 사고를 중요시하여 통계와 검증을 통한 이론정립에 힘쓰고 있다. 또한 다양한 분야에서 풍수를 접목하여 활용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풍수의 기원은 고대 중국의 황토 고원지대에서 굴을 파서 흙굴집을 짓고 살던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풍수에서는 좋은 터를 혈(穴)이라고 한다. 혈의 어원을 살펴보면 흙굴방(土室, cave)이라는 뜻으로 바로 굴을 파서 주택을 만드는 흙굴집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풍수의 발생적 특징은 풍수가 단순히 미신적 행위와 주술적 행위를 통한 술수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환경을 경험하면서 발생한 실증적 측면이 강한 학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풍수의 기원에서 알 수 있듯이 풍수는 장풍득수를 할 수 있는 좋은 땅을 혈(穴)이라고 부르는데 혈이라는 이상적인 장소를 찾아 정주(定住)하는데 있다. 이러한 정주 공간의 공간적 특징으로는 산을 기대고 물을 얻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을 이상적으로 가정하고 있다. 배산임수의 지형 공간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혈로 가정되는 정주 공간을 중심으로 뒤에는 병풍처럼 받쳐주는 배산(背山)이 있고, 좌측과 우측으로 바람을 막아주는 산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혈 앞으로 물이 있고, 물 너머로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는 산이 있어야 한다. 풍수에서는 정주 공간의 사면을 산이 막아주고 그 사이로 물이 흐르는 자연 지형을 명당공간(明堂空間)이라 한다.
이러한 지형적 특징을 풍수적 용어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이 풀이된다. 배산이 되는 산을 주산(主山)이라고 하며, 혈을 중심으로 좌측과 우측에서 바람을 막아주는 산을 청룡(靑龍)•백호(白虎)라 한다. 여기서 좌측의 산을 청룡, 우측의 산을 백호라 한다. 그리고 물을 건너 앞에 있는 산을 안산(案山)이라 하고, 안산 너머에 펼쳐진 수많은 산을 조산(朝山)이라 한다. 풍수에서 가정한 이상적 공간은 혈을 중심으로 주산과 청룡•백호 그리고 안산과 조산이 감싸는 지형을 이루는 것이다. 풍수에서는 주산과 청룡•백호, 조안산을 사신사(四神砂)라고 한다. 그리고 배산이 되는 산을 북쪽을 상징한다고 해서 현무(玄武)라고도 하며, 안산은 남쪽을 상지한다고 해서 주작(朱雀)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풍수는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는 양택 또는 양기를 중심에 두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음택을 중심에 두고 있다. 그리고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의 풍수서는 조선시대에 발된 것으로 음택을 중심으로 하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풍수에서의 공간은 양택이든 음택이든, 양기든 음기든 태조산(太祖山)에서 시작해서 중조산(中祖山), 소조산(小祖山), 주산(主山), 혈(穴)로 이어지는 산맥의 조종적(祖宗的) 흐름을 중요시 한다. 이러한 산맥의 조종적 흐름은 혈이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가진 필연적 연결고리로서 가치를 가진 존재로 본다는 것이다. 조종적 연결을 가진 혈과 주변의 자연 지형이 유기적(有機的)으로 결합된 공간에 혈이 존재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풍수에서 자연 지형은 용혈사수(龍穴砂水)와 향(向)이 유기적(有機的)으로 결합되어 인간에서 많은 영향을 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동양적 사고에서 산은 선형적이고 유동적인 흐름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상징적 동물인 용(龍)으로 비유하고 있다. 그래서 풍수에서는 산을 용이라 하고 땅의 기운 즉 지기(地氣)가 운행하는 통로로 보았다. 그리고 이 용을 통해서 흐르는 기가 물을 만나면 운행을 멈추게 되는데 이곳을 혈이라 한다. 그리고 지기는 바람을 만나면 흩어진다고 인식하여 바람을 감추는 주변의 지형이 필요로 하는데 이것을 사(砂)라고 한다. 물은 기를 멈추게 하고, 물의 모양에 따라 길흉의 척도로 삼는다. 용의 흐름과 물의 흐름에 맞는 이상적인 방향을 향(向)이라 한다. 이들 용혈사수와 향이 유기적인 형태로 결합하여 이상적인 공간을 만들게 되면 이것을 명당이라 하고 이곳에 양택과 음택을 조성하게 되면 복을 받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풍수에서 자연은 단순히 인간의 지배를 받는 피동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능동적 존재로 보고 있다. 혈이라는 공간에 음양택이 있으면 산맥을 타고 흐르는 기(氣)로 인해서 복을 받는데, 산의 모양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고 보고 있다. 특히 배산의 모양을 중요시하고 있다. 배산이 소의 모양이면 풍요를 주고, 뱀의 모양이면 자손이 번성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산은 그 모양에 따라 5가지로 표본을 정하고 있는데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라 한다. 산은 목화토금수의 모양에 따라 인간에서 영향을 준다고 보았다.
통일신라 이후 중국의 풍수사상이 유학승을 중심으로 도입되었고 우리의 전통의 상택 또는 토지관과 결합하여 비보풍수(裨補風水)라는 독특한 풍수이론이 정립하게 되었다. 도선(道詵)에 의해 주창된 비보풍수는 명당의 절대성과 불변성을 부정하고 불완전하고 취약한 땅이라도 인간의 노력으로 좋은 땅으로 만들 수 있다는 가변적(可變的) 명당관을 중요시하는 이론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비보숲과 비보사찰 및 비보사탑을 들 수 있다. 마을 앞뜰로 바람이 들어오기 쉽거나, 물이 넘치기 쉬운 경우 숲을 조성하여 마을의 안녕을 찾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보사찰 또는 비보사탑으로는 전라남도 화순군의 운주사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이러한 비보풍수는 고려시대의 중요한 풍수논리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중국의 풍수이론인 음택 풍수를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조선전기에는 형세론(形勢論)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며 임진왜란 이후에는 형세론과 이기론(理氣論)이 공존하다가 조선후기에는 도참적(圖讖的) 성격이 강화되면서 이기론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형세론은 앞에서 언급한 용혈사수를 통하여 명당의 길흉을 판단하는 이론이고, 이기론은 여기에 향을 더하여 향에 따른 길흉을 판단하는 이론이다. 여기서 이상적인 향의 방위는 음양택의 방위가 물이 혈을 지나 빠져나가는 방위와 합리적으로 배치되는가 판단하는 이론이다. 여기서 물이 빠져나가는 곳을 파구(破口)라 한다. 합리적인 방위의 기준은 파구의 방위와 음양택의 방위가 음양(陰陽)의 논리와 오행(五行)의 논리, 주역(周易)의 논리를 적용하여 부합하는가에 있다.
이러한 이기론은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전쟁과 질병, 수탈에서 벗어나 피안의 세계를 그리게 민중들의 심리와 부합되었고, 도참적 성격이 강한 비결서의 책들이 만들어지게 만들었다. 특히 전쟁과 질병을 피할 수 있는 명승지로서 십승지(十勝地) 또는 전국의 명당을 풍수적 상징성으로 소개하는 결록류(訣錄類)가 여기에 해당한다. 결록류에 대표적인 것으로 도선국사결록(道詵國師訣錄), 무학비기(無學秘記), 손감묘결(巽坎妙訣), 명산록(名山錄), 명산도(名山圖), 산도(山圖) 등의 책을 들 수 있다. 그리고 풍수이론서도 발간되었는데, 한반도에 맞는 풍수이론을 재정립한 것은 찾아 볼 수 없으며 대부분 중국의 풍수이론을 소개하거나 요약해서 필사한 것이 주류를 이룬다. 그런데 일부 내용에서 우리 정서에 맞는 독한 이론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교산금두경(喬山金斗經), 일편금(一片金), 무기해(戊己解) 등이 있다.

동양문고 소장 『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