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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한씨 준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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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기는 한성부와 수원부에 거주하던 청주한씨 한필교(韓弼敎)의 호구 정보를 담고 있다.
조선왕조의 호적제도는 식년마다 호적사목을 반포하여 구체적인 조항을 마련하는 등 일률적으로 成籍을 실시하였기 때문에, 호적대장을 작성하기까지의 과정에 있어서 통일도니 모습을 보일 것 같지만, 실제 호구문서에서는 시기별‧지역별로 다양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현존하는 호구단자와 준호구를 살펴보면 대도호부나 한성부는 보통의 작은 군현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한성부는 조선왕조의 首都이자 중앙관서로서 국가의 호적사무를 관장하였기 때문에 그 어느 지역보다도 규정을 준수하여 호적을 작성하였다. 따라서 한성부의 호구자료에는 가옥의 新築, 買入, 借入, 貰入 및 移住 등, 주민들의 거주생활과 관련된 용어들이 매우 상세히 그리고 다양하게 기재·확인되고 있다.(임학성 2004 논문 참조) 또한 한성부는 중앙조정의 관직자들이 살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였기 때문에, 정치사적으로 중요한 인물 혹은 가문의 준호구도 종종 발견된다. 이러한 관직자 가문의 준호구는 해당 인물 및 가문의 정치적 부침, 관직 변동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가 된다.
1834년 한필교(韓弼敎) 준호구(準戶口)
아래에 제시된 4개의 준호구는 한성부와 수원부에 거주하던 청주한씨 한필교(韓弼敎)의 호구 정보를 담고 있다. 한필교(1807-1878)는 조선후기에 호조참의, 공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833년은 그가 소과에 입격하여 진사 신분을 취득한 해이다. 현재 한필교의 1834년에 발급받은 준호구는 두 건이 있는데, 한 건은 한성부에서 발급받은 것으로 직역이 進士로 기재되어 있고, 다른 한 건은 수원부에서 발급받은 것으로 직역이 幼學으로 기재되어 있다. 양자의 직역이 다른 이유는 수원부 준호구는 진사 입격 이전, 한성부 준호구는 진사 입격 이후에 발급되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이후 1852년과 1873년의 준호구는 한필교의 당시 상황을 잘 보여준다. 1852년의 준호구를 보면 한필교의 직역은 통훈대부 전행서흥도호부사(通訓大夫 前行瑞興都護府使)로 기재되고 있는데, 이는 한필교가 1849년에 瑞興都護府使에 임명되었다가 이듬해 파직당하고 文義縣으로 귀양갔다 와서 본가에 낙향해있던 상황을 보여준다. 또 1873년의 준호구를 보면 한필교의 직역은 통훈대부 전행성주목사(通訓大夫 前行星州牧使)로 기재되어 있는데, 당시 한필교는 1862년에 星州牧使에 제수되었으나 병을 핑계하고 부임하지 않았고, 이후 宗親府典簿, 金浦郡守를 역임하고, 信川郡守자리에 있다가 파직되어 益山으로 귀양을 갔다. 그가 다시 벼슬에 제수된 것은 1876년이었으므로 이 준호구는 귀양을 다녀와서 본가에 낙향해 있던 한필교의 상황을 보여준다. 이들 준호구를 통해 19세기에 서울 근교에 터전을 두고 있었던 양반 관료의 관직생활을 엿볼 수 있다.
한편 두 건의 1834년 준호구를 살펴보면, 수원부 발급 준호구와 한성부 발급 준호구에서 처 홍씨의 아버지 洪奭周의 직함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수원부 준호구에는 위와 같이 호조판서 겸 규장각재학 세손우빈객으로, 한성부 준호구에는 이조판거 겸 규장각제학라고 기재된 것이다. 1833년에 戶曹判書에 재임 중이었고 7월에는 右賓客이 되었다. 1834년 1월에 吏曹判書에 임명되었다. 따라서 수원부 준호구는 실제로는 1833년에 작성되었고, 한성부는 1834년에 작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순서

자료명

발급

수취

1

1834년 한필교(韓弼敎) 준호구(準戶口)

수원부 유수

(水原府 留守)

한필교(韓弼敎)

2

1834년 한필교(韓弼敎) 준호구(準戶口)

한성부 판윤

(漢城府 判尹)

한필교(韓弼敎)

3

1852년 한필교(韓弼敎) 준호구(準戶口)

수원부 유수

(水原府 留守)

한필교(韓弼敎)

4

1873년 한필교(韓弼敎) 준호구(準戶口)

수원부 유수

(水原府 留守)

한필교(韓弼敎)

※ 참고문헌
전수경, 「韓弼敎의『隨槎錄』 硏究」,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과 석사학위논문, 2010.
문현주, 『조선후기 戶口文書의 작성 과정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13.
임학성, 「조선후기 漢城府民의 戶籍자료에 보이는 '時入'의 성격 -漢城府 주민의 주거 양상을 구명하기 위한 一試論-」, 『고문서연구』 24,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