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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경복궁 중건을 위한 원납전(願納錢) 기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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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들은 1866년(고종 3)에 원납전(願納錢) 징수와 관련한 문서로서 총 15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문서들은 1866년(고종 3)에 원납전(願納錢) 징수와 관련한 문서로서 ①1866년 백종수(白宗洙)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②1866년 유학(幼學) 이경후(李經垕)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③1866년 홍한섭(洪漢爕)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④1866년 유학(幼學) 이주석(李柱錫)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⑤1866년 김계원(金啓遠)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⑥1866년 김종현(金鍾鉉)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⑦1866년 김복동(金福東)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⑧1866년 김기풍(金基豊)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⑨1866년 염석만(廉碩萬)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⑩1866년 정완수(鄭完綏), 정기홍(鄭基弘)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⑪1866년 신인오(申仁五)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⑫1866년 최학심(崔學心)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⑬1866년 최성춘(崔成春)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⑭1866년 시옥문(柴玉文)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⑮1866년 정상시(丁象蓍)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등 총 15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1866년 백종수(白宗洙)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원납전(願納錢)은 1865년(고종 2)에 대원군이 경복궁 중수 계획을 수립하면서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각계각층에 자진해서 돈을 기부하도록 지시하면서 마련된 재원을 말한다. 대원군의 결정에 따라 중앙의 고위 관료에서부터 지방 관리에 이르기까지 재력에 따라 원납전을 납부하였으며, 납부한 이들중 일부는 사서(士庶)에 상관없이 벼슬을 받기도 하였다. 원납전은 1865년(고종 2)에만 징수 10여 개월 만에 468만 6,298냥을 거두어들였다. 그러나 이듬해 경복궁 중수공사장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큰 난관에 봉착하였다. 민심의 동요와 함께 원납전의 징수액도 크게 감소하여 1866년에는 104만 9,219냥, 1867년 10만 5,326냥, 1868년 85만 7,869냥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1865년부터 1868년까지 징수한 원납전 총액 710만 이상은 당시 1년 세입(稅入)과 비교했을 때 결코 적지 않은 액수였다.
원납전의 징수액이 줄자 정부에서는 노동력을 강제로 동원한다든가 문세(門稅)ㆍ결두전(結頭錢) 등을 추가로 징수하였다. 또한 고액권인 당백전(當百錢)을 발행하여 국가경제에 큰 혼란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당시 당백전은 6개월여 동안 1,600만 냥이라는 거액이 주조되었는데, 화폐의 가치가 너무 높게 책정되었기 때문에 시장의 혼란만 가중시킨 채 유통에 실패하고 모두 회수되고 말았다. 화폐 유통에 실패한 정부는 원납전과 같은 부가세 성격의 재원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원납전은 경복궁 중건 이후에도 계속해서 징수되었다. 정부는 대대적인 군사력 강화 과정에서도 원납전을 활용하였다. 중앙 정부의 묵인 하에 이루어지는 원납(願納)은 사실상 강탈인 경우가 많았다. 이에 따라 점차 원납전은 항상적인 세금으로 변모해가고 있었다. 경복궁 중건공사가 진행되는 기간에는 그나마 영건도감에서 매달 초 원납전의 징수액만이라도 국왕에게 보고했지만, 이후로는 그러한 보고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방 각지에서 징수되는 원납전의 규모를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본 문서들은 1866년(고종 3)에 경복궁 중건공사를 위해 지방에서 원납전에 징수되던 실태를 상세히 보여준다. ①-⑮번 문서는 모두 전라도(全羅道) 임실현(任實縣)에 살던 백성들이 각각 원납전을 납부하면서 올린 단자(單子)이다. 단자에는 기부한 날짜와 기부자의 주소, 직역, 성명, 기부 목적, 기부액 등이 기재되어 있다. 임실현에서는 1866년 1월 16일과 17일 양일(兩日)에 집중적으로 기부가 이루어졌으며 기부자들은 주로 임실현 신평면과 옥전면에 거주하는 사람들이었다. 직역은 유학(幼學)이라 기재한 경우도 있었지만, 성명만 적은 경우가 더 많았다. 기부 목적은 모두 경복궁 중건사업에 충당하기 위해서였으며, 기부 금액은 적게는 5냥에서 많게는 45냥에 이르렀다. ⑩번 문서의 경우 유일하게 한 단자에 두 사람의 기부 내역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문서들은 지방에서의 원납전 징수 현황과 금액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매우 중요한 사료이다.

순서

자료명

발급

수취

1

1866년 백종수(白宗洙)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백종수(白宗洙)

임실현감(任實縣監)

2

1866년 유학(幼學) 이경후(李經垕)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이경후(李經垕)

임실현감(任實縣監)

3

1866년 홍한섭(洪漢爕)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홍한섭(洪漢爕)

임실현감(任實縣監)

4

1866년 유학(幼學) 이주석(李柱錫)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이주석(李柱錫)

임실현감(任實縣監)

5

1866년 김계원(金啓遠)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김계원(金啓遠)

임실현감(任實縣監)

6

1866년 김종현(金鍾鉉)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김종현(金鍾鉉)

임실현감(任實縣監)

7

1866년 김복동(金福東)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김복동(金福東)

임실현감(任實縣監)

8

1866년 김기풍(金基豊)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김기풍(金基豊)

임실현감(任實縣監)

9

1866년 염석만(廉碩萬)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염석만(廉碩萬)

임실현감(任實縣監)

10

1866년 정완수(鄭完綏), 정기홍(鄭基弘)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정완수(鄭完綏)

정기홍(鄭基弘)

임실현감(任實縣監)

11

1866년 신인오(申仁五)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신인오(申仁五)

임실현감(任實縣監)

12

1866년 최학심(崔學心)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최학심(崔學心)

임실현감(任實縣監)

13

1866년 최성춘(崔成春)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최성춘(崔成春)

임실현감(任實縣監)

14

1866년 시옥문(柴玉文)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시옥문(柴玉文)

임실현감(任實縣監)

15

1866년 정상시(丁象蓍) 원납전단자(願納錢單子)

정상시(丁象蓍)

임실현감(任實縣監)

※ 참고문헌
연갑수, 『대원군집권기 부국강병정책 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