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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4-1705년 통진현(通津縣) 능동(陵洞) 지역 토지매매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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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들은 17세기 중반에서 18세기 초반 통진현(通津縣) 능동(陵洞)의 토지매매와 관련한 문서로서 ①1644년 차노(差奴) 복산(福山) 패지(牌旨), ②1644년 문언수(文彦守)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③1705년 이점(李點)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등 총 3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문서들은 17세기 중반에서 18세기 초반 통진현(通津縣) 능동(陵洞)의 토지매매와 관련한 문서로서 ①1644년 차노(差奴) 복산(福山) 패지(牌旨), ②1644년 문언수(文彦守)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③1705년 이점(李點)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등 총 3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1644년 차노(差奴) 복산(福山) 패지(牌旨)
조선후기 통진현은 경기 서북부의 강화부(江華府)와 김포군(金浦郡) 사이에 위치하였다. 군사적으로는 수원진관(水原鎭管)에 편제되어 병마동첨절제사(兵馬同僉節制使)가 관할하는 지역이었다. 지리적으로 도성과 가깝고 서해를 오고가는 한강의 입구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군사·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통진현 내에서 능동(陵洞)은 관문(官門)에서 남쪽으로 약 20리 떨어진 대파면(大坡面)에 소속된 마을이었다.
①번 문서는 상전(上典)이 차노(差奴) 복산(福山)에게 능동(陵洞)에 소재한 토지를 매매할 것을 지시하면서 작성해 준 패지(牌旨)이다. 이 문서에는 전답의 면적과 매매가격, 지급물종이 명시돼 있다. ②번 문서는 문언수(文彦守)라는 자가 복산(福山)에게 토지를 사면서 받은 매매명문이다. 이 명문에는 ①번 문서의 토지매매 결과를 보여주는데, 패지(牌旨)에서 언급한 매매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에 매매가 이루어진 점이 특징적인 부분이다. ③번 문서도 통진현(通津縣) 내 토지매매 결과를 보여주는 매매명문으로서 토지의 면적과 매매가격이 명시되어 있다. 여기서는 매매가를 ①, ②번과 같이 목면(木綿)이 아닌 동전으로 지급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세 문서들은 17세기 후반 토지시세와 매매방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순서

자료명

발급

수취

1

1644년 차노(差奴) 복산(福山) 패지(牌旨)

상전(上典) 심(沈)

노(奴) 복산(福山)

2

1644년 문언수(文彦守)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노(奴) 복산(福山)

문언수(文彦守)

3

1705년 이점(李點)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문국명(文國命)

이점(李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