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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혜청 공사지 공인권 관련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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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기는 1760년부터 1847년까지 선혜청에 공사지(公事紙) 일부를 납품할 수 있는 공인권을 매매하는 내용이다.
조선은 국가재정에 필요한 물품을 지방에서 현물로 수취하는 공납제를 운영하였다. 그러나 공납제는 부산공물의 분정, 공물 납부과정에서 발생하는 방납의 폐해 등 운영상에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선정부는 공물을 현물이 아닌 쌀과 포(布)로 징수하는 대동법을 시행하였다.
1760년 전시벽(田時闢) 선혜청(宣惠廳) 공사지(公事紙) 공인권(貢人權) 매매명문(賣買明文)
대동법은 1608년(광해군 즉위년)에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되었다. 이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함경도, 경상도, 황해도에 연이어 대동법이 시행되었다. 대동법 시행으로 이후 수취된 대동미를 운영, 관리할 조직으로 선혜청이 설립되었다. 선혜청은 상평청, 진휼청, 군역청을 순차적으로 속하게 되면서, 호조를 능가하는 조선후기 최대의 재정기구가 되었다. 선혜청은 1894년 갑오개혁때 대동법이 폐지되면서 함께 혁파되었다.
선혜청공사지(宣惠廳公事紙)는 선혜청에서 공용문서로 쓰는 종이를 의미한다. 선혜청은 공사지를 공인을 지정하여 이들이 전담 납부토록 하였다. 이러한 납품권한을 공인권이라 하고, 공인권은 매매 내지 상속되기도 하였다.
1문기는 선혜청에 공사지(公事紙) 일부를 납품할 수 있는 공인권을 매매한 문기이다. 총 10개의 매매문기가 이어져 있다. 공인권은 전시벽(田時闢) → 안익수(安益受) → 조명윤(趙明胤) → 강종(康宗) → 김시복(金時福) → 이사공(李思恭) → 천세익(千世翊) → 유광연(劉光淵)) → 안동윤(安東潤)으로 이전되었다. 매매가격은 600냥 → 370냥 → 1천냥 → 1천냥 → 1천냥 → 1,150냥 → 1,200냥 → 1,350냥 → 1354냥 5전 4푼 → 1354냥 5전 4푼으로 변동되고 있다. 본 문기 중에서 [1]-1에서 전시벽이 공인권을 매입한 계기가 제시되어 있다. 1760년 선혜청공사지계(宣惠廳公事紙契)는 종이산지에서 발생한 흉년으로 인해 종이 확보가 어렵게 되자, 서울에서 구매하여 납부하는 과정에서 부채가 4천냥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자 선혜청공사지계(宣惠廳公事紙契)는 부채 경감을 위해 계원의 회의를 거쳐 전시벽에게 500냥을 받고 공사지 납품의 일부 권한을 넘기게 되었다. 문서 말미에 회의에 참석한 계원의 직위(大房, 首席, 領座, 任)와 명단이 기재되어 있다. 공인계 내부의 운영방식을 엿 볼 수 있다.
2문기는 첩문 1개와 공인권 매매명문 2개로 구성되어 있다. [2]-1은 첩문으로 선혜청에서 공사지(公事紙)의 공물값을 예전 수준으로 복구하자, 선혜청공사지계(宣惠廳公事紙契)에서 공인별로 할당되는 공물의 분량을 조정하는 내용이다. 선혜청은 공인계에게 규정된 공물값을 지급해야만 했으나, 대동미 수입의 감소와 재정 지출의 증대로 인해 재정난이 발생하면 공물값을 적게 지급할 수 밖에 없었다. 이 경우 선혜청의 재정운영이 정상화되면 공물값을 원상복구하기도 하였다. 이 같은 선혜청의 공물값 지급액수는 공인계 운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고, 이에 대해서 공인계는 계원들간의 회의를 통해 대응하였다. [2]-1은 이러한 공인계의 대응모습을 엿볼 수 있다. 나머지 공인권 매매명문에서 공인권은 장진(張璡) → 이재승(李載升) → ? 으로 이전되었고, 매매가격은 650냥에서 1,400냥으로 상승하였다.
3문기는 첩문으로 선혜청에 장백지(狀白紙)를 납부할 수 있는 공인권을 박탈하는 내용이다. 유광연(劉光淵)이 장백지 납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자, 공인계는 그에게 공인권을 회수하고 이를 안성수에게 지급하는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유광연은 공인계에게 공인권값을 되돌려 받았다. 안성수 역시 공인계에게 일정 액수의 공인권값을 지급한 후에 공인권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순서

자료명

발급

수취

1-1

1760년 전시벽(田時闢) 선혜청(宣惠廳) 공사지(公事紙) 공인권(貢人權) 매매명문(賣買明文)

선혜청 공사지계(宣惠廳公事紙契)

전시벽(田時闢)

1-2

1777년 안익수(安益受) 선혜청(宣惠廳) 공사지(公事紙) 공인권(貢人權) 매매명문(賣買明文)

전시벽(田時闢)

안익수(安益受)

1-3

1782년 조명윤(趙明胤) 선혜청(宣惠廳) 공사지(公事紙) 공인권(貢人權) 매매명문(賣買明文)

안익수(安益受)

조명윤(趙明胤)

1-4

1786년 강종(康宗) 선혜청(宣惠廳) 공사지(公事紙) 공인권(貢人權) 매매명문(賣買明文)

조명윤(趙明胤)

강종(康宗)

1-5

1787년 김시복(金時福) 선혜청(宣惠廳) 공사지(公事紙) 공인권(貢人權) 매매명문(賣買明文)

강종(康宗)

김시복(金時福)

1-6

1793년 이사공(李思恭) 선혜청(宣惠廳) 공사지(公事紙) 공인권(貢人權) 매매명문(賣買明文)

김시복(金時福)

이사공(李思恭)

1-7

1795년 이사공(李思恭) 방매 선혜청(宣惠廳) 공사지(公事紙) 공인권(貢人權) 매매명문(賣買明文)

이사공(李思恭)

천세익(千世翊)

1-8

1801년 유광연(劉光淵) 선혜청(宣惠廳) 공사지(公事紙) 공인권(貢人權) 매매명문(賣買明文)

천세익(千世翊)

유광연(劉光淵)

1-9

1810년 유광연(劉光淵) 방매 선혜청(宣惠廳) 공사지(公事紙) 공인권(貢人權) 매매명문(賣買明文)

유광연(劉光淵)

안동윤(安東潤)

1-10

1829년 안동윤(安東潤) 방매 선혜청(宣惠廳) 공사지(公事紙) 공인권(貢人權) 매매명문(賣買明文)

안동윤(安東潤)

 

2-1

1847년 장진(張璡) 선혜청(宣惠廳) 공사지(公事紙) 공인권(貢人權) 첩문(帖文)

선혜청 공사지계(宣惠廳公事紙契)

장진(張璡)

2-2

1847년 장진(張璡) 방매 선혜청(宣惠廳) 공사지(公事紙) 공인권(貢人權) 매매명문(賣買明文)

장진(張璡)

이재승(李載升)

2-3

1853년 이재승(李載升) 방매 선혜청(宣惠廳) 공사지(公事紙) 공인권(貢人權) 매매명문(賣買明文)

이재승(李載升)

 

3

1810년 안성수(安聖秀) 선혜청(宣惠廳) 장백지(狀白紙) 공인권(貢人權) 첩문(帖文)

유광연(劉光淵)

안성수(安聖秀)

※ 참고문헌
宋贊植, 「三南方物紙貢考」(上)․(下),『震檀學報』37․38, 1974.
劉元東, 「朝鮮朝 貢人資本 」,『韓國近代經濟史硏究』, 一志社, 1977.
金玉根, 『朝鮮王朝財政史硏究』3, 一潮閣,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