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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양자(養子)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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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19세기 후반 서진사댁(徐進士宅)의 수양자(收養子)와 관련한 문서로서 ①1871년 오득복처(吳得福處) 명문(明文), ②고시대간혹유차등사(古時代間或有此等事) 등 2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명문(明文)은 개인 간의 거래에서 권리나 자격과 관련한 사실들을 증명하기 위해 발급해주는 문서를 말한다. 본 문서는 양자를 들이면서 집안 간에 주고받은 내용들을 증빙하고 있다.
이 문서들은 19세기 조선사회에서 양자를 들이던 방식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①번 문서는 1871년 서진사댁에서 오득복의 아들을 양자로 들이면서 발급해준 명문이다. 문서들에 등장하는 서진사와 오득복이 어떤 인물인지는 정확히 확인이 불가능하다. 명문에는 양자를 들인 날짜, 명문을 받는 사람의 이름, 명문의 작성 목적과 세부 내용, 발급자의 이름과 수결이 포함되어 있다. 이 문서에서 서진사댁에서는 오득복의 아들을 양자로 들이면서 보답의 의미로 특정 물품을 지급하였다. ②번 문서는 ①번 문서를 풀이해 놓은 문서이다. 구체적인 작성 시기와 작성자는 알 수 없지만 문서의 내용과 문체로 보았을 때 20세기 이후에 ①번 문서를 수집한 기관이나 개인이 문서의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작성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서에는 예전 양반가(兩班家)에서 아이를 많이 낳았으나 양육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길 경우 다른 사람에게 양자로 보내되 순금으로 제조된 고도금(高道金)이라는 물품을 받아 신의를 확인하는 풍속이 있었다고 풀이하였다. 또한 수양아(收養兒)는 출산 후 100일 이내에 양여(讓與)하였다가 그 아이가 잘 자라서 만 10세 가량이 되면 낳아준 부모에게 돌아왔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설명이 조선 후기 수양자 관행의 보편적인 모습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시기나 지역에 따라 행해지던 관행의 한 형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1871년 오득복처(吳得福處) 명문(明文)
두 문서에는 조선 후기 향촌사회에서 양자를 보내고 받는 목적과 방식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양자로 가서 일생 동안 계속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나이가 되면 본래 부모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은 주목되는 점이다. 경제적 문제로 인해 양육이 어려워지자 대신 양육을 부탁하기 위해 양자를 보낸 것이다. 양자를 받은 서진사댁에서 신의의 표시로 순금제조물을 지급하였다는 사실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당시 순금이 민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물품이 아니었던 점을 고려할 때 유사한 다른 사례와의 비교도 요구된다. 한편, ①번 문서의 내용만을 가지고 서진사댁에서 양자를 받은 목적이나 오득복의 집안 사정 등은 파악하기 힘들다. 따라서 ②번 문서가 ①번 문서의 상황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또한 양자를 들이는 집안과 성씨가 서로 다르다는 점도 특기할 점이다. 조선 후기 양자는 집안에 대(代)를 이을 아들이 없을 경우에 가계계승을 위한 목적으로 동성동본(同姓同本) 구성원 중에 항렬이 맞는 남자를 자식으로 맞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양자가 되면 양부(養父)의 족보에 오르고, 양부로부터 가계와 재산, 사회적인 신분까지 계승받았다. 따라서 동일 성씨를 갖는 것은 양자의 중요한 조건이었지만, 다른 성씨의 양자를 들이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양자가 양부의 가계를 계승하지는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아동의 양육을 돕거나 노동력 확보를 위해 양자를 들이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 같은 사례가 얼마나 일상적이었는지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본 문서에는 양자의 목적을 양육비용에만 초점을 맞춰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보다 구체적인 상황은 알 수가 없다. 다만, 양자를 들이는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 만큼 조선후기 양자 풍속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다. 문서의 목록과 발급자, 수취자를 정리한 내용은 아래의 표와 같다.

순서

자료명

발급

수취

1

1871년 오득복처(吳得福處) 명문(明文)

서진사(徐進士)

오득복(吳得福)

2

고시대간혹유차등사(古時代間或有此等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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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服部民夫, 「朝鮮時代後期의 養子收養에 관한 硏究-東萊鄭氏派譜의 分析-」, 『韓國學報』 11, 일지사, 1978.
崔在錫, 「朝鮮時代의 養子制와 親族組織」, 『역사학보』 86, 역사학회, 1980.
집필자 : 임성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