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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1897년 면주전 세폐수가초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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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부들은 1865년에서 1897년까지 면주전에서 세폐(歲幣)에 쓰이는 면주를 납품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수입과 지출 내역을 정리한 수가책이다. 해당 기간 모든 연도의 수가책이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빠진 연도가 있으며, 또 같은 해의 장부이지만 정리 이전의 장부와 수입과 지출이 비교적 정리된 장부가 함께 남아있기도 하다. 모두 총 20년 동안 25책의 장부가 남아있다. 세폐(歲幣)는 매년 10월 중국으로 가는 사신이 가지고 가는 공물을 말한다. 수가책(受價冊)은 면주전 등이 정부에 면주를 진배한 이후 그 대가를 받은 시점에서의 입금액과 목적별 지출을 기록한 것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이전의 장부가 초책(草冊)이다.
이 장부들은 1865년에서 1897년까지 면주전에서 세폐(歲幣)에 쓰이는 면주를 납품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수입과 지출 내역을 정리한 수가책이다. 해당 기간 모든 연도의 수가책이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빠진 연도가 있으며, 또 같은 해의 장부이지만 정리 이전의 장부와 수입과 지출이 비교적 정리된 장부가 함께 남아있기도 하다. ②-1과 ②-2는 같은 해의 장부이지만 두 차례의 세폐 내역을 정리한 다른 내용의 장부이다. ⑫-1번, ⑮-1번, ⑯-1번, ⑰-1번 등은 수입과 지출 내역이 체계적으로 정리되기 이전의 장부이며, 해당번호의 2번은 그 내역을 수입과 지출 내역에 따라 정리한 장부이다. 그리고 ⑳번 장부는 겉면이 결락되어 작성 연도를 확인할 수 없다. 이렇게 중복되고 결락된 해를 제외하고, 총 20년 동안 25책의 장부가 남아있다. 수가책(受價冊)은 면주전 등이 정부에 면주를 진배한 이후 그 대가를 받은 시점에서의 입금액과 목적별 지출을 기록한 것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이전의 장부가 초책(草冊)이다.
수가책의 기재내용에 따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순서로 수가 절차가 진행되었다.
1865년 면주전(綿紬廛) 세폐예비수가초책(歲幣預備受價草冊).
① 대가의 수취(受價) : 납입 품목별로 면주 1필당 공정납입가격이 정해져 있어, 그 가격에 따라 돈, 무명, 쌀을 지급받았다. 세폐의 경우 면주 1필 당 대동목(大同木) 9필이 공정 납입 가격이었다. 그리고 지불 방법은 총액의 2/3는 화폐, 1/3은 대동목으로 지급하였다. 이러한 납입 가격과 지불 방법은 1865년에서 1897년까지 변동이 없었다.
② 인정과 각종 잡비의 지출 : 대가를 지급받을 때는 이에 관여한 관리들에게 각종 인정을 지불하였다. 세폐 납입과 관련된 관리, 군인 등에게 지급하는 인정을 대략 수가총액의 10% 정도를 차지하였다. 이외에 염색과정에서 들어간 공전이나 인정도 제외하며, 세폐 납입이나 대가를 수취할 때의 짐꾼들에게 들어가는 비용 역시 공제하였다. 또 大房이나 영위, 수가차지와 같은 면주전 임원들에게 할당되는 추가이익 부분도 공제하였다. 이와 같은 다양한 비용을 공제한 실수입을 확정해서 기재하였다. 통상 인정이나 운반 금액의 상세한 내역은 항목별로 명기해서 후록에 기재하며, 앞부분에는 합계만 기록하는 경우가 많다.
③ 조달 면주의 대금 지불 : 대가를 지급받으면 조달한 면주 대금을 각 상인들에게 지불하였다. 품질, 시가에 따라 약간의 변동이 있다. 면주 조달에 드는 비용을 본색(本色)이라고 한다.
③ 분배 : 수가하면 면주전 소속 상인들에게 이익을 분배한다. 이를 분아(分兒)라고 하였다. 세폐의 경우 지급받은 대동목을 분아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면주전에 정식으로 출전한 상인 뿐만 아니라, 사망한 시전 상인, 공깃(空衿: 구체적으로 어떤 상인을 말하는지 알 수 없음)으로 표현된 시전 상인, 시전 소속 상인은 아니지만 면주전의 점포에서 영업을 하는 출시인에게도 이익의 일부를 배분하였다. 이들에게는 모두 동일한 액수를 지급하였다.
이렇게 분배가 끝나고 남은 액수와 공깃 몫으로 분배된 액수를 합하여, 세폐를 진배하는 데 들어간 원가를 보상해주고 있다. 그리고 남는 돈은 보용소와 왜단소의 수입으로 기록하였다.
수가책에 나오는 보용소는 면주전 전체의 주요한 운영 자금을 관리한 재무담당 조직이다. 왜단소는 왜인 예단을 조달, 납품하는 조직이다. 명치유신 이후 왜인 예단은 폐지되지만, 재무조직으로 존속했다.
위의 자료들은 상당히 장기간에 걸친 면주전의 세폐 관련 회계 내역을 보여주고 있다. 1876년 이후 미가의 급등, 화폐 개혁 실패 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국가를 상대로 한 시전 상인들에게도 큰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조선 정부의 독특한 지불방식, 즉 조달받은 면주에 대해 화폐만 지급하지 않고, 화폐와 면포, 마포, 쌀 등을 섞어서 지급하는 방식은 시전 상인들에게 각 품목 사이의 시가차이를 활용하여 손해를 보전할 수 있도록 하였음을 이 수가책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면주전의 물종별, 즉 세폐 이외에 토주나 방물 등의 수가책과 함께 연구하면, 개항을 전후한 시기 정부의 진상과 공물 운영 시스템의 변화, 정부 공인 조달 조직으로서의 시전 운영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실상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시전상인과 국가재정의 관계를 밝히는데 있어서는 가장 직접적이고 1차 자료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이와 함께 개항으로 인한 미곡이나 면포의 가격 변동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도 밝힐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자료가 조선 후기 상업사 연구에서 차지하는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순서

자료명

발급

수취

1

1865년면주전(綿紬廛)세폐예비수가초책(歲幣預備受價草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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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1876년면주전(綿紬廛)세폐예비수가초책(歲幣預備受價草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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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1876년면주전(綿紬廛)세폐수가초책(歲幣受價草冊)상(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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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877년면주전(綿紬廛)세폐수가초책(歲幣受價草冊)상(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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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879년면주전(綿紬廛)세폐수가초책(歲幣受價草冊)상(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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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880년면주전(綿紬廛)세폐수가초책(歲幣受價草冊)상(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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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882년면주전(綿紬廛)세폐수가초책(歲幣受價草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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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883년면주전(綿紬廛)세폐수가초책(歲幣受價草冊)상(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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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884년면주전(綿紬廛)세폐수가초책(歲幣受價草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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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885년면주전(綿紬廛)세폐수가초책(歲幣受價草冊)상(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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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886년면주전(綿紬廛)세폐수가초책(歲幣受價草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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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887년면주전(綿紬廛)세폐수가초책(歲幣受價草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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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1888년면주전(綿紬廛)세폐수가초책(歲幣受價草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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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1888년면주전(綿紬廛)세폐수가초책(歲幣受價草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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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889년면주전(綿紬廛)세폐수가초책(歲幣受價草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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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890년면주전(綿紬廛)세폐수가초책(歲幣受價草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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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1891년면주전(綿紬廛)세폐수가초책(歲幣受價草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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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1891년면주전(綿紬廛)세폐수가초책(歲幣受價草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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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1892년면주전(綿紬廛)세폐수가초책(歲幣受價草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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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1892년면주전(綿紬廛)세폐수가초책(歲幣受價草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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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1893년면주전(綿紬廛)세폐수가초책(歲幣受價草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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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1893년면주전(綿紬廛)세폐수가초책(歲幣受價草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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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95년면주전(綿紬廛)세폐수가초책(歲幣受價草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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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897년면주전(綿紬廛)세폐수가초책(歲幣受價草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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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면주전(綿紬廛)세폐수가초책(歲幣受價草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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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고동환, 「개항전후기 시전상업의 변화 -綿紬廛을 중심으로-」, 『서울학연구』 32, 2008.
須川英德, 「시전상인과 국가재정:가와이〔河合〕 문고 소장의 綿紬廛 문서를 중심으로」 『조선후기 재정과 시장: 경제체제론의 접근』(이헌창 엮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0
Owen Miller, 「시전-국가 간 거래와 19세기 후반 조선의 경제위기:綿紬廛을 중심으로」 『조선후기 재정과 시장: 경제체제론의 접근』(이헌창 엮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0
집필자 : 이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