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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면주전 좌목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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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들은 1893년 면주전의 하부 조직 중 하나로 보이는 패(牌) 소속 상인들의 명단을 정리한 것이다. 각각 1패와 2패, 호조패에 속한 상인의 명단을 정리한 총 3건으로 이루어졌다. 좌목(座目)은 특정 기구나 조직에 속한 이들의 명단을 직임 순서대로 정리한 문서이다.
이 문서들은 1893년 면주전의 하부 조직 중 하나로 보이는 패(牌) 소속 상인들의 명단을 정리한 문서로서 ①1893년 면주전(綿紬廛) 이패좌목책(二牌座目冊), ②1893년 면주전(綿紬廛) 일패좌목책(一牌座目冊), ③ 1893년 면주전(綿紬廛) 호조패좌목책(戶曹牌座目冊) 등 총 3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좌목(座目)은 특정 기구나 조직에 속한 이들의 명단을 직임 순서대로 정리한 문서이다.
1893년 면주전(綿紬廛) 이패 좌목책(二牌座目冊)
면주전에는 다양한 조직이 있었다. 면주전 시전 상인으로 가입된 사람은 면주전 내부에 목적별로 설립된 조직에 소속되어 면주전인으로 활동하였다. 이러한 조직은 수주계, 토주계, 백사계와 같이 판매물종별 상인 집단이 계를 결성하기도 하였고, 조비계나 무주계처럼 담당업무에 따른 분화도 이루어졌다.
그리고 판매 장소에 따른 조직도 결성되었다. 면주전에는 종로에 후1방, 후2방, 제1방과 같은 영업용 건물이 있었고, 점포에서 영업하는 상인은 자신의 점포가 있는 건물에 따라 결성된 조직에 가입하였다. 한편 면주전이 확대되면서 종로의 시전 건물 이외에 다양한 곳에서 영업을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영업 장소에 따라 所라고 하는 조직이 결성되기도 하였다.
이 문서들은 위의 계나 소와는 성격이 다른 '패'라는 조직도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다만 소속 상인의 명단만 남아있기 때문에 그 기능이나 성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그러나 중국제 수입비단을 판매했던 가장 큰 시전인 입전에서는, 시전상인으로 가입할 때 가입비와 함께, 小牌와 大牌에 禮錢을 납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시전 가입과 함께 소속되어야 하는 조직이 아닐까 추정된다.
①번 문서에는 2패에 소속된 64명의 명단이 실려 있다. ②번 문서는 1패에 소속된 60명의 명단이 실려있다. ③번 문서는 호조패에 소속된 38명의 이름이 실려있다. 그리고 이들 문서에 나온 명단에는 죽었거나 조직에서 퇴출된 이들임을 알려주는 표시가 있다. 아마도 1893년 1패와 2패, 호조패 소속 상인 중에서 죽거나 새로 가입하는 등 소속 상인의 변동 상황을 1898년에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들 자료에 나오는 명단을 분석해보면, 1패와 2패는 중복되지 않으나 호조패는 1패와 2패 구성원의 일부가 소속되어 있다. 즉 1패, 2패와는 달리 호조패는 다른 패 구성원이 중복해서 가입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호조패라는 명칭에서 호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조직으로 이해된다. 면주전은 중국 사신의 방물과 세폐를 부담하고 있었는데, 이에 대한 비용을 호조에서 지불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따라서 호조패는 이러한 면주전의 세폐, 방물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패는 면주전에서 국가를 대상으로 물자를 납품하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들 자료와 관련된 자료들이 발굴되어 패의 성격과 기능 등에 대해 앞으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순서

자료명

발급

수취

1

1893년 면주전(綿紬廛) 이패 좌목책(二牌座目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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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893년 면주전(綿紬廛) 일패 좌목책(一牌座目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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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893년 면주전(綿紬廛) 호조패 좌목책(戶曹牌座目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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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고동환, 「개항전후기 시전상업의 변화 -綿紬廛을 중심으로-」, 『서울학연구』 32, 2008.
須川英德, 「시전상인과 국가재정:가와이〔河合〕 문고 소장의 綿紬廛 문서를 중심으로」, 『조선후기 재정과 시장: 경제체제론의 접근』(이헌창 엮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0.
Owen Miller, 「시전-국가 간 거래와 19세기 후반 조선의 경제위기:綿紬廛을 중심으로」, 『조선후기 재정과 시장: 경제체제론의 접근』(이헌창 엮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0.
집필자 : 이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