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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1910년 면주전 보용소 전장사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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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부들은 1906년과 1910년 보용소의 자금 현황을 정리한 것이다. 전장(傳掌)은 통상 물품의 인수 인계를 위해 작성한 장부를 지칭한다. 그러나 이 장부는 물품의 인수인계와 같은 특정 시기에만 작성한 것이 아니라, 3개월마다 자금 현황을 파악하여 정리한 것이었다. 보용소의 장부 작성은 매년 2월, 5월, 8월, 11월에 이루어졌다. 총 2건의 장부가 남아있다. 보용소(補用所)는 면주전의 하부조직으로, 면주전 전체의 주요한 운영 자금을 관리한 재무담당 조직이다. 면주전에서는 정부에 물품을 납품하고 그 댓가를 지급받으면, 각종 소요경비를 제외하고 남은 돈은 왜단소와 보용소에 보내어 관리했다.
이 장부들은 1906년과 1910년 보용소의 자금 현황을 정리한 것이다. 전장(傳掌)은 통상 물품의 인수 인계를 위해 작성한 장부를 지칭한다. 그러나 이 장부는 물품의 인수인계와 같은 특정 시기에만 작성한 것이 아니라, 3개월마다 자금 현황을 파악하여 정리한 것이었다. 보용소의 장부 작성은 매년 2월, 5월, 8월, 11월에 이루어졌다. 총 2건의 장부가 남아있다. ①번 장부는 1906년 8월, ②번 장부는 1910년 5월의 보용소 자금 현황이 정리되어 있다. 왜단소(倭單所)는 면주전의 하부조직으로, 원래는 일본 사신에게 지급하는 예단을 조달, 납품하는 조직이었다. 명치유신 이후 왜인 예단은 폐지되면서 일종의 재무조직으로 존속, 기능하였다. 면주전에서는 정부에 물품을 납품하고 그 댓가를 지급받으면, 각종 소요경비를 제외하고 남은 돈은 왜단소와 보용소에 보내어 관리했다. 傳掌은 통상 물품의 인수 인계를 위해 작성한 장부를 지칭한다. 그러나 이 장부는 물품의 인수인계와 같은 특정 시기에만 작성한 것이 아니라, 3개월마다 자금 현황을 파악하여 정리한 것이었다. 왜단소의 장부 작성은 매년 1월, 4월, 7월, 10월에 이루어졌다.
1906년 면주전(綿紬廛) 보용소 전장사책(補用所傳掌私冊)
이 장부를 통해 나타나는 보용소의 자금 운영 방법은 몇 가지로 나뉘고 있다. 장부를 보면 운영 방법에 따라, 크게 5가지 정도로 나뉜다. 장부의 표현대로하면, 족잉류(族仍留), 무변도잉유(無邊都仍留), 시봉수(時摓授), 사대(私貸), 도취(都聚) 등이 그것이다.
족잉류는 면주전 상인에게 일정한 이자를 받는 조건으로 대출한 것으로 보인다. 면주전에서는 전체 도중이나 보용소와 같은 하부조직 모두 자금을 대여하고 이자를 받아서 조직을 운영하였다. 보용소의 이자율은 1.5% 정도로 나타난다.
무변도잉류는 말 그대로 면주전 상인에게 무이자로 자금을 빌려준 것을 말한다. 이러한 특혜를 받는 대상에 어떠한 자격이 필요한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시봉수에서 봉수란 면주전이 정부에 납품해야 하는 예단을 지칭한다. 따라서 시봉수란 납품할 예단 구입 비용이 부족한 면주전 상인에게 자금을 융통해주고, 나중에 예단에 대한 비용을 지급받으면 돌려받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장부에 따라 시봉수 다음에 '(先邊)稍實人'이라는 항목이 나오기도 한다. 아마 이들은 신용도가 높아 대출하면서 이자를 먼저 제하고 대출받은 이들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사대란 시전 조직에 속하지 않는 상인이나 조직에 대출한 경우를 지칭한다. 廂庫 庫直처럼 관변 조직에 대출할 경우에는 무이자로 빌려주었다.
도취는 대출이 아니라, 특정 시전 상인에게 자금을 맡겨놓은 것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왜단소 사무실에 거액을 보관하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에, 신용도가 높은 상인에게 보관해놓고 필요할 때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보용소 전장책은 위의 5개 항목별로 자금을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전장불납인(傳掌不納人)이란 항목을 두어, 자금을 대출받고 본전은 물론 이자까지 체납한 이들의 명단과 그들이 갚아야할 원리금을 정리해 놓고 있다. 다만 ②번 장부에서는 이 항목이 빠져 있다.
이 장부를 보면 보용소는 왜단소와 달리 자금의 변동 현황을 좀더 상세하고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분아가 이루어지면 무변도잉류인이나 도취인의 경우 그들에게 지급해야 할 몫을 직접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계정에서 해당 액수만큼 삭제하고 있는 것이다. 1906년 8월 25일 보용소 자금은 45,361냥 6전 9푼이었는데, 1910년 5월 25일에는 22,015냥 3전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면주전의 전체적인 쇠락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순서

자료명

발급

수취

1

1906년면주전(綿紬廛)보용소전장사책(補用所傳掌私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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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10년면주전(綿紬廛)보용소전장사책(補用所傳掌私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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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고동환, 「개항전후기 시전상업의 변화 -綿紬廛을 중심으로-」, 『서울학연구』 32, 2008.
須川英德, 「시전상인과 국가재정:가와이〔河合〕 문고 소장의 綿紬廛 문서를 중심으로」, 『조선후기 재정과 시장: 경제체제론의 접근』(이헌창 엮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0.
Owen Miller, 「시전-국가 간 거래와 19세기 후반 조선의 경제위기:綿紬廛을 중심으로」, 『조선후기 재정과 시장: 경제체제론의 접근』(이헌창 엮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0.
집필자 : 이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