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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2년 양응민(梁應民)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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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XD.1762.1114-20150413.KY_X_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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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한성부(漢城府)
수취 : 양응민(梁應民)
· 작성지역 고순청계(古巡廳契)
· 작성시기 건륭 27(1762)
· 형태사항 1張 | 종이 | 한자
· 현소장처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 청구기호 404

연결자료 묶음해제

안내정보

1762년(영조 38)에 양응민(梁應民)이 한성부로부터 발급받은 호구증명서인 준호구(準戶口)이다. 주소는 한성부 서부 반석방 고순청계인데 현재 위치는 서울특별시 중구 순화동 부근이다. 양응민의 현재 나이는 51세이고 직역은 호위청(扈衛廳) 군관(軍官)이다. 같이 사는 식구로는 처 이씨(李氏-42세)와 아들 정혁(廷爀-19세)이 있다. 아들의 직역은 군기시(軍器寺) 공인(貢人)이다.

상세정보

1762년(영조 38)에 漢城府 西部 盤石坊 古巡廳契에 사는 梁應民이 한성부로부터 발급받은 準戶口이다. 준호구는 본래 필요에 따라 관에 신청하면 호구대장의 호구사항을 베껴서 발급해 주는 문서였고, 한편 戶口單子는 戶首가 2통을 작성하여 관에 제출하면 관에서는 1통을 호적대장에 등서하는데 사용하고 나머지 1통은 호수에게 돌려주는 문서였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의하면, 조선후기에 이르러 준호구와 호구단자의 구분이 모호해진 것으로 보인다. 즉 호적대장 작성기간에 관에서는 민간이 준호구의 양식의 문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게 하였고, 여기에 관인을 찍고 서압을 하여 돌려주는 관행이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18세기에 이르면 호구현황을 파악하는 절차가 간소화되어, 각 戶에서는 처음부터 호구단자를 작성하지 않고 準戶口 형식의 문서만 작성하여 관에 제출하면, 관에서는 이를 호적대장에 등서하고 돌려주는 방식이 되었다. 특히 한성부의 경우, 이와 같이 절차가 간소화 한 이후에 작성된 준호구에는 당상과 낭청 3員의 서압 나타나는 공통점이 있다.(문현주, 2013논문 참조) 본 준호구는 한성부에서 발급한 문서로서, 역시 낭청 3員이 서압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상의 연구에 의하면, 본 준호구는 민간에서 작성하여 제출한 것을 한성부에서 관인을 찍고 서압을 하여 다시 발급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본 준호구의 본문은 '考壬午成籍戶口帳內'로 시작하고 있다. 이는 당해년인 '임오년(1762)에 만든 호구 장적의 내용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라는 의미로, 이하의 내용이 호구대장에 있는 사항이라는 뜻이다. '己卯戶口準給者'는 앞 式年인 '기묘년(1759)의 戶口와 고준하여 발급함'이라는 의미이다.
본 호구가 몇 統 몇 戶에 편재되었는지 적는 난은 비워져 있다. 주소인 西部 盤石坊 古巡廳契의 현재 위치는 서울특별시 중구 순화동 부근에 해당한다. 戶首는 梁應民으로 임진년(1712)에 태어났으며 현재 나이는 51세이고, 본관은 南原이다. 양응민의 현재 직역은 扈衛廳 軍官으로 1738년 준호구부터 동일하게 나타난다. 四祖는 다음과 같다.
부친 : 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 世益
조부 : 折衝將軍 僉知中樞府事 遇暹
증조부 : 通政大夫 敷信
외조부 : 學生 金厚仁 본관 金海
같이 사는 가족은 처 李氏와 아들 1명이다. 처 이씨는 신축년(1721)에 태어났으며 현재 나이는 42세고 본관은 全州이다. 아들의 이름은 廷爀이다. 갑자년(1744)에 태어났으며, 현재 나이는 19세이고, 직역은 軍器寺 貢人이다. 3년 전인 1759년 준호구에 아들의 이름은 '廷麗'(16세)로 적혀 있다. 나이를 통해 동일 인물로 볼 수 있고, 그 사이에 개명한 것으로 보인다. 처의 四祖는 다음과 같다.
부친 : 通政大夫 萬載
조부 : 通政大夫 碩建
증조부 : 老職 嘉善大夫 命福
외조부 : 通政大夫 裵禮男 본관 密陽
집필자 : 명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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