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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1년 김이공(金履恭) 가사(家舍) 매매명문(賣買明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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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XE.1781.1111-20150413.KY_X_0235_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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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문서-명문문기류-가사매매명문 | 경제-매매/교역-가사매매명문
· 작성주체 발급 : 정유(鄭瑜)
수취 : 김이공(金履恭)
· 작성지역 대묘동계(大廟洞契)
· 작성시기 건륭 46(1781)
· 형태사항 1張 | 종이 | 한자
· 현소장처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 청구기호 235

연결자료 묶음해제

안내정보

1781년(정조 5) 7월 20일에 김이공(金履恭)가 정유(鄭瑜)에게 기와집 14칸, 초가집 3칸, 집터 29칸을 사면서 받은 매매명문이다. 집터의 위치는 중부 정선방 대묘동계(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봉익동)이며, 매매가격은 동전 300냥이다.

상세정보

1781년(정조 5) 7월 20일에 金履恭가 鄭瑜에게 집과 집터를 사면서 받은 매매명문이다.
정유는 명문에서 집을 파는 이유를 '移買하기 위해'라고 하고 있다. 즉 다른 지역의 집이나 토지 등을 매입하기 위해 판다는 것이다. 거래목적물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와 매매가격은 다음과 같다.
-소유경위 : 언급하지 않음
-위치 : 中部 貞善坊 大廟洞契(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봉익동)
-지목 및 규모 : 瓦家 14칸, 草家 3칸, 空垈 29칸
-매매가격 : 동전 300냥
조선시대에는 토지나 노비 등을 거래할 때 파는 사람의 소유물임을 증명하는 문서를 함께 넘겼는데, 이를 本文記 또는 舊文記라고 한다. 본 매매명문에서 파는 목적 물 가운데 空垈의 면적이 29칸인데, 이는 본 거래 명문의 본문기로 보이는 '1777년 정주부댁(鄭主簿宅) 노(奴) 연금(軟金) 가사(家舍) 매매명문(賣買明文)'의 30칸과 다르다. 이는 다른 물건이기 때문이라기보다, 측량의 차이에서 나타난 수치 변화로 보인다. 본 1781년의 매매명문을 본문기로 하고 있는 1783년의 매매명문에는 30칸으로 적고 있다. 그리고 1777년 명문에서는 본문기 17건과 牌子 1건을 넘긴다고 하고 있는데, 본 1781년 명문에서는 본문기 24건을 넘긴다고 하고 있다. 본문기의 증가량이 1건이 아니라 7건인 이유는 점련된 문서를 세는 방식의 차이일 가능성이 있다. 1783년 매매명문에서는 본문기 19장에 牌子 3건을 넘긴다고 하고 있다.
필집은 정유 자신이 맡고 있으며, 당사자 외에 거래과정에 참여한 자는 증인 金宗淳이 있다.
집필자 : 명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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