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9년(인조 17) 5월에 校生 宋德榮가 삼촌인 宋誾에게 토지를 사면서 받은 매매명문이다.
宋誾는 '자식 없는 단신으로 죽을지 살지 알 수 없고, 오늘 내일 밥을 먹기도 하고 굶기도 하면서 생을 연명하고 있으므로'이라는 표현으로 가난 때문에 땅을 팔고 있다고 하고 있다. 거래목적물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와 매매가격은 다음과 같다.
소유경위 : 承重의 몫으로 받은 것.
위치 : 언급하지 않음.
지목 및 면적 : 習字 下邊 1필지의 논 3마지기(10부) / 上邊 2필지 논밭미상 4마지기(5부)
매매가격 : 細木綿 10필.
거래하는 위치는 명문에서 언급되지 않았지만, 관련문서를 보면 下聖淵面(지금의 충청남도 서산시 하성면)에 있는 토지임을 알 수 있다. 이 당시는 아직 동전의 유통이 본격화되지 않아서 매매수단으로 은자 또는 포목을 사용하였다.
宋德榮와 宋誾는 땅을 매매함과 동시에 교환하고 있다. 즉 宋德榮가 細木綿 10필의 값을 치르고 있지만, 상변에 있는 논 3마지를 宋誾에게 받는 한편, 동시에 하변에 있는 땅 4마지기를 넘기고 있는 것이다. 이는 두 토지 중 전자의 토지가 더 값어치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