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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2년 박상악(朴相岳)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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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XD.1762.1111-20150413.KY_X_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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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한성부(漢城府)
수취 : 박상악(朴相岳)
· 작성지역 가회방(嘉會坊)
· 작성시기 건륭 27(1762)
· 형태사항 1張 | 종이 | 한자
· 현소장처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 청구기호 442

연결자료 묶음해제

안내정보

1762년(영조 38)에 박상악(朴相岳)이 한성부로부터 발급받은 호구증명서인 준호구(準戶口)이다. 주소는 한성부 북부 가회방인데 현재 위치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가회동 부근이다. 방상악의 현재 나이는 28세이고 직역은 진사(進士)이다. 같이 사는 식구는 처 김씨(金氏-27세) 1명이 있다. 이밖에 소유한 남자종 6명과 여자종 7명도 기재되어 있다.

상세정보

1762년(영조 38)에 漢城府 北部 嘉會坊에 사는 朴相岳이 한성부로부터 발급받은 準戶口이다. 준호구는 본래 필요에 따라 관에 신청하면 호구대장의 호구사항을 베껴서 발급해 주는 문서였고, 한편 戶口單子는 戶首가 2통을 작성하여 관에 제출하면 관에서는 1통을 호적대장에 등서하는데 사용하고 나머지 1통은 호수에게 돌려주는 문서였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의하면, 조선후기에 이르러 준호구와 호구단자의 구분이 모호해진 것으로 보인다. 즉 호적대장 작성기간에 관에서는 민간이 준호구의 양식의 문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게 하였고, 여기에 관인을 찍고 서압을 하여 돌려주는 관행이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18세기에 이르면 호구현황을 파악하는 절차가 간소화되어, 각 戶에서는 처음부터 호구단자를 작성하지 않고, 準戶口 형식의 문서만 작성하여 관에 제출하면 관에서는 이를 호적대장에 등서하고 돌려주는 방식이 되었다. 특히 한성부의 경우, 이와 같이 절차가 간소화 한 이후에 작성된 준호구에 당상과 낭청 3員의 서압 나타나는 공통점이 있다.(문현주, 2013논문 참조) 본 준호구는 한성부에서 발급한 문서로서, 역시 낭청 3員이 서압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본 준호구는 민간에서 작성하여 제출한 것을 한성부에서 관인을 찍고 서압을 하여 다시 발급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본 준호구의 본문은 '考壬午成籍戶口帳內'로 시작하고 있다. 이는 당해년인 '임오년(1762)에 만든 호구 장적의 내용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라는 의미로, 이하의 내용이 호구대장에 있는 사항이라는 뜻이다. 본문 마지막에 적힌 '己卯戶口準給者'는 앞 式年인 '기묘년(1759)의 戶口와 고준하여 발급함'이라는 의미이다.
본 호구가 제 몇 統 몇 戶에 편재되었는지 적는 난은 비워져 있다. 주소인 北部 嘉會坊의 현재 위치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가회동 부근에 해당한다. 戶首인 朴相岳는 정조대에 우의정을 역임한 인물로서, 을묘년(1735)에 태어났으며 현재 나이는 28세이다. 뒷날 朴宗岳으로 개명하였다. 본관은 潘南이며 현재 직역은 進士이다. 박상악의 四祖는 다음과 같다.
부친 : 通德郞 亨源
생부 : 成均進士 贈嘉善大夫 吏曹參判 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 興源
조부 : 嘉義大夫 禮曹參判 兼同知經筵義禁府春秋館事五衛都摠府副摠管 贈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領議政 兼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世子師 師正
증조부 : 奉正大夫 敬陵參奉 贈崇政大夫 議政府左贊成 兼判義禁府事五衛都摠府都摠管 錦寧君 弼夏
외조부 : 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左議政 兼領經筵事監春秋館事世子傅 贈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領議政 兼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世子師 諡忠正公 金若魯 본관 淸風
같이 사는 가족은 처 安東 金氏(1736년생-27세) 1명이 있다. 처 김씨의 四祖는 다음과 같다.
부친 : 通訓大夫 行平壤府庶尹安州鎭管兵馬節制使 履遠
조부 : 學生 夏行
증조부 : 通訓大夫 宜寧縣監晉州鎭管兵馬節制都尉 時佐
외조부 : 幼學 李珏 본관 慶州
이밖에 소유한 奴婢로 노6명, 비 7명이 기재되어 있다. 이 가운데 노 2명과 비 1명은 도망간 상태이다. 그리고 비 德連(33세)의 소생인 딸 2명과 아들 1명의 이름과 나이가 기재되어 있다. 이들은 '奴'나 '婢'가 아닌 '男', '女'로 명시한 것으로 보아 노비 신분이 아닌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집필자 : 명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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