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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년 면주전(綿紬廛) 염수가초책(染受價草冊) 상(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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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XG.1881.0000-20170331.KY_X_0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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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차하기 | 경제-회계/금융-차하기
· 작성시기 신사 윤칠월 일(1881)
· 형태사항 20장 | 종이 | 한자
· 현소장처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 청구기호 567

연결자료 묶음해제

안내정보

이 장부는 1879년 12월 면주전에서 진배한 면주에 대한 염색 비용의 수입과 지출 내역을 정리한 것이다. 장부에서는 진배한 면주를 水紬와 吐紬로 분류하여 수입과 지출을 정리하고 있다.
면주전에서는 大紅水紬, 藍水紬 등 수주를 염색하여 총 184냥 4전 4푼의 수입을 얻었다. 이 중 담배나 실무자의 식대, 별례방 집리에 바치는 인정 등으로 28냥 5전 8푼을 지출하였다. 남은 돈 89냥 8전 6푼은 수주계의 재원으로 비축하였다. 그런데 이 중 하지목의 환산가 78냥 3푼과 남수주의 7냥 2전 3푼은 대금을 지급받지 못하였다. 10여년이 지난 1893년 8월에 가서야 이정차지가 수금한 비용으로 충당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大紅吐紬, 黑吐紬 등 토주를 염색하여 191냥 9전 2푼의 현금 수입을 얻었다. 이 돈은 토주계의 재원으로 비축하였다.

상세정보

수가책은 정부에 면주를 진배한 이후 그 대가를 받은 시점에서의 입금액과 목적별 지출을 기록한 것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이전의 장부가 초책이다. 장부에서 수입은 上下(차하로 읽음), 지출은 上用으로 표현했다. 이 장부는 이러한 수가책 중 진배한 면주의 염색 비용의 수입과 지출 내역을 정리한 것이다.
면주전에서는 관청이나 궁방에 면주를 납품하거나 중국이나 일본 사신의 접대에 필요한 면주를 납품하였다. 이와 함께 납품하는 물품의 포장과 반입, 필요에 따라서는 면주를 염색하는 공정 역시 면주전이 담당하였다. 그리고 염색 공임도 단가가 정해져 있었다. 염색 공임으로 받은 비용은 염색에 들어간 원가와 각종 활동비와 인정 등으로 지출되었다. 그리고 남은 비용은 水紬契와 吐紬契의 자본으로 활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장부는 1881년 윤7월 면주전에서 진배한 면주에 대한 염색 비용의 수입과 지출 내역을 정리한 것이다. 겉면에 붉은 글씨로 "謄書", "抄七", "官據入"과 함께 "上"이라고 적혀있어 장부 중 상권으로 보인다.
장부에서는 진배한 면주를 水紬와 吐紬로 분류하여 수입과 지출을 정리하고 있다. 아마도 수주와 토주의 담당 조직이 각각 수주계와 토주계로 나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염색 공임은 현목, 지초, 소목, 황회목 등에 대해서는 사용한 양을 원재료 그대로 지급받았다. 홍화 등은 쌀이나 하지목, 돈의 형태로 지급받았다. 쌀이나 하지목 등은 방매하여 화폐와 교환하였고, 현목 등은 다음의 염색에 사용하기 위해 수주계로 보내면 가격을 산정하여 해당 계에서 화폐로 지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장부 마지막에는 염색 공임으로 받은 대금을 종류별로 정리하고 있다. 이번 거래에서는 미 16석 10두 8승 여, 하지목 71필 8척 2촌, 현목 18척 7촌, 화폐 26냥 5전 3푼, 지초 352근 9냥 1전 9푼, 소목 85단과 반반단에 대한 돈 20냥 4전, 황회목 329단 및 반반단, 조역포 12필 26척 5촌을 받았다. 여기서 조역포는 공임으로 보인다.
우선 수주에 대한 수입과 지출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면주전에서는 大紅水紬 6필 9척여를 염색하기 위해 홍화와 오미자를 사용하였다. 홍화에 대해서는 하지목으로 환산한 다음 화폐로 지급받았다. 오미자에 대해서는 쌀로 그 비용을 지급받았는데, 일부를 시전 임원들의 식비로 지출하고 나머지를 방매하여 화폐를 얻었다. 그리고 藍水紬 6필 8촌여에 대해서는 1필당 1냥 2전씩 계산하여 대금을 지급받았다. 그리하여 총 184냥 4전 4푼의 수입을 얻었다. 이 중 담배나 실무자의 식대, 별례방 집리에 바치는 인정 등으로 28냥 5전 8푼을 지출하였다. 남은돈 89냥 8전 6푼은 수주계의 재원으로 비축하였다. 그런데 이 중 하지목의 환산가 78냥 3푼과 남수주의 7냥 2전 3푼은 대금을 지급받지 못하였다. 10여년이 지난 1893년 8월에 가서야 이정차지가 수금한 비용으로 충당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토주에 대한 수입과 지출은 다음과 같다. 大紅吐紬 3필 29척을 염색하는데 소요된 홍화와 오미자 역시 같은 방식으로 지급받았다. 홍화에 대해서는 하지목으로 환산한 다음 화폐로 지급받았다. 오미자에 대해서는 쌀로 그 비용을 지급받았는데, 방매하여 화폐를 얻었다. 黑吐紬, 黃吐紬는 염색하는 데 玄木이 사용되었고, 그 대가로 1냥 6푼을 지급받았다. 藍吐紬는 1필 당 1냥 7전, 草綠吐紬는 1필당 2냥 1전 4푼 계산하여 지급받았다. 이외에도 紫的吐紬에는 芝草, 黃灰木 등이 원료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대가를 지급받아 수주계로 보내 화폐와 교환하였다. 그리하여 191냥 9전 2푼의 현금 수입을 얻었다. 이 돈은 토주계의 재원으로 비축하였다.
집필자 : 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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