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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12월 왜관 대관 각서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명문문기류-공인문기 | 경제-상업-공인문기 | 부산광역시 동래구 | 1 | 청구기호(1082)
을미년 12월 15일 일 왜관의 대관이 갑오년에 지급했어야 할 공작미 중 일부인 500석을 지급받았다는 내용으로 작성한 각서이다. 문서 말미에 동래부 훈도(訓導)인 첨지(僉知) 이성오(李聖五)와 별차(別差)인 주부(主簿) 이치회(李穉晦)에게 발급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진상과 공무역의 대가로 지급되는 목면이나 쌀은 역관인 훈도와 별차가 대마번의 대관에게 수표로 주었다가, 훈도와 별차가 교체되는 연말에 한꺼번에 지급하였다. 즉 매달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연말에 모아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이 문서는 500석을 지급하겠다는 의미로 작성된 수표이며, 실제 지급은 12월 30일에 이루어졌다.
을미년 12월 왜관 대관 각서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명문문기류-공인문기 | 경제-상업-공인문기 | 부산광역시 동래구 | 1 | 청구기호(1082)
을미년 12월 19일 왜관의 대관이 갑오년에 지급했어야 할 공작미 중 일부인 300석을 지급받았다는 내용으로 작성한 각서이다. 문서 말미에 동래부 훈도(訓導)인 첨지(僉知) 이성오(李聖五)와 별차(別差)인 주부(主簿) 이치회(李穉晦)에게 발급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진상과 공무역의 대가로 지급되는 목면이나 쌀은 역관인 훈도와 별차가 대마번의 대관에게 수표로 주었다가, 훈도와 별차가 교체되는 연말에 한꺼번에 지급하였다. 즉 매달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연말에 모아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이 문서는 300석을 지급하겠다는 의미로 작성된 수표이며, 실제 지급은 12월 30일에 이루어졌다.
을미년 12월 왜관 대관 각서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명문문기류-공인문기 | 경제-상업-공인문기 | 부산광역시 동래구 | 1 | 청구기호(1082)
을미년 12월 27일 왜관의 대관이 갑오년에 지급했어야 할 공작미 중 일부인 300석을 지급받았다는 내용으로 작성한 각서이다. 문서 말미에 동래부 훈도(訓導)인 첨지(僉知) 이성오(李聖五)와 별차(別差)인 주부(主簿) 이치회(李穉晦)에게 발급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진상과 공무역의 대가로 지급되는 목면이나 쌀은 역관인 훈도와 별차가 대마번의 대관에게 수표로 주었다가, 훈도와 별차가 교체되는 연말에 한꺼번에 지급하였다. 즉 매달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연말에 모아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이 문서는 300석을 지급하겠다는 의미로 작성된 수표이며, 실제 지급은 12월 30일에 이루어졌다.
을미년 12월 왜관 대관 각서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명문문기류-공인문기 | 경제-상업-공인문기 | 부산광역시 동래구 | 1 | 청구기호(1082)
을미년 12월 19일 왜관의 대관이 갑오년에 지급했어야 할 공작미 중 일부인 100석을 지급받았다는 내용으로 작성한 각서이다. 문서 말미에 동래부 훈도(訓導)인 첨지(僉知) 이성오(李聖五)와 별차(別差)인 주부(主簿) 이치회(李穉晦)에게 발급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진상과 공무역의 대가로 지급되는 목면이나 쌀은 역관인 훈도와 별차가 대마번의 대관에게 수표로 주었다가, 훈도와 별차가 교체되는 연말에 한꺼번에 지급하였다. 즉 매달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연말에 모아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이 문서는 100석을 지급하겠다는 의미로 작성된 수표이며, 실제 지급은 12월 30일에 이루어졌다.
을미년 12월 왜관 대관 각서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명문문기류-공인문기 | 경제-상업-공인문기 | 부산광역시 동래구 | 1 | 청구기호(1082)
을미년 12월 30일 왜관의 대관이 갑오년에 지급했어야 할 공작미 중 일부인 333석 5두를 지급받았다는 내용으로 작성한 각서이다. 문서 말미에 동래부 훈도(訓導)인 첨지(僉知) 이성오(李聖五)와 별차(別差)인 주부(主簿) 변군차(卞君差)에게 발급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진상과 공무역의 대가로 지급되는 목면이나 쌀은 역관인 훈도와 별차가 대마번의 대관에게 수표로 주었다가, 훈도와 별차가 교체되는 연말에 한꺼번에 지급하였다. 즉 매달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연말에 모아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이 문서는 333석 5두를 지급하겠다는 의미로 작성된 수표로, 실제 지급 역시 같은날 이루어졌다.
을미년 12월 왜관 대관 각서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명문문기류-공인문기 | 경제-상업-공인문기 | 부산광역시 동래구 | 1 | 청구기호(1094)
을미년 12월 7일 왜관의 대관이 을미년에 지급받을 공목 중 일부인 20통(同)을 지급받았다는 내용으로 작성한 각서이다. 문서 말미에 동래부 훈도(訓導)인 첨지(僉知) 이성오(李聖五)와 별차(別差)인 주부(主簿) 이치회(李穉晦)에게 발급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진상과 공무역의 대가로 지급되는 목면이나 쌀은 역관인 훈도와 별차가 대마번의 대관에게 수표로 주었다가, 훈도와 별차가 교체되는 연말에 한꺼번에 지급하였다. 즉 매달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연말에 모아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이 문서는 20통을 지급하겠다는 의미로 작성된 수표이며, 실제 지급은 12월 30일에 이루어졌다.
을미년 12월 왜관 대관 각서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명문문기류-공인문기 | 경제-상업-공인문기 | 부산광역시 동래구 | 1 | 청구기호(1095)
을미년 12월 18일 왜관의 대관이 을미년에 지급받을 공목 중 일부인 10통(同) 47필 6척을 지급받았다는 내용으로 작성한 각서이다. 문서 말미에 동래부 훈도(訓導)인 첨지(僉知) 이성오(李聖五)와 별차(別差)인 주부(主簿) 이치회(李穉晦)에게 발급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진상과 공무역의 대가로 지급되는 목면이나 쌀은 역관인 훈도와 별차가 대마번의 대관에게 수표로 주었다가, 훈도와 별차가 교체되는 연말에 한꺼번에 지급하였다. 즉 매달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연말에 모아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이 문서는 10통 47필 6척을 지급하겠다는 의미로 작성된 수표이며, 실제 지급은 12월 29일에 이루어졌다.
을미년 12월 왜관 대관 각서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명문문기류-공인문기 | 경제-상업-공인문기 | 부산광역시 동래구 | 1 | 청구기호(1103)
을미년 12월 30일 왜관의 대관이 갑오년에 지급받을 겸대미 990여 석과 1,10여 석을 지급받았다는 내용으로 작성한 각서이다. 문서 말미에 동래부 훈도(訓導)인 첨지(僉知) 이성오(李聖五)와 별차(別差)인 주부(主簿) 변군차(卞君差)에게 발급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진상과 공무역의 대가로 지급되는 목면이나 쌀은 역관인 훈도와 별차가 대마번의 대관에게 수표로 주었다가, 훈도와 별차가 교체되는 연말에 한꺼번에 지급하였다. 즉 매달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연말에 모아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이 문서는 2,200석을 지급하겠다는 의미로 작성된 수표이며, 지급도 같은 날 이루어졌다.
을미년 2월 왜관 대관 각서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명문문기류-공인문기 | 경제-상업-공인문기 | 부산광역시 동래구 | 1 | 청구기호(1079)
을미년 2월 4일 왜관의 대관이 갑오년에 지급받아야 할 공작미 300석을 지급받았다는 내용으로 작성한 각서이다. 문서 말미에 동래부 가훈도(假訓導)인 주부(主簿) 김명지(金命之)와 별차(別差)인 주부(主簿) 현이재(玄夷哉)에게 발급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진상과 공무역의 대가로 지급되는 목면이나 쌀은 역관인 훈도와 별차가 대마번의 대관에게 수표로 주었다가, 훈도와 별차가 교체되는 연말에 한꺼번에 지급하였다. 즉 매달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연말에 모아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이 문서는 300석을 지급하겠다는 의미로 작성된 수표이며, 실제 지급은 9월 25일에 이루어졌다.
을미년 3월 왜관 대관 각서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첩관통보류-서목 | 경제-상업-공인문기 | 부산광역시 동래구 | 1 | 청구기호(1080)
을미년 3월 30일 왜관의 대관이 을미년에 지급받을 공작미 중 일부인 100석을 지급받았다는 내용으로 작성한 각서이다. 문서 말미에 동래부 훈도(訓導)인 첨지(僉知) 이성오(李聖五)와 별차(別差)인 주부(主簿) 현이재(玄夷哉)에게 발급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진상과 공무역의 대가로 지급되는 목면이나 쌀은 역관인 훈도와 별차가 대마번의 대관에게 수표로 주었다가, 훈도와 별차가 교체되는 연말에 한꺼번에 지급하였다. 즉 매달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연말에 모아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이 문서는 100석을 지급하겠다는 의미로 작성된 수표이며, 실제 지급은 9월 25일에 이루어졌다.
을미년 3월 왜관 대관 각서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명문문기류-공인문기 | 경제-상업-공인문기 | 부산광역시 동래구 | 1 | 청구기호(1079)
을미년 3월 9일 왜관의 대관이 갑오년에 지급받아야 할 공작미 200석을 지급받았다는 내용으로 작성한 각서이다. 문서 말미에 동래부 가훈도(假訓導)인 주부(主簿) 김명지(金命之)와 별차(別差)인 주부(主簿) 현이재(玄夷哉)에게 발급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진상과 공무역의 대가로 지급되는 목면이나 쌀은 역관인 훈도와 별차가 대마번의 대관에게 수표로 주었다가, 훈도와 별차가 교체되는 연말에 한꺼번에 지급하였다. 즉 매달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연말에 모아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이 문서는 200석을 지급하겠다는 의미로 작성된 수표이며, 실제 지급은 9월 25일에 이루어졌다.
을미년 4월 왜관 대관 각서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명문문기류-공인문기 | 경제-상업-공인문기 | 부산광역시 동래구 | 1 | 청구기호(1080)
을미년 4월 14일 왜관의 대관이 을미년에 지급받을 공작미 중 일부인 500석을 지급받았다는 내용으로 작성한 각서이다. 문서 말미에 동래부 훈도(訓導)인 첨지(僉知) 이성오(李聖五)와 별차(別差)인 주부(主簿) 현이재(玄夷哉)에게 발급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진상과 공무역의 대가로 지급되는 목면이나 쌀은 역관인 훈도와 별차가 대마번의 대관에게 수표로 주었다가, 훈도와 별차가 교체되는 연말에 한꺼번에 지급하였다. 즉 매달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연말에 모아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이 문서는 500석을 지급하겠다는 의미로 작성된 수표이며, 실제 지급은 9월 25일에 이루어졌다.
을미년 4월 왜관 대관 각서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명문문기류-공인문기 | 경제-상업-공인문기 | 부산광역시 동래구 | 1 | 청구기호(1080)
을미년 4월 25일 왜관의 대관이 을미년에 지급받을 공작미 중 일부인 300석을 지급받았다는 내용으로 작성한 각서이다. 문서 말미에 동래부 훈도(訓導)인 첨지(僉知) 이성오(李聖五)와 별차(別差)인 주부(主簿) 이치회(李穉晦)에게 발급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진상과 공무역의 대가로 지급되는 목면이나 쌀은 역관인 훈도와 별차가 대마번의 대관에게 수표로 주었다가, 훈도와 별차가 교체되는 연말에 한꺼번에 지급하였다. 즉 매달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연말에 모아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이 문서는 300석을 지급하겠다는 의미로 작성된 수표이며, 실제 지급은 9월 25일에 이루어졌다.
을미년 4월 왜관 대관 각서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명문문기류-공인문기 | 경제-상업-공인문기 | 부산광역시 동래구 | 1 | 청구기호(1093)
을미년 4월 10일 왜관의 대관이 을미년에 지급받을 공목 중 일부인 50통(同)을 지급받았다는 내용으로 작성한 각서이다. 문서 말미에 동래부 훈도(訓導)인 첨지(僉知) 이성오(李聖五)와 별차(別差)인 주부(主簿) 현이재(玄夷哉)에게 발급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진상과 공무역의 대가로 지급되는 목면이나 쌀은 역관인 훈도와 별차가 대마번의 대관에게 수표로 주었다가, 훈도와 별차가 교체되는 연말에 한꺼번에 지급하였다. 즉 매달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연말에 모아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이 문서는 50통을 지급하겠다는 의미로 작성된 수표이며, 실제 지급은 9월 25일에 이루어졌다.
을미년 5월 왜관 대관 각서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명문문기류-공인문기 | 경제-상업-공인문기 | 부산광역시 동래구 | 1 | 청구기호(1079)
을미년 5월 9일 왜관의 대관이 갑오년에 지급받아야 할 공작미 300석을 지급받았다는 내용으로 작성한 각서이다. 문서 말미에 동래부 훈도(訓導)인 첨지(僉知) 이성오(李聖五)와 별차(別差)인 주부(主簿) 이치회(李穉晦)에게 발급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진상과 공무역의 대가로 지급되는 목면이나 쌀은 역관인 훈도와 별차가 대마번의 대관에게 수표로 주었다가, 훈도와 별차가 교체되는 연말에 한꺼번에 지급하였다. 즉 매달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연말에 모아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이 문서는 300석을 지급하겠다는 의미로 작성된 수표이며, 실제 지급은 9월 25일에 이루어졌다.
을미년 5월 왜관 대관 각서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명문문기류-공인문기 | 경제-상업-공인문기 | 부산광역시 동래구 | 1 | 청구기호(1079)
을미년 5월 17일 왜관의 대관이 갑오년에 지급받아야 할 공작미 200석을 지급받았다는 내용으로 작성한 각서이다. 문서 말미에 동래부 훈도(訓導)인 첨지(僉知) 이성오(李聖五)와 별차(別差)인 주부(主簿) 이치회(李穉晦)에게 발급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진상과 공무역의 대가로 지급되는 목면이나 쌀은 역관인 훈도와 별차가 대마번의 대관에게 수표로 주었다가, 훈도와 별차가 교체되는 연말에 한꺼번에 지급하였다. 즉 매달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연말에 모아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이 문서는 200석을 지급하겠다는 의미로 작성된 수표이며, 실제 지급은 9월 25일에 이루어졌다.
을미년 5월 왜관 대관 각서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명문문기류-공인문기 | 경제-상업-공인문기 | 부산광역시 동래구 | 1 | 청구기호(1080)
을미년 5월 6일 왜관의 대관이 을미년에 지급받을 공작미 중 일부인 1,000석을 지급받았다는 내용으로 작성한 각서이다. 문서 말미에 동래부 훈도(訓導)인 첨지(僉知) 이성오(李聖五)와 별차(別差)인 주부(主簿) 이치회(李穉晦)에게 발급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진상과 공무역의 대가로 지급되는 목면이나 쌀은 역관인 훈도와 별차가 대마번의 대관에게 수표로 주었다가, 훈도와 별차가 교체되는 연말에 한꺼번에 지급하였다. 즉 매달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연말에 모아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이 문서는 1,000석을 지급하겠다는 의미로 작성된 수표이며, 실제 지급은 9월 25일에 이루어졌다.
을미년 5월 왜관 대관 각서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명문문기류-공인문기 | 경제-상업-공인문기 | 부산광역시 동래구 | 1 | 청구기호(1080)
을미년 5월 17일 왜관의 대관이 을미년에 지급받을 공작미 중 일부인 300석을 지급받았다는 내용으로 작성한 각서이다. 문서 말미에 동래부 훈도(訓導)인 첨지(僉知) 이성오(李聖五)와 별차(別差)인 주부(主簿) 이치회(李穉晦)에게 발급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진상과 공무역의 대가로 지급되는 목면이나 쌀은 역관인 훈도와 별차가 대마번의 대관에게 수표로 주었다가, 훈도와 별차가 교체되는 연말에 한꺼번에 지급하였다. 즉 매달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연말에 모아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이 문서는 300석을 지급하겠다는 의미로 작성된 수표이며, 실제 지급은 9월 25일에 이루어졌다.
을미년 5월 왜관 대관 각서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명문문기류-공인문기 | 경제-상업-공인문기 | 부산광역시 동래구 | 1 | 청구기호(1093)
을미년 5월 16일 왜관의 대관이 을미년에 지급받을 공목 중 일부인 30통(同)을 지급받았다는 내용으로 작성한 각서이다. 문서 말미에 동래부 훈도(訓導)인 첨지(僉知) 이성오(李聖五)와 별차(別差)인 주부(主簿) 이치회(李穉晦)에게 발급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진상과 공무역의 대가로 지급되는 목면이나 쌀은 역관인 훈도와 별차가 대마번의 대관에게 수표로 주었다가, 훈도와 별차가 교체되는 연말에 한꺼번에 지급하였다. 즉 매달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연말에 모아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이 문서는 30통을 지급하겠다는 의미로 작성된 수표이며, 실제 지급은 9월 25일에 이루어졌다.
을미년 5월 왜관 대관 각서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명문문기류-공인문기 | 경제-상업-공인문기 | 부산광역시 동래구 | 1 | 청구기호(1093)
을미년 5월 16일 왜관의 대관이 을미년에 지급받을 공목 중 일부인 50통(同)을 지급받았다는 내용으로 작성한 각서이다. 문서 말미에 동래부 훈도(訓導)인 첨지(僉知) 이성오(李聖五)와 별차(別差)인 주부(主簿) 이치회(李穉晦)에게 발급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진상과 공무역의 대가로 지급되는 목면이나 쌀은 역관인 훈도와 별차가 대마번의 대관에게 수표로 주었다가, 훈도와 별차가 교체되는 연말에 한꺼번에 지급하였다. 즉 매달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연말에 모아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이 문서는 50통을 지급하겠다는 의미로 작성된 수표이며, 실제 지급은 9월 25일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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