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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전주군수(全州郡守) 전령(傳令)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첩관통보류-전령 | 정치/행정-명령-전령 | 전주군(발급), 쌍강포 대장포 왕래선인(수취) | 전라북도 전주시 | 1張 | 1901 | 청구기호(937)
1901년 11월 24일에 전주군수가 쌍강포와 대장포를 왕래하는 뱃사람들에게 전령(傳令)이다. 쌍강포와 대장포는 만경강에 있는 포구로서, 이곳의 여각은 서울에 사는 '서진주댁(徐晉州宅)'이 세금을 걷는 권한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포구에 드나드는 선박으로부터 잡세(雜稅)라는 명목을 따로 거두면서 서진주댁 여각이 세금을 거두는 것을 방해 하였다. 이에 서진주댁은 관찰부에 이를 바로잡아 줄 것을 요청하였고, 관찰부는 종전대로 세금을 거둘 수 있게 처결하였다. 이 처결을 쌍강포를 관할하는 전주군수에게 접수하였고, 전주군수는 본 포구를 왕래하는 뱃사람들에게 서진주댁이 세금을 이전과 같이 거두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다.
1901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 이상규(발급) | 경기도 양평군 | 1장 | 광서 5(1901) | 청구기호(131)
1901년(광무 5) 8월에 李象圭가 楊根 北面 小雪洞(현재 경기도 양평군) 등의 토지와 나무를 팔면서 발급한 賣買明文이다. 토지를 판매하는 사유는 '緊用處' 즉, 급히 필요한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래 당자사 외에 標主 李基英, 保人 車駿, 筆執 崔俊石이 참여하였으며 거래 가격은 34,600냥이다.
1902년 김제군수(金堤郡守) 전령(傳令)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첩관통보류-전령 | 정치/행정-명령-전령 | 김제군(발급), 쌍강포 대장촌 여각선인(수취) | 전라북도 김제시 | 1張 | 1902 | 청구기호(941)
1902년 10월에 김제군수가 쌍강포와 대장포를 왕래하는 뱃사람들에게 전령(傳令)이다. 앞서 서(徐) 진주(晉州)댁이 관찰부의 처결을 가지고 김제군수에게 접수한 바에 따라, 이와 같은 전령를 내려 선여각 수세권을 보장해 주고 있는 것이다.
1902년 면주전(綿紬廛) 은사전 분아책(恩賜錢分兒冊)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치부기록류-차하기 | 경제-회계/금융-차하기 | 대방(발급) | 8장 | 임인 이월 초팔일(1902) | 청구기호(519)
이 장부는 1902년 2월 면주전에서 황제가 내린 恩賜錢을 소속 상인들에게 분배하면서 분배 대상 명단를 정리해 놓은 것이다. 은사전 규모나 시전 상인들에게 지급한 구체적인 내역은 나와 있지 않다. 6대방, 삼좌, 오좌, 십좌, 행수, 일반 시전 상인의 순서로 명단을 기록하고 있다. 이름 위에는 분아대상 여부를 확인한 것처럼, 검은 점이 찍혀있다. 인원의 수를 헤아려 10, 20번째 등의 상인 이름 위에는 해당 숫자가 기록되어 있다. 명단에 나온 인명은 총 60이다. 시전 상인들의 이름 아래에는 '收', '都', '別半都', '守', '只'와 같은 글자나 특정 시전 상인의 이름으로 보이는 글자가 적혀 있기도 하다. 또 '倭單', '補用'과 같은 시전 조직의 이름도 보인다. 모두 은사금을 분아하는 방법...
1902년 면주전(綿紬廛) 은사전 분아책(恩賜錢分兒冊)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치부기록류-차하기 | 경제-회계/금융-차하기 | 대방(발급) | 8장 | 신축 칠월 이십오일(1902) | 청구기호(520)
이 장부는 1902년 7월 면주전에서 황제가 내린 恩賜錢을 소속 상인들에게 분배하면서 분배 대상 명단과 액수를 정리해 놓은 것이다. 은사전의 규모가 얼마인지는 나와 있지 않다. 이 장부는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부분은 대상자 명단과 개별 분배액을 적어놓았고, 뒷부분은 전체적인 분아 규모와 액수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앞부분은 6대방, 삼좌, 오좌, 십좌, 일반 시전 상인의 순서로 명단을 기록하고 있다. 이름 위에는 분아대상 여부를 확인한 것처럼 검은 점이 찍혀있다. 명단에는 총 61명의 시전 상인의 이름이 있다. 뒷부분은 은사전 분배 방식을 정리하였다. 분아 대상은 총 61명인데, 只參 2명과 守僕 1명은 1깃이 아닌 반깃만 인정하였다. 따라서 총 분아대상은 59깃반이고, 매깃당 6...
1902년 서(徐) 진주(晉州)댁 노(奴) 흥복(興福) 소지(所志)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 흥복(발급), 전주군(수취) | 전라북도 전주시 | 1張 | 1902 | 청구기호(452)
1902년 9월에 서진주댁(徐晉州宅)의 노(奴) 흥복(興福)이 쌍강포와 대장포 여각의 수세 문제로 전주군수에게 올린 청원서이다. 쌍강포와 대장포는 만경강에 있는 포구로서, 이곳의 여각은 흥복의 상전인 '서진주댁(徐晉州宅)'이 세금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조왕식(趙枉植)이란 자가 중앙기관인 농상공부(農商工部)에 요청하여 도여각(都旅閣)으로써 이 일대에서 세금을 거두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이를 금지하고 이전대로 상전대에서 세금을 걷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주군수는 읍에서 함부로 처리할 수는 없으니, 중앙기관에 보고해 보겠다고 답변하고 있다.
1902년 서(徐) 진주(晉州)댁 노(奴) 흥복(興福) 소지(所志)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 흥복(발급), 김제군(수취) | 전라북도 김제시 | 1張 | 1902 | 청구기호(451)
1902년 9월에 서진주댁(徐晉州宅)의 노(奴) 흥복(興福)이 쌍강포와 대장포 여각의 수세 문제로 전주군수에게 올린 청원서이다. 쌍강포와 대장포는 만경강에 있는 포구로서, 이곳의 여각은 흥복의 상전인 '서진주댁(徐晉州宅)'이 세금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조왕식(趙翰植)이란 자가 중앙기관인 농상공부(農商工部)에 요청하여 도여각(都旅閣)으로써 이 일대에서 세금을 거두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서진주댁은 관찰부(觀察府)에 호소하여, '도여각(都旅閣)이라는 명색은 시행하지 말도록 엄히 신칙하라'라는 처결을 받았고, 이를 접수한 김제군수는 관찰부의 처결에 따라 시행하라는 처분을 내렸다.
1903년 면주전(綿紬廛) 세찬 분아책(歲饌分兒冊)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치부기록류-차하기 | 경제-회계/금융-차하기 | 10장 | 임인 십이월 십팔일(1903) | 청구기호(514)
이 장부는 1903년 12월 면주전에서 歲饌을 소속 상인들에게 분배하면서 분배 대상 명단과 액수를 정리해 놓은 것이다. 세찬이란 새해를 맞아 연말에 보내는 선물이다. 이 장부는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부분은 대상자 명단이고, 뒷부분은 전체적인 분아 규모와 액수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앞부분은 6대방, 삼좌, 오좌, 십좌, 일반 시전 상인의 순서로 명단을 기록하고 있다.명단에 나온 인명은 총 60명이지만, 이름 아래 삭제한다는 의미의 '削'자를 쓴 이 8인을 제외하면, 56명이 분아 대상이 된다. 뒷부분은 전체적인 분아 규모와 액수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분아 대상을 크게 대방과 비방으로 구분하였다. 대방은 원액은 모두 40깃 반에 대해 1깃 당 3냥씩, 비방은 17깃 반에 대해 1깃...
1903년 면주전(綿紬廛) 임인조 세찬 분아책(壬寅條歲饌分兒冊)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치부기록류-차하기 | 경제-회계/금융-차하기 | 10장 | 임인 이월 일(1903) | 청구기호(513)
이 장부는 1903년 2월 면주전에서 전년도 歲饌을 소속 상인들에게 분배하면서 분배 대상 명단과 액수를 정리해 놓은 것이다. 세찬이란 새해를 맞아 연말에 보내는 선물이다. 이 장부는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부분은 대상자 명단이고, 뒷부분은 전체적인 분아 규모와 액수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앞부분은 6대방, 삼좌, 오좌, 십좌, 일반 시전 상인의 순서로 명단을 기록하고 있다. 명단에 나온 인명은 총 63명이지만, 삭제한다는 의미의 '削'자를 쓰고 지우라는 의미의 꺽쇠를 친 이 3명과 지우라는 의미의 꺽쇠를 친 이 2명 등 8인을 제외하면, 58명이 분아 대상이 된다. 뒷부분은 전체적인 분아 규모와 액수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분아 대상을 크게 대방과 비방으로 구분하였다. 대방은 원액은 ...
1904년 면주전(綿紬廛) 보폐소(補幣所) 전장사책(傳掌私冊)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명문문기류-시전문서 | 경제-상업-시전문서 | 면주전(발급) | 1冊 | 1904 | 청구기호(782)
1904년(광무 8) 11월 20일에 면주전(綿紬廛)의 하부조직인 보폐소(補幣所)에서 소속 상인들에게 자금을 대출해 준 내역을 정리한 장부이다. 대출해준 총액은 4129냥 6전이다.
1904년 면주전(綿紬廛) 세찬 분아책(歲饌分兒冊)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치부기록류-차하기 | 경제-회계/금융-차하기 | 10장 | 갑진 십이월 십칠일(1904) | 청구기호(515)
이 장부는 1904년 12월 면주전에서 歲饌을 소속 상인들에게 분배하면서 분배 대상 명단을 정리해 놓은 것이다. 명단은 6대방, 삼좌, 오좌, 십좌, 일반 시전 상인의 순서로 기록하고 있다. 명단에 나온 인명은 총 51명이고, 이들이 분아 대상이었다.
1904년 면주전(綿紬廛) 왜단소 전장사책(倭單所傳掌私冊)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치부기록류-차하기 | 경제-회계/금융-차하기 | 12장 | 갑진 정월 이십일(1904) | 청구기호(774)
이 장부는 1994년 정월 20일 면주전 왜단소의 자금 현황을 정리한 것이다. 자금 운영 방식에 따라 族仍留人, 無邊都仍留人, 時摓授人, 私貸秩, 都聚人으로 나누어 정리하고, 마지막에 傳掌不納人이란 항목으로 원리금을 체납한 이들의 명단과 금액 등을 정리해 놓았다. 1904년 정월 20일 왜단소 자금은 26,570냥 9푼이었다.
1904년 면주전(綿紬廛) 왜단소 전장사책(倭單所傳掌私冊)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치부기록류-차하기 | 경제-회계/금융-차하기 | 14장 | 갑진 사월 이십일(1904) | 청구기호(775)
이 장부는 1994년 4월 20일 면주전 왜단소의 자금 현황을 정리한 것이다. 자금 운영 방식에 따라 族仍留人, 無邊都仍留人, 時摓授人, 私貸秩, 都聚人으로 나누어 정리하고, 마지막에 傳掌不納人이란 항목으로 원리금을 체납한 이들의 명단과 금액 등을 정리해 놓았다. 1904년 4월 20일 왜단소 자금은 26,540냥 1전이었다.
1904년 면주전(綿紬廛) 왜단소 전장사책(倭單所傳掌私冊)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치부기록류-차하기 | 경제-회계/금융-차하기 | 18장 | 갑진 십월 이십일(1904) | 청구기호(776)
이 장부는 1994년 정월 20일 면주전 왜단소의 자금 현황을 정리한 것이다. 자금 운영 방식에 따라 族仍留人, 無邊都仍留人, 時摓授人, 先邊稍實人, 私貸秩, 都聚人으로 나누어 정리하고, 마지막에 傳掌不納人이란 항목으로 원리금을 체납한 이들의 명단과 금액 등을 정리해 놓았다. 1904년 10월 20일 왜단소 자금은 32,009냥 7전 5푼이었다.
190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 경기도 양평군 | 1장 | 광서 8(1904) | 청구기호(132)
1904년(광무 8) 4월에 河判事 宅 奴가 楊根 北面 小雪洞(현재 경기도 양평군) 등의 토지와 나무를 팔면서 발급한 賣買明文이다. 토지를 소유하게 된 경위와 판매하는 사유에 대해서는 기재하고 있지 않다. 판매 대금은 時價 34,600냥이며 본문기와 신문기를 함께 지급한다고 명시하였다. 문서에서는 기재되어 있지 않으나 인장 판독을 통해 畓主는 河圭一임을 알 수 있다.
1905년 면주전(綿紬廛) 왜단소 전장사책(倭單所傳掌私冊)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치부기록류-차하기 | 경제-회계/금융-차하기 | 10장 | 을사 사월 이십일(1905) | 청구기호(777)
이 장부는 1994년 정월 20일 면주전 왜단소의 자금 현황을 정리한 것이다. 자금 운영 방식에 따라 無邊都仍留人, 時摓授人, 稍實人, 無邊私貸秩, 私貸秩, 都聚人으로 나누어 정리하고, 마지막에 傳掌不納人이란 항목으로 원리금을 체납한 이들의 명단과 금액 등을 정리해 놓았다. 1905년 4월 20일 왜단소 자금은 26,643냥 8전 2푼이었다.
1905년 면주전(綿紬廛) 왜단소(倭單所) 전장사책(傳掌私冊)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명문문기류-시전문서 | 경제-상업-시전문서 | 면주전(발급) | 1冊 | 1905 | 청구기호(778)
1905년(광무 9) 10월 20일에 면주전(綿紬廛)의 하부조직인 왜단소(倭單所)에서 소속 상인들에게 자금을 대출해 준 내역을 정리한 장부이다. 대출해준 총액은 26796냥 1전 9푼이다.
1906년 망건전(網巾廛) 성책(成冊)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명문문기류-시전문서 | 경제-상업-시전문서 | 망건전(발급) | 1冊 | 1906 | 청구기호(789)
1906년(광무 10) 2월에 무분전(無分廛)의 일종이었던 망건전(網巾廛)에서 임원 성명이 적어 놓은 성책(成冊)이다. 이 성책은 면주전에서 무분전에서 취급하는 물건을 무납(貿納)하는 관계 때문에 발생한 교류과정에서 이 成冊을 받아 보관했던 것으로 보인다.
1906년 면자전(綿子廛) 성책(成冊)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명문문기류-시전문서 | 경제-상업-시전문서 | 면자전(발급) | 1冊 | 1906 | 청구기호(1169)
1906년(광무 10) 2월에 무분전(無分廛)의 일종이었던 면자전(綿子廛)에서 임원 성명이 적어 놓은 성책(成冊)이다. 이 성책은 면주전에서 무분전에서 취급하는 물건을 무납(貿納)하는 관계 때문에 발생한 교류과정에서 이 成冊을 받아 보관했던 것으로 보인다.
1906년 면주전(綿紬廛) 보용소 전장사책(補用所傳掌私冊)
|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고문서-치부기록류-차하기 | 경제-회계/금융-차하기 | 16장 | 병오 팔월 이십오일(1906) | 청구기호(780)
이 장부는 1906년 8월 25일 면주전 보용소의 자금 현황을 정리한 것이다. 자금 운영 방식에 따라 族仍留人, 無邊都仍留人, 時摓授人, 稍實人, 私貸秩, 出市人私貸秩, 都聚人으로 나누어 정리하고, 마지막에 傳掌不納人이란 항목으로 원리금을 체납한 이들의 명단과 금액 등을 정리해 놓았다. 1906년 8월 25일 보용소 자금은 45,361냥 6전 9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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