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집중연구 > 고서

조선시대의 병서

가+ 가-

병서의 개념과 특징
병서는 전근대 ‘병(兵)’에 관한 내용을 담은 서적으로, 전쟁 이론과 전쟁 경험 등을 정리하고 연구하여 체계화시킨 군사 관련 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이전의 여러 전투 경험과 군사 연구자들이 연구한 전쟁 이론을 바탕으로 향후 군대가 사용할 전술과 무기 체계, 군사 제도, 군사 이론 등 군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군사 관계 전문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병서는 이전의 전투 경험과 편찬 당시의 사회적, 기술적 요소를 고려하여 향후 그 군대가 수행해야 할 모델화된 전투 방식과 군사 편제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병서에 대한 검토를 통해 편찬 당시의 군사 관련 실태와 전쟁 및 전투 양상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해를 할 수 있다.
조선 병서의 분류와 종류
병서는 군사에 대한 여러 다양한 요소 중 일부 또는 전체를 담고 있으므로 그 형식과 내용에 따라 그 종류를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현재 병서에 대한 분류는 내용을 근거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연구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진법류(陣法類), 연병류(練兵類), 병학류(兵學類), 병기(兵器) 및 성곽류, 전사류(戰史類), 무예류(武藝類), 주석 및 용어집류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진법류는 전투시 병사들을 전투 장소에 배치하여 적에 대응하는데 필요한 진법의 내용과 운용법을 담고 있는 병서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15세기 문종대 편찬된 『진법(陣法)』이 있고 그 외에 『연기신편』, 『이진총방(肄陣總方)』, 『진법언해(陣法諺解)』 등이 있다. 연병류는 군사 조련에 관한 세부적인 내용을 담은 것으로,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에서 새로운 전술인 절강병법(浙江兵法)을 소개한 『기효신서(紀效新書)』가 조선에 도입되면서 다수의 연병류 병서가 편찬되었다. 『기효신서』의 내용 중 훈련 관련 내용을 정리한 『병학지남(兵學指南)』을 위시하여 『병학통(兵學通)』, 『속병장도설(續兵將圖說)』, 『연병지남(練兵指南)』 등이 대표적이다.

병학류는 군사와 관련된 이론적인 문제를 다룬 병서로 중국의 고전 병서인 『손자(孫子)』와 같은 책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병서는 주로 장수들의 군사적 소양을 위해 편찬되었는데 『손자』 등 중국의 7가지 고전 병서를 모아 편찬한 『무경칠서(武經七書)』와 『행거수지(行軍須知)』, 『기효신서절요(紀效新書節要)』, 『병장설(兵將說)』 등이 있다. 병기 및 성곽류는 군사 무기나 성곽의 제도에 대한 설명과 운용법 등을 다룬 병서이다. 『신기비결(神器秘訣)』, 『화포식언해(火砲式諺解)』, 『융원필비(戎垣必備)』 등 각종 화약 무기 및 단병기를 정리한 서적과 성곽 제도를 정리한 『성제도설(城制圖說)』 등이 있다. 전사류는 역대 전쟁에 대해 정리한 서적으로 15세기 중반 중국과 우리 나라의 전쟁 270여회의 내용을 총망라한 『역대병요(歷代兵要)』를 비롯하여 『동국병감(東國兵鑑)』, 『속무정보감(續武定寶鑑)』 등이 있다.

무예류란 근접 전투에 필요한 창과 칼 등 각종 단병기(短兵器)를 소개하고 그 사용법을 담은 병서로서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가 있다. 주석 및 용어집류는 병서의 특수 용어를 주석하거나 설명을 붙인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 중국에서 새로운 병서가 도입되면서 새로운 용어와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편찬되었다. 『병학지남』에 주석과 설명을 붙인 『병학지남연의(兵學指南演義)』 등이 대표적이다.
현존하는 조선 병서 현황
고려시대까지 『무오병법(武烏兵法)』, 『김해병서(金海兵書)』 등이 편찬되었으나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 현재 그 내용이 전해지는 가장 오랜 병서는 정도전(鄭道傳)이 편찬한 『진법(陣法)』으로 그의 문집인 『삼봉집(三峰集)』에 그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최근의 조사에 의하면 현재까지 이름만이라도 전하고 있는 한국의 병서는 대략 110여종에 이르며, 현재 전해지고 있는 병서는 80종 정도에 이르고 있다. 병서는 최근에도 계속 발굴되고 있어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최근 10여년 동안만 해도 『무예제보번역속집(武藝諸譜飜譯續集)』, 『국조정토록(國朝征討錄)』 등 이름만 전해지던 병서가 국내의 도서관 등에서 발견되고 아울러 미국 버클리대에서 조선 세조대 여진 정벌 관련 내용을 정리한 『북정록(北征錄)』이 발견된 것을 보면 앞으로도 병서의 추가 발굴이 기대된다.
병서의 자료적 가치
병서는 이전의 전투 경험과 편찬 당시의 사회, 군사적 요소를 고려하여 군사(軍事)에 대한 다양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편찬 당시의 전쟁 및 전투 양상을 구체적으로 재현하는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전술을 구사하는데 필요한 군사 편제 및 무기, 무예 등을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병서를 통해 연대기 자료 등에 단편적으로 나타나는 군사 관련 내용을 보다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무기류 병서에 수록된 화약 무기 관련 내용은 전근대 과학 기술의 가장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으며, 무예류 병서에는 당시의 민속 및 체육 등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각종 문화컨텐츠 개발 등에 병서 자료가 적극 활용되고 있는 것은 병서의 자료적 가치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역대 병서에는 우리의 군사적 전통과 수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 민족의 생존 능력과 전략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홍경래의 난과 『융원필비(戎垣必備)』 편찬
1811년 말 일어난 홍경래 난 당시 조선의 병기가 낡고 허술하여 공격과 수비에 믿을 만한 것이 없었다고 한다. 이에 홍경래 난 진압 이후 곧바로 호조의 재정 지원으로 무기 제조를 위한 임시관청인 감조도감(監造都監)을 두어 무기 개발 및 제작에 착수하여 1년 만에 옛 제도에 따라 새로이 병기를 만들고 수리하게 되었다고 한다. 박종경은 새로 개발하거나 수리한 무기를 후대에서도 참고할 수 있도록 무기의 제원, 사용법 등을 정리하여 책으로 정리하게 하였는데 그것이 『융원필비』이다. 『융원필비』는 홍경래의 난 직후 새로이 제작하거나 수리한 무기를 총망라하여 편찬된 조선 후기 무기에 대한 종합적인 병서라고 할 수 있다.
동양문고 소장 순조 13년(1813) 간행 『융원필비』
1635년(인조13) 『화포식언해(火砲式諺解)』가 편찬된 이후 조선에서는 기존의 화약무기가 개량되고 새로운 화약무기가 개발되었으나 이에 관련된 병서가 편찬되지 않았다. 19세기 초 편찬된 『융원필비』를 통해 조선후기 조선의 화약무기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화포식언해』 등 이전의 관련 병서에서는 그림이 없고 발사체 등의 규격이 없는데 비해 『융원필비』에서는 그림이 첨부되고 화기의 규격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어 자료적 가치에서 큰 차이가 있다. 『융원필비』를 통해 17세기 중반 이후 천자총통과 같은 화포의 경우에도 이전보다 사정거리와 위력 등 그 성능에서 적지 않은 개선이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비몽포, 찬혈비사신무통, 이화창, 소일와붕, 신기만승화룡도 등 다수의 신형 무기의 내용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화차와 목화수거 등 신형 전투용 수레[戰車]의 형태와 제원, 그리고 이를 이용한 진법 등은 당시의 전술적 수준을 이해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이외에도 환도, 마상편곤, 편전, 방패 등 당시 많이 사용되던 각종 재래식 무기에 대한 정보도 수록되어 있어 18세기 말 단병 무예서로 편찬된 『무예도보통지』의 내용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편자 박종경은 1765년(영조41) 1월 한성에서 판돈녕부사를 역임하고 이후 영의정에 추증된 박준원(朴浚源)과 원주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는 여회(汝會), 호는 돈암(敦巖)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박준원의 셋째 딸은 정조와 혼인하여 세자를 낳았는데 그가 바로 순조로 박종경은 순조의 외삼촌이 된다. 박종경은 37세 때인 1801년(순조1) 문과에 급제하고 홍문관 부수찬, 사간원 헌납, 군자감 정, 각 조(曹)의 참의 및 참판, 도승지 등을 거쳤다. 1808년(순조8) 선혜청 당상과 병조판서를 역임하고 1810년에는 한성부 판윤, 이조 및 호조 판서에 제수되었다.

47세 때인 1811년(순조11) 홍경래의 난이 발발하자 훈련대장(訓練大將)에 임명되어 한성 수비의 강화와 함께 토벌군에 군량을 보급하는 등 반란 진압에 공을 세우게 된다. 이후 군기를 새로이 제작하고 기존 무기를 수리하면서 후대에도 참고할 수 있도록 무기의 제작법과 사용법 등을 정리하여 『융원필비』를 이듬해 편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