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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일본의 의학서적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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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사에서의 한국과 일본의 관계
일본은 사회문화 전반에서 중국과 한국의 영향을 받아왔고 중국과의 교류에서도 한국을 매개로 한 경우가 많았다. 일본에 최초로 중국 의학서가 전해진 것은 561년 오나라의 왕자 지총(知聰)이 의서 164권을 가지고 일본에 간 때이다. 이때 지총은 고구려를 거쳐 일본에 갔다. 1636년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갔을 때 일본에서는 특별히 의학지식을 자문해 줄 의사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하였다.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의 의학문답기록을 보면 인삼재배 기술과 노하우를 필사적으로 알아내려는 일본 의사들과 절대로 산업기밀을 넘길 수 없다는 조선 의사들의 팽팽한 신경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한국은 전통 의학 분야에서 일본보다는 한 수 위였고, 일본인들은 서적을 통해 간접적으로 조선의 의학 기술을 받아들이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동양문고에 소장된 의학서들은 대체로 그러한 맥락과 닿아 있다.
일본인이 애독한 조선 의학서
『동의보감』은 1613년 당시 내의원 수석 의사였던 허준(許浚, 1539-1615)이 왕명을 받아 지은 관찬의학서이다. 『동의보감』은 동시대의 한국, 중국, 일본에서 나온 유사한 성격의 의학서 중 가장 활용도가 높다고 알려진 의학서이다. 『동의보감』은 중국과 일본 등에서 20여 차례나 다시 간행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는데, 이 책의 강점은 임상 현장에서 사용하기에 충분한 의학 지식과 다양한 증후군에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치료컨텐츠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또 찾아보기가 쉽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아서 휴대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동의보감』은 컨텐츠와 인터페이스 두 측면에서 가장 효율적인 의학서로 평가된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조선통신사가 12차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인들이 가장 궁금했던 질문이 인삼이었고 그 다음으로 『동의보감』 속의 세부적인 내용이었다는 점을 통해 이미 일본 의사들이 『동의보감』을 통독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정정동의보감』은 조선의 『동의보감』을 일본의 학자 미나모토 모토토루(源元通)가 훈점을 달아서 다시 간행한 것이다. 그는 ‘『동의보감』은 백성을 보호해 주는 신선의 경전’이라고 극찬하였다.

『동원십서비위론』은 『동원십서』 중에서 ‘비위론(脾胃論)’만을 따로 간행한 것이다. 『동원십서』는 동원노인이라고 더 알려진 이고(李杲,1180-1251)의 저작과 그의 계통을 이은 의학자들의 저작, 주진형(朱震亨,1281-1358)의 대표 의학서인 『격치여론(格致餘論)』 등 의학서 10권을 모아 편집한 것으로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도 널리 알려졌다. 이고와 주진형은 13세기 동아시아 의학의 변곡점을 만든 대표적인 의학자들이다. 그들은 질병에 대한 관점을 인체 외부에서 인체 내부로 옮겨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이다. 질병의 관점을 인체 내부로 옮겨오면서 발열, 두통, 복통, 설사 등 일상에서 생기는 질병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치료방법도 세분화되어 갔다. 두 사람은 그 변곡점에 위치한 의학자들이다. 이 두 사람의 영향력은 한국과 일본에까지 널리 전해졌다. 일본에서는 특히 이 두 사람의 영향을 받아 16세기를 전후한 일본의 주류학계 스스로 자신들을 ‘이주학파(李朱學派)’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고, 그리고 이고의 가장 대표적인 의학서인 『비위론』에 대한 관심은 남달랐을 것으로 생각된다.
동양문고 소장 『동원십서 비위론』
약재개발을 위한 관심과 노력
『본초서』는 약재나 음식이 되는 자연 재료의 생태, 산지, 성미, 효능, 금기 등을 정리한 것으로 동아시아 의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의학서이다. 동아시아에서 『본초서』의 간행과 발전은 의학 방면에서의 수요도 대단하였지만 주로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약재나 음식에 대한 산지 정보는 그 자체로 세수 확보를 위한 근거자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국에 산재한 자연 약재에 대한 총체적인 정보는 민간인이 쉽게 다룰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기 때문에 국가의 지원을 받아서 주로 이루어졌다.

『증류대관본초』와 『증류비용본초』는 12세기 강력한 중앙집권력을 행사하던 시절의 송나라정부의 역작이다. 이 시기의 본초에 대한 관심은 얼마나 많은 종류의 약재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각 약재마다 얼마나 많은 치료정보를 담고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한나라 때까지만 해도 약 300여 종의 약재였던 것이 당나라 때는 800여 종으로 늘어났다. 송나라가 개국하자마자 만든 본초서는 1082종을 담고 있고, 『증류본초』의 초기 버전인 『경사증류비급본초』는 1558종의 약재정보를 담고 있고, 1116년에는 1746종의 약재정보를 담고 있다.

증류본초 중 『증류비용본초』가 가장 업그레이드된 형태의 하나이고 『증류대관본초』는 『증류비용본초』 직전의 버전이다. 『경사증류비급본초』는 원래 당신미(唐愼微)라는 개인의 저작인데 이것을 정부에서 이어받아 지속적으로 증보한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완성된 형태의 본초서로는 『본초강목(本草綱目)』을 꼽는데, 이 책은 1892종의 약재정보를 담아 1596년에 간행되었다. 『증류비용본초』의 1746종은 이에 버금가는 양이라고도 볼 수 있다. 즉 이미 12세기가 되면 동아시아에서는 약재로서 활용할 수 있는 자연물에 대한 정보파악은 거의 마친 셈이다. 중국에서 책자의 형태로 나온 이러한 귀중한 정보는 각국의 정책 입안자, 의료인들의 초미의 관심사였으며 조선에서는 이 책을 가져와서 조선판 활자로 다시 간행하였으며, 그것이 전해져서 현재 일본의 동양문고에 소장되어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낙질1권(권17)이 보물 제 1716호로 지정되어있다.

이상이 국가간행본초서가 가장 규모가 큰 약재정보라면 『약성가』는 가장 규모가 작은 약재정보에 해당한다. 국가간행본초서를 토대로 여러 소규모 본초학서들이 각각의 용도에 맞게 만들어지면, 그것을 가지고 외우기쉽게 정리해서 몇장분량으로 요약한 것이 『약성가』이다. 주로 필사본형태가 많고 의학서의 부록으로 삽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약재의 종류도 늘어나고 유통양도 많아지면서, 일반인 혹은 현지의 의료인들이 다양한 약재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이 약재들에 대한 요약정보를 한눈에 파악할 새로운 수단이 필요했다. 『약성가』는 그러한 배경에서 만들어진 본초학분야의 새로운 정보형태이며, 같은 이름의 『약성가』이지만 다양한 내용이 전해진다.
동양문고 소장 『중수정화경사증류비용본초(重修政和經史證類備用本草)』
조선에서 간행된 전문의학서
천연두는 오랜 세월 인류를 괴롭혀온 질병이다. 모든 사람들이 천연두에 걸린 것은 아니지만 치사율이 높았고 후유증도 심했기 때문에 누구나 공포스러워 했던 질병이다. 그 질병에 대한 공포만큼이나 치료법에 대한 요구가 간절했고 조금이나마 효험이 있다고 하는 것은 바람만큼이나 빨리 전해졌다. 『두창경험방』은 그러한 치료경험을 정리한 의학서이다. 천연두 전문 의사라는 칭호를 갖고 있었던 박진희(朴震禧)의 저술로 1663년에 처음 목판본의 형태로 출판한 것이며 동양문고 소장 판본은 1711년에 다시 간행한 것이다.

『시종통편』은 1817년 마찬가지로 천연두 전문 의사였던 이종인(李鍾仁)이 지은 것이다. 이것은 ‘종을 심는 것’ 즉 인두종법에 대한 방법을 기술한 것이다. 어느 때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경증의 천연두 환자에게 고름이나 옷가지 등을 얻어다가 정상인에게 이식해서 가볍게 앓고 지나가게 하는 원시적인 형태의 백신요법이 중국에서 개발되었고 이것이 동아시아 전역에 퍼지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에도 조선후기부터 점차 보편화되었고 제너의 우두종법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약물요법과 함께 천연두 치료에서 보편적으로 이용했던 방법이다.

『제영신편』은 ‘어린아이를 구하는 새로운 책’이라는 이름인데, 1889년에 이재하(李在夏)가 쓴 우두종법에 대한 내용이다. 지석영(池錫永, 1855-1935)이 일본에서 우두종법을 배워서 전국적으로 우두종법을 시행하고 있을 때이며, 그 이후 여러 사람들이 다른 경로로 우두종법을 배워서 시행하고 있었다. 이재하는 그 중의 한사람이다.

『신편집성마의방우의방』은 수의학 전문서이다. 목판본으로 간행된 책인데 초간본은 1399년 조선이 개국하고 국가의 기틀을 만들 당시에 정부에서 간행한 책이다. 이 책은 주로 말과 소의 질병을 치료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말과 소는 당시 교통수단이면서 농업경제의 중요한 수단, 즉 중요한 국가의 산업인프라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이 책은 국가에서 관심을 가지고 발행한 수의학 전문서였고, 이후로도 오래도록 이 책은 말과 소의 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약간의 수정보완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조선후기까지 이 책은 여전히 유통되었을 정도로 긴요한 정보를 담고 있었다.

『신편부인대전』은 1237년 중국의 진자명(陳自明)이 저술한 『부인대전양방(婦人大全良方)』을 조선에서 다시 간행한 것이며 현재 동양문고에 소장된 것은 조선판 『부인대전양방』이다. 동아시아최초의 부인과전문서이면서, 임상적으로도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어서 여러 차례 다시 간행된 의학서이다.
동양문고 소장 『신편집성마의방우의방(新編集成馬醫方牛醫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