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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문고 소장 한국사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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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자료 개관
동양문고에 소장된 주요 한국사 관련 자료는 다음과 같다.

서명

저자

권책수

내용

황명조령

(皇明詔令)

장부

(張溥)

2110

(12711402) 至正 26(1366)부터 (13681644) 嘉靖 25(1547)까지 명나라 황제가 반포한 조령을 모아놓은 詔令集

계해사실

(癸亥事實)

138

인조반정(1623) 공신 관련 자료인 會盟錄과 功臣子孫修禊錄 반정 1, 2주갑을 기념해 내린 숙종과 영조의 어제를 수록한

해동휘언록

(海東彙言錄)

不分卷2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전말을 20 종의 서책에서 뽑아 모은 기사와 편저자 스스로 수집작성한 기사를 날짜순으로 배열해 편집한

기사찬초

(記事撰草)

정태화

(鄭太和)

166

陽坡 鄭太和(1602-1673) 예문관의 전임사관으로 있을 작성한 家藏史草.

회니왕복

(懷尼往復)

1

宋時烈(1607-1689) 尹拯(1629-1714) 사이에 벌어진 이른바 懷尼是非 관련 편지와 상소문을 모은

상훈집편

(常訓輯編)

정항령

(鄭恒齡)

125

1757(영조 33) 鄭恒寧(1700-?) 세자의 輔導를 목적으로 조선조 역대 선왕의 교훈적 일화와 각종 제도의 변천 등을 기술해 편찬한

기제합록

(紀提合錄)

169

조선 후기 노론과 소론의 정쟁, 특히 신임옥사와 관련된 사건의 전개 과정이나 이후 정치의리가 정리되는 과정 등을 살필 있는 .

난보소초초

(爛報疏草抄)

173

정조-순조 연간에 朝報에 실린 기사 가운데 주로 상소문을 발췌 정리해 엮은

평윤록초

(平允錄抄)

22

정조 연간에 발생한 살인이나 자살 人命 사건에 대한 수령과 관찰사의 보고 이에 대한 정조의 判付 등을 기록한 책자

임신정란록

(壬申定亂錄)

1103

洪景來의 (1812) 대해 조선 정부에서 작성한 여러 기록을 날짜순으로 모은

기인한상량

(杞人閒商量)

백운경천

(白雲耕天)

123

地理志에 대한 고찰과 개선방안을 논의한

충헌감서록

(忠獻戡西錄)

조기영

(趙耆永)

31

홍경래난(1812) 당시 의주부윤을 지낸 趙興鎭의 사적과 공로에 대한 기록들을 손자인 趙耆永이 1872년에 모아 편찬한

동전고

(東銓攷)

164

19세기 중반 吏曹에서 경외 관청 소속 관직 현황 인사 관련 규정 등을 필사한 만든 편저자 미상의

물료가치성책

(物料價値成册)

不分卷3

19세기에 戶曹가 재정 운용에 참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가 조달 물자의 가격 등의 정보를 수록한

추조용도록

(秋曹龍圖錄)

호조

(戶曹)

139

1854(철종 5) 2월에 형조가 심리한 지방의 殺獄 죄인 가운데 국왕의 판결을 거쳐야 하는 사형수의 錄案을 월별로 기록한

삼정고

(三政攷)

김희운

(金熙運)

174

조선후기 삼정문제에 대한 원인과 대책을 정리한 필기류 저술로, 金熙運이 기사년(1869 추정) 이후 6년간 이어진 가뭄을 계기로 삼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1874 5월경에 작성한

소영경력

(蘇營經歷)

장도상

(張度相)

138

公忠道 水軍虞候 張度相이 1868(고종 5)부터 이듬해인 1869 5 29일까지 수군절도사 張厚植과 공충감사 閔致庠이 승정원에 올린 장계를 비롯해 당시 공충수영의 운영 屬鎭의 실태 충청수영 관련 문서를 모아놓은

통영계록

(統營啓錄)

비변사

(備邊司)

1107

조선후기 경상도 固城縣에 있던 三道水軍統制營에서 국왕에 보고한 문서 京外 관청들이 주고받은 문서들을 모아 기록한

갑신우정국작변죄인국안

(甲申郵征局作變罪人鞠案)

의금부

(義禁府)

159

갑신정변(1884) 참여한 金奉均·李喜貞·申重模 12인에 대한 의금부의 심문 기록으로, 규장각에 소장된 推案及鞫案 324 甲申 大逆不道罪人喜貞等鞫案 축약 재편한 자료

갑신일사왕복초

(甲申日使往復抄)

123

갑신정변과 관련하여 조선 정부와 일본 공사 다케조에 사이에 오간 공문

절록변법통의

(節錄變法通議)

133

1898년에 梁啓超(18731929) 時務報 발표한 戊戌政變記 중심으로 變法通議 내용 일부를 발췌하고 밖의 글을 덧붙여 편집하되, 淸國의 변법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전철을 밟아서는 된다는 경계의 목적으로 필사한

감계등록

(勘界謄錄)

이중하

(李重夏)

不分卷2

1906 통감부임시간도파출소가 淸國을 상대로 간도 영유권 문제를 논의할 , 1885(고종 22) 1887년에 조선과 청이 백두산 두만강 인근 양국 국경선을 논의한 감계회담의 조선 대표인 李重夏(1846-1917) 작성한 勘界使謄錄 등사한

 

주요자료 소개
(1) 『계해사실(癸亥事實)』: 인조반정 관련 자료의 집대성

『계해사실』은 계해반정[인조반정, 1623]과 관련한 회맹록(會盟錄)과 공신자손수계록(功臣子孫修禊錄) 등의 사적들 및 인조반정의 1, 2주갑을 기념하여 숙종과 영조의 어제를 함께 수록한 책이다. 인조-영조 연간에 인조반정과 관련된 모든 사적을 한데 묶은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인조조의 「회맹록」과 「공신자손록」은 녹훈도감에서 작성했을 것으로 보이나, 이후 자료들은 작성 시기를 달리 하고 있어 그 편저자 일일이 확인하기는 어렵다.

본서는 필사본 1책으로, 10行20字의 형태로 기술되었다. 발문과 서문이 없어서 편저자와 간행연대를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표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계해반정 즉 인조반정에 대한 사적들을 모두 모아 엮은 것으로, 인조반정 및 관련 인물 연구에 유용한 자료이다. 또한 인조 연간에 간행된 『이십공신회맹록』(장서각본 K2-631)과 비교해 본다면, 인조 대의 정치사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본서는 관찬 사서들에 수록되지 않은 내용들을 일부 담고 있으므로,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
<좌>『계해사실(癸亥事實)』 권수제면
<우>『계해사실(癸亥事實)』 회맹록
『계해사실』의 「회맹록」에는 1, 2, 3등을 망라한 공신 42인의 공신훈호와 관직과 성명이 기재되어 있다. 『인조실록』에 따르면 1등 공신에는 이흥립(李興立, ?-1624)을 포함해 10인이 녹훈되었으나, 이 『계해사실』에는 이흥립의 이름이 누락되어 있다. 훈련대장 이흥립은 인조반정을 모의하던 김류・이귀 등에게 협력해 광해군을 축출하는 데 크게 기여함으로써 정사공신 1등에 책봉되었으나, 이괄(李适, 1587-1624)의 난(1624) 때 수원부사 겸 경기방어사로 적에게 투항했다가 난이 평정되자 의금부 옥에서 자결했다. 따라서 『계해사실』에 수록된 이 기록은 이괄의 난 이후에 작성되었을 것이다. 정사공신 2등에는 이괄을 포함한 15인이 녹훈되었으나, 이괄의 난으로 인해 녹훈에서 삭제되어 14인만 기록되었다. 이밖에 3등 공신에는 김원량(金元亮, 1589-1624)을 포함해 28인이 녹훈되었다. 그러나 김원량도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사간원의 건의에 따라 훈적에서 삭제되었다. 따라서 「회맹록」에 수록된 정사공신의 명단은 이괄의 난과 관련된 인물인 이흥립・이괄・김원량을 제외한 50인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회맹록」에 기술된 공신 명단과 함께 『인조실록』 및 인조 연간에 간행된 『이십공신회맹록』과 대조해 검토한다면, 인조반정 관련 공신책봉과 정쟁의 양상 및 공신들의 추후 행보 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조선 초기에 작성된 다른 「회맹록」들과 비교해 본다면, 공신 책봉에 대한 추이를 통시적(通時的)으로 파악하는 데에도 유익할 것이다.

한편, 「정사공신자손진참록」에는 정사공신 자손들의 관직명과 성명이 나열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 공신 자손 문중이 소장하고 있는 공신녹권이나 고문서 등의 자료들과 대조하고 검토한다면, 공신훈의 世傳 양상을 살피는 데에도 유용할 것이다. 또한 『계해사실』에 기재되어 있는 공신 명단의 변화만 꼼꼼히 살펴도, 일부 공신의 역모 및 공신 자손의 옥사 연루 등으로 인한 공신훈의 삭적 과정을 쉽게 추적할 수 있다. 『계해사실』은 단지 인조반정 관련 정치사뿐 아니라, 조선의 공신에 대한 연구에도 기여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2)『해동휘언(海東彙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자료의 집대성

인조(1623-1649) 연간에 발생한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1637)의 전말을 20여 종의 서책에서 뽑아 모은 기사에 편저자가 작성한 내용을 더해 날짜순으로 서술한 책이다. 편저자는 미상이나, 이 책의 표지에 찍혀 있는 ‘石室山房’이라는 인장은 편저자를 알 수 있는 하나의 단서가 될지도 모르겠다. 『해동휘언』의 큰 특징은 무엇보다도 기존의 여러 책에서 해당 기사를 뽑아 모아 편집하고 서술한 점이다. 말 그대로 휘언(彙言)이다. 이 책에서 참고로 한 문헌자료는 모두 23종에 달한다.

『해동휘언』에서도 가장 비중이 큰 부분은 병자호란정축남한출성(丙子胡亂丁丑南漢出城)으로 편저자는 이 부분에서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참고한 듯하다. 1631년(인조 9) 6월에 호기(胡騎) 만여 기가 압록강을 건너와 용천에서 약탈을 저지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청군의 일방적인 승리와 항전다운 항전 한 번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피난하는 조선 조정의 이야기가 뒤를 잇는다.

남한산성 옹성 중 가장 큰 논란이었던 주화와 척화의 공방 주장들을 모으되, 최명길(1586-1647)의 주화론에 보다 비중을 두어 강조한다. 특히 최명길의 문집인 『지천집(遲川集)』과 「지천행장(遲川行狀)」을 인용해 최명길의 주장을 집중적으로 부각한 점에서 그렇다. 그런가 하면, 남한산성 내의 어렵고 긴박한 상황에 몰려 끝내 성문을 열고 내려가 항복에 이르는 대목도 상세한 편이다. 치열한 주화·척화 논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일반 장사들이 “오늘의 일은 모두 명사들의 고담준론에서 말미암은 것이다.”라고 했다는 구절은 무비(武備)의 의미를 되새기는 한편, 주화파의 입장에 동조하는 인물이 이 책을 집필했음을 시사해준다.
『해동휘언(海東彙言)』 병자호란정축남한출성(丙子胡亂丁丑南漢出城)
『해동휘언』의 본문은 셋으로 나누어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는 앞에서 열거한 책들의 기록을 날짜순으로 배열해 서술하고, 그 아래에 細筆로 출전에 해당하는 책명을 덧붙여놓은 부분이다. 『병자록』처럼 잘 알려진 책의 내용을 인용한 부분이 그것이다. 다음은 참고 서책의 이름이 없는 기사이다. 이는 편저자의 주관과 의도가 드러난 부분으로 볼 수 있으므로, 앞으로 이 부분의 분석 작업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이름만 전해지는 참고 서책을 인용한 부분도 있는데, 이에 대한 조사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수현(壽峴) 석지형(石之珩, 1610-?)의 『남한일기(南漢日記)』를 인용하지 않은 점이 눈길을 끈다. 『남한일기』는 1636년(인조 14) 석지형이 병자호란 때 겪은 사실을 일기체로 쓴 책이다. 석지형은 1636년 청나라가 조선을 침입해 남한산성에 위협을 가하던 시기로부터 시작해 45일 동안의 방어사실과 피침상황 등을 서술했다. 병자호란 때 자신이 직접 남한산성에 들어가 전란 방어책과 용전, 격퇴상황 등을 면밀히 검토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청나라가 조선에 침입했을 때의 청군의 군비상황과 부대 배치, 적장의 인적사항 등을 담고 있어 병자호란의 전모를 이해하는 귀한 자료이다. 『남한일기』는 1753년(영조 29)에 광주유수 이기진(李箕鎭, 1687-1755)이 발견하고 사료적 가치를 알아본 후에 등사·배포해 세상에 알려졌다. 따라서 이런 시간대는 『해동휘언』의 서술 연대를 추정하는 좋은 단서가 될 수 있다.
(3) 『소영경력(蘇營經歷)』: 조선후기의 충청수영과 장도상

공충도(公忠道) 수군우후(水軍虞候) 장도상(張度相)이 1868년-1869년 연간에 수군절도사 장후식(張厚植)과 공충감사 민치상(閔致庠)이 승정원에 올린 장계를 비롯해 당시 공충수영의 운영 및 속 진의 실태 등의 충청수영 관련 문서를 모아놓은 책이다.

장도상의 출신지와 생몰연도, 무과 급제 여부 등은 알기 어려우나, 그의 관원 이력은 『승정원일기』에서 살필 수 있다. 장도상은 1843년(헌종 9)에 수문장, 1846년(헌종 12)에 부사과, 1847년(헌종 13)에 무겸, 1849년(철종 원) 3월에 선공주부(繕工主簿), 그해 12월에 사재주부(司宰主簿), 1851년(철종 3)에 훈련판관과 경상좌수우후에 제수되었다. 경상좌수우후를 역임하던 중인 1852년(철종 4) 12월 동래부 용당포에 미국 포경선 사우스 아메리카(South America)호가 표류·정박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장도상이 수하를 시켜 미국 배에 올라 조사하도록 했는데, 이것이 바로 미국과 우리의 최초 접촉이었다. 이후 1853년(철종 5)에 부사과와 무겸, 1865년(고종 2)에 무신 겸 선전관, 1867년(고종 4) 7월에 공충도수영, 즉 소영(蘇營)의 공충수우후가 되었다.

1869년(고종 6) 장도상은 알 수 없는 죄목으로 의금부에 하옥되었다. 장도상이 진술서의 내용대로 지만(遲晩)을 다짐하자 의금부에서는 형추(刑推)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왕은 형추를 금하되 의금부에서 의논해서 처리하라는 명했다. 이로 보아 꽤 중대한 죄목이었던 같지는 않다. 결국 장도상은 법률 검토를 거쳐 태형(笞刑) 50대와 속전(贖錢)을 내고 풀려났다. 장도상에 관한 기록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의 최종 관직은 공충수우후에서 그친 듯하다.
『소영경력(蘇營經歷)』 권수제면
원납전(願納錢) 이야기를 비롯해 귀중한 내용이 적지 않다. 특히 1년 남짓 짧은 기간 동안 이처럼 상세하게 충청수영의 실상을 기록해 놓은 자료는 드물지 않나 싶다.

① 장계
4월 29일부터 12월 22일까지 9차례의 장계가 등장한다. 14-18쪽의 「동월이십구일오시우계(同月二十九日午時又啓)」와 「추동등(秋冬等)」 기사는 남연군묘 도굴사건이 아닌 일반 장계이다. 여기에는 이양선의 출현, 죄수의 공개 처형, 소영에서 실시한 도시(都試)의 결과, 성첩과 군기 수리 이야기가 나온다. 예하 속진의 하나인 평신진의 첨사가 박봉을 털어 군기와 전각 등의 수리비용에 충당했음을 알리는 선계도 보인다.

② 보고서
18쪽의 「무진십이월초십일보진무영(戊辰十二月初十日報鎭撫營)」는 강화에 위치한 진무영에 올리는 보고서이고, 「무진윤사월초이일보순영(戊辰閏四月初二日報巡營)」은 공충감영에 올리는 보고서이다. 모두 공충수영의 상급기관이다. 진무영에 올린 보고서는 1차례인데 정기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공충감영에는 3차례 보고를 올린 것으로 나온다. 두 번째는 군선 제조와 수리에 필요한 작도의 송전(松田) 관리 및 육성, 이를 위반하고 투송(偸松)한 자를 처벌한 기사도 눈길을 끈다. 세 번째 보고서에는 경비 운용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다. 군포 대신에 거두어들인 번전(番錢)의 지출명세서라 할 수 있는데, 지출 항목은 다양하다.

③ 인사
소영 내부의 인사고과라고 할 수 있는 포폄 등급이 나오며, 수군절도사가 상관에게 올리는 사직서도 들어있다. 충청우도 암행어사가 절도사를 평가한 장계도 이 범주에 속한다. 사직서가 2차례가 나온다. 1차에서 허락을 얻지 못하자 다시 사직을 요청했는데, 사직의 이유가 부임한 이래 얻은 바닷가의 풍토병 때문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절도사 장후식은 임기를 마치고 우부승지로 전근한다.
『소영경력(蘇營經歷)』 보고서
동양문고 소장 역사서 자료의 가치
『해동휘언』은 아직까지 국내학계에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는 희귀한 자료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동일한 내용의 책이 소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문 듯하다. 고전운영실 보존 도서 ‘古 2154-23’의 제목이 『해동휘언록(海東彙言錄)』인데, 그 상세 정보를 살펴보면 본 『해동휘언』과 동일한 내용의 책임을 알 수 있다.

대강의 편찬 연대는 본문의 곳곳에서 참고한 20여 종의 서목 검토를 통해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용한 내용의 집일(輯佚) 작업을 통해 이름만 전하고 있는 서책의 일정 부분을 되살리는 부수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모문룡과 유흥조 등의 사적은 『조선왕조실록』, 『비변사등록』, 『승정원일기』와 같은 1차 사료를 통해 대강을 알 수 있으며, 『남한일기(南漢日記)』나 『병자록(丙子錄)』과 같은 여러 문집에도 자세히 실려 있다. 『해동휘언』은 이들 책에 나온 모문룡과 유흥조 형제 관련 기사를 따로 모아놓은 것이다. 날짜순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 연구자들이 이용하기에게 편리하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에 관한 국내의 연구는 많은 연구 성과를 쌓아가고 있지만, 『해동휘언』을 참고자료로 인용한 논저는 아직 없는 것 같다. 『해동휘언』의 첫째가는 가치는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전혀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해동휘언』은 그것들을 선별해 집대성한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소규모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기사본말체 자료이므로, 호란 연구자라면 반드시 참고할 필요가 있다.

『소영경력』은 이제까지 연구자들이 취급하지 않은 자료이다. 기존 연구를 간략히 검색해 본 결과, 관련 연구자들이 지금까지 본 자료를 참고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따라서 앞으로 연구가 기대될 만큼 그 가치는 크다. 간간이 등장하는 이두 표기는 19세기 말의 이두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내용적 가치도 대단히 크다. 무진양요(남연군묘 도굴사건), 조선후기 충청수영의 실태 관련 연구 분야에서 활용할 여지가 상당하다고 본다.
<좌>『해동휘언』 모문룡주사
<우>『해동휘언』 유흥조형제사
참고문헌
계승범, 「일본 동양문고 소장 한국역사 관련 일부 자료 소개」, 2014년 2월 27일 해외한국학자료센터 학술대회 발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