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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클리대학 소장 필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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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클리대 소장 필사본 문집류의 가치
현재 버클리대학에 소장되어 있는 한국본 고서는 활자본, 목판본, 필사본 등 다양한 형태인데, 문집류로 한정하여 볼 때 특히 자료적 가치가 높은 것은 필사본이다. 필사본 문집류 중에서 자료적 가치가 더욱 높은 것은 다음과 같은 네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첫째, 정동유(鄭東愈)의 『현동실유고(玄同室遺稿)』, 김락서(金洛瑞)의 『호고재집(好古齋集)』 등은 국내외에 그 문집이 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둘째, 침악수(沈樂洙)의 『은파산고(恩坡散稿)』, 이광사(李匡師)의 『원교집(圓嶠集)』, 정극순(鄭克淳)의 『연뇌유고(淵雷遺稿)』, 이서구(李書九)의 『척재시습유(惕齋詩拾遺)』 등과 같이 유일본은 아니지만 현재 알려진 문집에 실려 있지 않은 자료가 많아 선본으로 평가할 만하다. 셋째, 이덕수(李德壽)의 『서당선생집(西堂先生集)』, 홍길주(洪吉周)의 『숙수념(孰遂念)』 등과 같은 서유구(徐有榘)의 자연경실(自然經室) 사본은 이본으로서 가치가 높다. 넷째, 유득공(柳得恭)의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 등과 같이 문집의 일부에 해당하지만 선본으로서의 가치가 높은 것들이 있다.
유일본일 가능성이 높은 문집류
(1) 정재륜( 鄭載崙)의 『동평위유고(東平尉遺稿)』

정재륜(1648-1723)의 『동평위유고』는 1책으로 권1은 『동평위유고』이고 권2는 『익효공고(翼孝公稿)』이다. 만사(輓詞)를 위주로 한 시와 주의류(奏議類)를 수록하고 있지만, 문학적으로 특기할 만한 자료는 보이지 않는다. 캘리포니아대학에는 정재륜이 편찬한 『공사문견록(公私聞見錄)』의 여러 이본이 소장되어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에는 회동정씨(檜洞鄭氏)로 일컬어지는 동래 정씨가의 문적이 매우 많은데 정재륜 역시 이 집안사람이다.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소장 『동평위유고(東平尉遺稿)』
(2) 정동유(鄭東愈)의 『현동실유고(玄同室遺稿)』

정동유(1744-1808)는 정재륜의 족손으로, 그의 문집 『현동실유고』가 유일본으로 소장되어 있다. 건곤 2책으로 되어 있는데 건책에는 시가 실려 있고 곤책에는 산문이 실려 있다. 곤책에는 권두에 목록이 실려 있지만 건책에는 목록이 실려 있지 않다.

정동유의 시는 대부분 집안의 어른이나 형제, 그밖에 정지검(鄭志儉), 정동원(鄭東元), 정대용(鄭大容) 등 집안사람이나 박지원(朴知源), 이천익(李天翊), 이영익(李令翊), 신대우(申大羽) 등의 벗들과 어울려 지은 일상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그의 시는 대체로 이 시기 문인의 일반적인 한시의 특징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흔하지 않은 사를(詞) 다수 짓기도 하고 이 시기 새롭게 부각된 육언절구(六言絶句)도 지었다. 정동유의 한시는 수식을 억제하고 사실을 적시하는 주지적인 계열의 것이 특히 높게 평가할 만하다. 정동유는 인명체(人名體), 팔음시(八音詩), 약명시(藥名詩), 건제시(建除詩), 괘명시(卦名詩), 십이진체(十二辰體), 이십팔숙시(二十八宿詩), 은명체(隱名體), 자일지십체(自一至十體), 옥련환체(玉連環體), 회문시(回文詩), 집구시(集句詩) 등 다양한 잡체시(雜體詩)를 제작하였고, 생활 주변의 식물이나 기물을 소재로 한 연작시를 제작한 것도 그의 시세계의 한 특징으로 들 수 있다.

그의 산문은 일반 문집처럼 서, 발, 기, 설, 제후, 묘지명, 잠, 명 등 다양한 산문이 실려 있는데 사실을 변증하는 글이 많다는 점이 주목되며, 이러한 글의 상당 부분이 『주영편(晝永編)』에 실려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글도 제법 있다는 점에서 정동유의 학문을 논할 때 반드시 이 문집을 참고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자음왕복서(字音往復書)>이다. 이 글은 30조목에 걸쳐 성운학(聲韻學)에 대한 왕복서한을 기록한 것인데, 부전지에 “여윤성주광수왕복(與尹星州光垂往復)”이라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성주목사로 있던 윤광수(尹光垂)와 토론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윤광수가 훈민정음에 대한 책을 편찬하였는데 이에 대한 왕복의 토론서한이다. 정인보가 正音을 따진 남에게 준 선생의 편지를 찾아내었다고 한 것이 바로 이 글을 가리킨다. 윤광수는 1786년 혜릉참봉, 1795년 전주판관, 1800년에 신천군수 등을 지낸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서영보(徐榮輔)와 비교적 친하여 수창한 시가 전하지만, 그의 저술이 전혀 전하지 않아 자세한 학문을 알기는 어렵다. 다만 정동유의 <자음왕복서(字音往復書)>를 볼 때 훈민정음에 대한 저술 『정음연(正音演)』을 편찬하였기에 이를 두고 정동유와 학술적인 토론을 벌인 것임을 알 수 있다.

글에는 방조이자 스승인 윤증(尹拯)의 성운에 대한 학설을 기본으로 하면서 최석정(崔錫鼎)의 『경세정운(經世正韻)』, 신경준(申景濬)의 『훈민정음운해(訓民正音韻解)』, 남극관(南克寬)의 『몽예집(夢囈集)』 등 소론가의 성운학에 대한 저술을 다양하게 검토하고 있다. 최세진(崔世珍)의 『사성통해(四聲通解)』에 대해서도 자세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이에 대한 윤광수의 답도 함께 실었다.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소장 『현동실유고(玄同室遺稿)』 중 「자음왕복서(字音往復書)」
캘리포니아대학에는 정동유의 또 다른 저술 『한고동(閒古董)』이 소장되어 있는데 다른 곳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유일본이다. 1책의 필사본인 이 책은 ‘정동유(鄭東愈)’라 새긴 주인(朱印)이 찍혀 있어 정동유가 수택본임을 알 수 있다. 도종의(陶宗儀)의 『철경록(輟耕錄)』, 주량공(周亮工)의 『인수옥서영(因樹屋書影)』, 왕사진(王士禛)의 『지북우담(池北偶談)』 등 3종의 필기를 초록한 것이다. 18세기 이후 조선의 문인들이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문물과 제도의 장고에 대한 지식을 축적하는 한편 서화 고동을 즐기면서 은일의 삶을 추구하고자 한 삶을 반영한 것이라 할 만하다. 중국의 서적을 초록하여 새로운 지식으로 만드는 작업은 우리나라에서 17세기 허균의 『한정록(閑情錄)』에서 본격화되는데, 『한고동』이 이를 이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임거사결초략(林居四訣抄略)』 역시 이와 유사한 성격의 책이다. 이 책은 유언호(兪彥鎬)가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동파지림(東坡志林)』, 『진미공비급(陳眉公秘笈)』 등 당시 유통되기 시작한 중국 필기를 달(達), 일(逸), 지(止), 적(適) 네 부류로 나누어 뽑아 실었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확인할 수 있다.
(3) 정기용(鄭耆容)의 『요암유고(蓼庵遺稿)』

정기용(鄭耆容, 1776-1798)은 자가 낙첨(洛詹), 호는 요암(蓼庵)으로 정경순(鄭景淳)의 손자이며 정동기(鄭東驥)의 아들이므로 정동유에게는 당질이 된다. 정기용의 생애는 『현동실유고』의 <종질학생묘지명(從姪學生墓誌銘)>에 자세한데 같은 글이 『요암유고』의 권수에도 수록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효성이 지극하고 문학에 뛰어났으며, 문집과 다른 저술 십수 권이 있었는데 죽을 즈음에 남기기에 부족하다면서 불에 집어넣었다고 한다.

『요암유고』의 가치는 18세기부터 크게 유행한 소품문의 새로운 작가로 정기용을 발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특히 가죽의 문양을 곱게 하기 위해 칩거하던 범이 배가 고파 나왔다가 사냥꾼에게 잡혔다는 내용과 사냥꾼을 보고 놀라 날아오른 꿩은 죽고 가만히 숨어 있던 꿩은 살아남았다는 내용의 <우언(寓言)>, 같은 쇠를 가지고 만들지만 어떤 것은 밥그릇이 되고 어떤 것은 요강이 되는 사실을 두고 쓴 <뇨항설(尿缸說)>, 남산에 있던 강세황이 경영하고 손자 강이천이 거주하고 있던 무한경루를 유람하고 쓴 <유무한경루기(遊無限景樓記)> 등은 문학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소장 『요암유고(蓼庵遺稿)』 중 「우언(寓言)」
(4) 김낙서(金洛瑞)의 『호고재집(好古齋集)』

김낙서(1757-1825)는 자가 문초(文初), 호가 호고재(好古齋)이며 규장각 서리를 지낸 중인으로, 송석원시사의 일원이었다. 『이향견문록』, 『풍요삼선』 등에 일부 그의 시가 수록되어 있지만 문집은 이것이 유일하다. 『호고재집』은 필사본 4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이나 제문 등을 통하여 위항인의 삶을 기록한 것이 특히 가치가 높다.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소장 『호고재집(好古齋集)』 중 「북정록(北征錄)」
선본으로서의 가치를 지닌 문집류
(1) 정극순(鄭克淳)의 『연뇌유고(淵雷遺稿)』

정극순(1700-1753)은 자가 경인(景仁), 호는 연뢰(淵雷)이다. 정극순은 정각선(鄭覺先)의 손자로 생부는 정석부(鄭錫敷)인데 숙부 정석징(鄭錫徵)의 후사로 들어갔다. 회덕현감, 화천현감, 평양서윤 등을 지낸 것은 알 수 있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정극순의 문집은 캘리포니아대학교 외에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지만, 무엇을 선본이라 하기 어렵다. 3책으로 되어 있는 캘리포니아본이 시와 문을 두루 싣고 있으며, 단정한 해서체로 필사되어 있고, 교정을 반영하여 종이를 오려붙여 수정을 가하였다는 점에서 그래도 선본에 가깝다.

필자 미상으로 되어 있는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연뢰재유고』는 1책의 필사본으로 시와 산문을 포괄하고 있지만, 캘리포니아본보다 수록 작품의 수가 훨씬 적다. 그러나 캘리포니아본에 수록되어 있지 않은 시문도 제법 된다. 규장각본은 『서윤공유고(庶尹公遺稿)』로 제목이 되어 있는데 역시 필사본이며 3책으로 되어 있다. 시를 전혀 수록하지 않고 산문만 실었는데 캘리포니아본에 보이지 않는 글이 여러 편이다.

정극순의 시는 그리 많지 않지만 상당한 수준에 오른 것으로 평가된다. 오언절구와 고풍에 능하였으며, 인정물태를 낭만적으로 그린 작품 중 수작이 제법 있다. 『연뢰유고』에 실린 산문 중에 특히 회화사에서 자료적 가치가 높은 것이 제법 많다.

김명국의 <금화질석도(金華叱石圖)>, 궁중 화원인 함세휘와 함도홍를 대상으로 한 <함세휘전(咸世輝傳)>, 석양정 이정의 화첩에 대한 <석양군전가첩서(石陽君傳家帖序)>, 1748년 정선이 정극순에게 그려준 관동의 산수화에 대한 <해산십승화첩서(海山十勝畵帖序)>, 서양화를 논의한 <서양화기(西洋畵記)>, 화가 변상벽에 대한 전기 <변씨화기(卞氏畵記)> 등이 그러한 예이다. 또 중국보다 뛰어난 매화 분재에 대한 <이소매기(二小梅記)>도 조선후기 문인의 원예 취향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글이다.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소장 『연뇌유고(淵雷遺稿)』 「서양화기(西洋畵記)」
(2) 이광사(李匡師)의 『원교집(圓嶠集)』

이광사(1705-1777)의 문집 『원교집』은 10권 6책의 필사본이다. 캘리포니아대학에 소장되어 있는 『원교집』은 이광사의 전 생애에 걸친 시문이 가장 균형 있게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가장 선본의 문집이라 할 만하다. 제1책은 표지 상단 우측에 ‘용진원교(龍津員嶠)’라 적혀 있는데, 본문은 ‘용진집(龍津集)’과 ‘원교집(員嶠集)’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광사는 부친상을 치른 후 1730년 가족을 이끌고 양근의 용진에 내려가 살았는데 이때부터 1732년까지의 시가 「용진집」에 실려 있다. 「원교집」에는 1732년부터 1753년까지의 시문이 수록되어 있다. 표제에는 ‘員嶠集’이라 하였지만 내제에는 ‘圓嶠集’으로 되어 있다. <원교설(圓嶠說)>을 지은 것은 1752년 3월 3일이지만 「원교집」으로 볼 때 1732년 무렵부터 원교에 살기 시작한 듯하다.

『원교집』은 1773년 1월 숙형 이광정(李匡鼎)이 세상을 떴는데 2월에 이광사가 부고를 받고 제문을 지을 때까지의 글만 실려 있다. 이에 비하여 『원교집선』에는 <백수신공인묘지명(伯嫂申恭人墓誌銘)>과 <제백수신부인문(祭伯嫂申夫人文)>, <숙형애수선생기실문(叔兄艾叟先生記實文)> 등 1773년 이후 1775년까지의 작품 몇 편이 더 실려 있다. 백수가 1773년 4월 죽고 이광사가 5월에 부고를 받아 제문을 지어 서울에 있던 둘째 아들 이영익에게 보내어 조상하게 하였다. 완성된 『원교집』이라면 이들 글까지 당연히 포함하였을 것이므로, 『원교집』은 1773년 2월에서 5월 사이에 필사가 완료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원교집』에는 그간 알려져 있지 않던 이광사의 시문을 상당수 수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 규장각본 『두남집』처럼 『원교집』은 대부분의 작품에 창작 연월일이 명기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학술적 가치가 높다. 특히 이광사의 가족에 대한 애정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 중 상당수가 『원교집』에만 실려 있다.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소장 『원교집』 중 「유유인망일제문(柳孺人亡日祭文)」
이광사는 죽은 부인에 대한 회한이 워낙 컸기 때문에 부인에 대한 글을 많이 지었다. 이광사는 부인의 망일인 3월이 되면 거듭하여 제문을 지었다. 특히 『수북집』에는 1763년, 1764년 지은 <유유인망일제문(柳孺人亡日祭文)>이 실려 있고 또 1767년 5월26일에는 부인의 무덤을 개장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은 <망실유씨개장제문(亡室柳氏改葬祭文)>도 수록되어 있다. 이광사는 부인 이외에도 가족과 관련한 글을 많이 지었다. 젊은 날의 시문을 모은 『용진집』과 『원교집』의 산문은 대부분이 가족이나 벗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특히 『수북집』에는 그의 형 이광정 등 그의 가족과의 사랑을 절실하게 적은 글이 상당수 실려 있다.

이와 함께 이 책은 서예사적 가치가 높다. <이청강묵적후발(李淸江墨跡後跋)>에 따르면, 이제신(李濟臣)이 지은 이언적(李彦迪)의 강계사묘(江界祠廟)의 기문 초본과 성혼(成渾)이 이이(李珥)의 왕복서한에 붙인 평론을 벗 이덕윤(李德胤)이 비단으로 장황하여 1책을 만들고 그 아래 빈 종이를 붙여 이이가 성혼에게 답한 편지를 이광사의 글씨로 쓰게 하여 「이청강묵적(李淸江墨跡)」을 만들게 된 것이라 한다.

그밖에 문헌과 관련한 것으로는 1764년 지은 <관서사가유합(觀徐四佳類合)>이 크게 주목할 만하다. 서거정이 『천자문』처럼 한자를 나열하고 한글로 뜻을 풀이한 책이 조선후기까지 왕실에서부터 사대부가에서 널리 읽혔다. 물론 유희춘(柳希春)의 『신증유합』과 별개의 책이다. 자학(字學)에 관심이 높았던 이광사였기에 『유합』을 읽고 그 오류를 지적하였다. 여러 도서관에 『유합』이라는 제목의 고서를 찾을 수 있는데, 그 중 이광사가 지적한 것과 동일한 내용의 책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편자 미상으로 되어 있는 상당수의 『유합』은 본문을 검토하여 이러한 내용이 수록된 것이면 그 편자를 서거정으로 표기해야 할 것이다.
(3) 이덕무(李德懋)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이덕무(1741-1793)의 『청장관전서』는 정고본이라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경암(絅菴)’, ‘이원수인(李畹秀印)’, ‘이덕무자(李德懋子)’, ‘혜릉씨(蕙陵氏)’ 등의 장서인이 날인된 것으로 보아 이덕무 집안에 전승되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고선책보(古鮮冊譜)』에 아사미가 수집한 것을 본 적이 있다 하였는데 이 책으로 추정된다. 전체 71권 32책 중에서 현재 57권 26책이 전한다. 각 권의 권미에 필사기가 있는데 이에 따르면 순조 9(1809)년 봄부터 1810년 여름 사이에 필사하였으며, 이덕무의 벗인 리한술(李漢述)의 아들 이원수(李畹秀)가 중심이 되어 20여 인이 동원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규장각본은 일제강점기 이 책을 필사한 것으로 오탈자가 제법 있어 이 책을 가장 선본으로 보아야 한다.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소장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4) 이서구(李書九)의 『척재시습유(惕齋詩拾遺)』

이서구(1754-1825)는 왕실의 후손이며 명문가의 후예로, 판서를 지냈고 나아가지는 않았지만 우의정에까지 임명되었으니 결코 불우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의 문집은 인쇄된 판본은커녕 필사본조차 온전하게 전하지 않는다. 지금 전하는 이서구의 문집으로는 『강산초집(薑山初集)』, 『척재집(惕齋集)』, 『강산시집(薑山詩集)』, 『척재유고(惕齋遺稿)』 등이 알려져 있다.

캘리포니아대학에 소장된 이서구의 저술 중 가장 소중한 것은 『척재시습유』다. 『강산전서』에 이 이름의 시집이 전하지 않거니와 수록된 작품 자체가 기왕의 것과 완전히 다르다. 권두에 ‘此心映到湖心月’, ‘映湖鼎湖’, ‘石顚山人’ 등의 장서인이 찍혀 있어 승려 박한영(朴漢永)이 소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척재집』에 실리지 않은 작품을 따로 모은 것으로 1777년 이후의 작품들과 1777년 이전의 작품 가운데 『척재집』에 누락된 연작시들을 모은 문집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소장 『척재시습유(惕齋詩拾遺)』
『강산초집』에 보이지 않는 일부 작품은 자연경실장본(自然經室藏本) 『강산시집』과 『백학산초소급』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척재집』 계열 중 가장 이른 것으로 알려진 수경실 소장본과 겹치는 것이 없다는 점이 주목된다. 제목이 같은 작품이 더러 있지만, 작품의 내용은 전혀 다르다. 연작시의 경우에도 동일한 작품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척재시습유』는 『척재집』에서 누락된 한시를 모은 것으로 추정된다. 『강산초집』 등에는 20대의 작품을 모았기 때문에, 20대 이후의 작품 중에도 『척재집』에 수록되지 않은 작품은 『척재시습유』에만 수록된 것이라 보아야 할 듯하다. 『척재집』에 동일한 제목의 작품이 있지만 내용이 전혀 다른 작품이 『척재시습유』에 수록된 예가 많은데 이들 역시 대부분 누락된 연작시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이종묵, 「필사본(筆寫本) 문집류의 자료적 가치」, 2011년 4월 29일 해외한국학자료센터 학술대회 발표문.
이종묵, 「버클리대학 소장 이서구의 시집에 대하여」, 『문헌과해석』 통권42, 2008
오용섭, 「청장관전서 정고본의 서지적 연구」, 『서지학연구』 제39집, 2008
이종묵, 「버클리대학 소장 『원교집』에 대하여」, 『문헌과해석』 통권38호,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