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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7-1787년 아산(牙山) 남면(南面) 지역 토지매매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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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들은 18세기 초반 아산현(牙山縣) 남면(南面)의 토지매매와 관련한 문서로서 ①1777년 이삼철(李三鐵)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②1787년 윤해주댁(尹海州宅) 노(奴) 세재(世才)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등 총 2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문서들은 18세기 초반 아산현(牙山縣) 남면(南面)의 토지매매와 관련한 문서로서 ①1777년 이삼철(李三鐵)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②1787년 윤해주댁(尹海州宅) 노(奴) 세재(世才)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등 총 2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1777년 이삼철(李三鐵)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조선후기 아산현은 충청도 아산만 일대에 위치하여 서해바다로 통하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이로 인해 아산현에는 조창(漕倉)이 설치되어 충청도 일대에서 생산되는 세곡을 모아 중앙까지 올려 보내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군사적으로는 홍주진관(洪州鎭管)에 편제되어 절제도위(節制都尉)가 관할하는 지역이었다. 아산현 남면은 읍치 남쪽으로 신창과 온양에 인접한 지역으로서 전답이 넓게 소재하고 있었다.
①번 문서는 이삼철(李三鐵)이 노(奴) 삭불이(朔不伊)에게 토지를 사면서 받은 매매명문이다. 이 명문에는 토지의 소유경위와 위치, 면적, 매매가격 등이 기록돼 있다. ②번 문서는 10년 후 이삼철이 위 토지를 다시 매매하고 발급한 매매명문이다. 두 문서에서는 토지의 매매 가격이 10년 만에 동전 25냥에서 20냥으로 크게 하락한 점이 주목된다. 두 문서는 18세기 후반 토지매매 방식과 시세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순서

자료명

발급

수취

1

1777년 이삼철(李三鐵)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노(奴) 삭불이(朔不伊)

이삼철(李三鐵)

2

1787년 윤해주댁(尹海州宅) 노(奴) 세재(世才)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이삼철(李三鐵)

노(奴) 세재(世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