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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킨조우(渡邊金造, 1874~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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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소개
와타나베 킨조우(渡邊金造, 1874~1965)는 본래 군인 출신으로 1897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이후 육군 중장으로 퇴직할 때까지 군인으로 재직하였다. 퇴직 이후에는 사전(史傳) 연구자이자 사이타마현(埼玉県)의 향토사 연구가로도 활동하였고 장서가로도 유명하였다. 그는 현역 군인 시절 대만과 조선 등에 체류하였는데, 한국 고서적 수입은 조선 체류 기간 중에 이루어진 것이다.
와타나베 킨조우는 1928년에 퇴직을 하고 사이타마현으로 이주하여 ‘도우수이(刀水)’라는 호를 짓고 평생을 역사 연구에 몰두하였다. 특히 사이타마현의 국학 · 한학자, 승려, 문인 등의 전기 연구에 뜻을 두고 이들의 서간 자료를 다수 수집하였으며, 그 자료들을 바탕으로 개별 인물전을 작성하였다. 1931년부터는 사이타마향토회의 『사이타마사담(埼玉史談)』을 시작으로 역사 관계 잡지에 자신의 글을 투고하였다. 또 『안도우 누카리(安藤野雁)』, 『하토가야 산시(鳩ヶ谷三志)』, 『히라다 아츠타네 연구(平田篤胤硏究)』 등 국학자들의 전기를 단행본으로 출간하기도 하고, 사이타마현 관련 학자 등 320여 명의 저작을 저자별로 집대성한 『사이타마명가저술목록(埼玉名家著述目錄)』을 1941년에 사이타마현립(埼玉縣立) 도서관에서 출간하기도 하였다. 현재 와타나베의 논문 및 저술을 모은 저작집이 ‘일본서지학대계’ 시리즈 중 하나인 『와타나베도우수이집(渡邊刀水集)』 전 5책으로 간행되어 있어 참조할 수 있다.
와타나베의 한국고문헌 수집
와타나베가 수집한 조선본 자료들은 대부분 러일전쟁 이후 1906~1908년까지 즉 그가 제십삼사단참모(第十三師團參謀)로서 조선에 체류하던 시기에 수집된 것이다. 그 후 와타나베는 1922년에 보병제사십여단장(步兵第四十旅團長)이 되어 조선에 다시 부임했는데, 게이오대학에 와타나베문고가 기탁된 것이 1917년이라는 점에서 미루어볼 때, 그의 조선본 서적들은 1906~1908년에 체류할 당시 수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조선 고서 자료 수집은 1910년 한일합병이 이루어지기 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상당히 이른 시기에 진행된 일이었다. 일본인들은 식민지 기간에 한국의 고전적과 문화재 수입에 집중하였는데, 서적 수집은 1937년에 설립한 ‘서물동호회(書物同好會)’의 활동에서도 살필 수 있듯이, 1945년 해방 직전까지 꾸준히 진행되었다.
와타나베문고의 성립
게이오주쿠(慶應義塾)대학은 일본 도쿄에 있는 사립대학으로 ‘게이오대학’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최고 명문 사립대학교 중 하나이다. 게이오대학교의 전신은 1858년 설립된 ‘난학숙(蘭學塾)’으로 서양의 학문을 가르치던 곳이며 설립자는 일본 근대의 대사상가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이다. 1868년 학교 이름을 ‘게이오기주쿠’로 바꿨는데, ‘게이오’는 당시 일본의 연호였고 ‘기주쿠’는 ‘기숙학교’라는 뜻이다. 이 게이오대학 귀중본 서고에 있는 ‘와타나베 도우수이(渡邊刀水) 문고’에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한국의 고전적이 소장되어 있다. 조선본 전부를 귀중서, 준귀중서로 지정하여 보관 중인데, 귀중서는 신도서관 5층 귀중서실에, 준귀중서는 구도서관 지하 1층의 별실에 보관 중이다.

와타나베가 게이오대학에 장서를 기탁하게 된 배경을 보면, 당시 게이오대학 도서관의 초대감독인 다나카 카즈사다(田中一貞) 씨가 도서관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도서를 수집하고 기증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짐작된다. 최초에 기탁된 이후 오늘날의 와타나베문고가 성립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지만, 『게이오주기쿠도서관사』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1917년 와타나베 킨조우 소장 조선본 346책, 화가서(和歌書) 1,700여 책의 위탁이 있었다. 와타나베는 도우수이가 호이고, 당시 육군중좌였으며 대단한 장서가로서 이 분야의 저명한 인물이었다. 화가서 전부와 조선본 일부는 후에 구입하였다.

이에 따르면 기탁된 책들 중 일부는 후에 도서관에서 구입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재 게이오대학 도서관에는 와타나베문고와 관련하여 『와타나베문고보관도서목록(渡邊文庫保管圖書目錄)』(비공개 자료), 『도서급물품목록와타나베문고소장(圖書及物品目錄渡邊文庫所藏)』, 『화양목록와타나베외교문고(和洋目錄渡邊外交文庫)』 세 가지 목록이 있는데, 이 중에서 첫 번째 목록이 조선본 목록이며, 그 목록에 기록된 책들 대부분이 게이오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와타나베문고 소장 한국 고문헌의 특징
와타나베문고에는 조선통신사 관련 고문서 자료가 다량 소장되어 있다. 특히 「대마종가문서(對馬宗家文書)」와 「조선선입진지도(朝鮮船入津之圖) · 조선역관행렬지도(朝鮮譯官行列之圖)」 등이 중요한데 「대마종가문서」의 경우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그 자료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대마종가문서」는 쇄국시대 조선과의 외교무역을 독점적으로 담당했던 쓰시마번〔현 나가사키현(長岐縣)〕의 『번정일기(藩政日記)』 등 1634년에서 1898년에 이르기까지 260년에 이르는 양국의 교류활동 기록을 담은 방대한 자료를 이르는 말이다.

게이오대학 외에도 난키문고(南葵文庫, 동경대학사료편찬소, 약 3,000점), 큐슈(九州) 국립박물관에 약 14,000점(문화청 편, 『대마종가관계자료목록』), 나카사키현립대마역사민속자료관에 약 36,000여 점, 국립국회도서관에 약 28,000점(『대마도종가문서기록류목록집』 · 『대마도종가관계문서-서계목록집(書契目錄集)』 Ⅰ~Ⅴ · 『대마도종가고문서목록집』 Ⅰ~Ⅱ〕, 동경국립박물관에 약 160점 등이 소장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큐슈국립박물관, 국립국회도서관, 게이오대학도서관 소장 자료들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게이오대학에는 총 1,523점의 문서가 소장되어 있다. 천화(天和, 1681~1683)~문화(文化, 1804~1817) 연간의 「신사기록(信使記錄)」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정보(正保, 1644~1647)~명치(明治) 시기의 「조선왕복서(朝鮮往復書)」가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다. 그 외에도 「회장공(廻章控)」, 「제촉달구(諸觸達扣)」, 「공의피앙상(公儀被仰上)」, 「절지단문서(切支丹文書)」 등이 있다.
그 밖에 게이오대학 문학부 고문서실에는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입국할 당시 배가 들어오는 장면과 역관들의 행렬을 담은 그림으로 「조선선입진지도 · 조선역관행렬지도」도 소장되어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와타나베문고의 한국 고전적은 83종이다. 와타나베문고 이외에도 게이오대학 ‘귀중서’ 중에는 한국 고서가 일부 소장되어 있다. 『게이오주기주쿠도서관화한귀중서목록(慶應義塾圖書館和漢貴重書目錄)』(게이오기주쿠도서관, 2009)의 목록에 나온 한국 고서들을 보면, 와타나베문고 이외에도 코우다문고(幸田文庫), 타키모토문고(瀧本文庫) 등 여러 문고 안에 조선본이 일부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자료는 ‘귀중서’ 목록에 포함될 정도로 자료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