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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다노부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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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소개
오카다 노부토시(岡田信利, 1857~1932)는 일본의 동식물학자이다. 1891년 농상무성(農商務省) 수산국(水産局)의 기사로 임명되어 동경을 시작으로 일본 각지의 수산 생물의 분류·분포를 조사하고 번식과 양식 기술 연구에 종사했다. 1895년 이학박사학위를 수여받았고 이듬해 청일전쟁이 종결된 때부터 러일전쟁이 종결된 1905년까지 만주, 베르겐, 사할린 등을 돌아다녔고, 이후로도 일본의 어업 정책에 깊이 관계하였다. 1908년에는 1907년에 설립된 동경제대 농과대학 수산학과에 교수로 임명되었다. 이후 우리나라에 머물며 조선의 농상공부(農商工部) 사무촉탁을 시작으로 이왕직(李王職: 일제강점기에 이씨 왕실과 관련한 사무 일체를 담당하던 기구) 동물원 기사 등을 지냈다. 1916년에 일본으로 돌아간 이후 1928년에 정년퇴임하였고, 1932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주된 학문적 관심 분야는 동물 분류학이었다. 육상 동물뿐만 아니라 조류(鳥類), 어류(魚類)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학문적 성취가 있었으며, 이와 관련한 전문적인 저술을 남기고 있다.
[사진1] 『岡田信利氏藏書目錄』 소재
한국에서의 활동
여러 관련 기록으로 미루어볼 때, 오카다가 우리나라로 건너온 때는 한일 강제 합병 직적인 1909년으로 보인다. 이해 7월 27일 『승정원일기』의 기록에 따르면 그에게 어원(御苑) 사무국 사무를 촉탁했다고 하였다. 여기서 어원은 동물원, 식물원, 박물관의 성격을 겸하여 1908년에 설립한 기관으로서 훗날 창경원(昌慶苑)의 전신에 해당한다. 이후 1911년 2월에 그를 이왕직(李王職) 기사(技師)에 임용한 기록이 있다. 이때부터 창경원의 동물원 기사직을 맡아서 업무를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록에는 1914년에 특히 동물원 관리 및 동물 조사와 관련한 다양한 기록이 보인다.
기사(技師) 오카다 노부토시[岡田信利]를 파견하여 경기도(京畿道) 내에서 1년간에 야생 조수와 새집, 새알 등을 수집해서 이왕직(李王職) 동물원에서 키워 공중의 관람 및 학술연구 자료로 삼도록 하였다. (순종실록부록, 순종 7년(1914) 5월 7일)
이왕직 기사(李王職技師) 오카다 노부토시[岡田信利]를 토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및 교토동물원[京都動物園]에 파견하여 동물원에서 기르는 동물의 질병 원인 및 생육과 사육 방법을 조사 연구하도록 명하였다. (순종실록부록, 순종 7년(1914) 5월 27일)
동물원 기사(動物園技師) 오카다 노부토시[岡田信利]를 수원군(水原郡) 화산(花山)에 보내어 해당 동물원의 야수(野獸)를 키우는 데 적합한 땅인가를 알아보도록 명하였다. 이어서 수시로 출장 가도록 하였다. (순종실록부록, 순종 7년(1914) 9월 15일)
우리나라 최초의 동물원은 창경원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가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목을 구실로 삼아 식물원과 동물원을 창경궁에 설치하였는데, 동식물학자인 오카다가 이곳 관리의 총책임을 맡았던 듯하다. 오카다는 동식물원의 관리를 맡는 한편 우리나라의 동식물에 관한 연구를 지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의 활동은 1916년까지 지속되었다. 매일신보 1916년 6월 14일자에서는 따르면 전 동물원 기사인 오카다의 송별회가 열린다는 기사를 전하고 있다.
[사진2] 매일신보 1916년 6월 14일자 2면 기사. “岡田 前技師 送別會”
이왕직(李王職) 기사(技師) 오카다 노부토시씨가 이번에 사직하고 귀국함에 따라서 석별의 뜻을 표하기 위해 중앙시험소장(中央試驗所長) 도요타(豊田) 박사, 고등법원(高等法院) 아사미(淺見) 판사, 오타(太田) 시학관(視學官), 오다(小田) 편집과장(編輯課長), 오카(岡) 고등보통학교장(高等普通學校長), 사사키(佐佐木) 고등여자보통학교(高等女子普通學校) 교유(敎諭) 등 여러 명이 의견을 내어 14일 오후 6시에 경성호텔로 오카다씨를 초대하여 송별회를 개최한다고 함. (매일신보 1916년 6월 14일, 3면 / 현대어로 윤문)

오카다는 1909년 우리나라로 들어와서 주로 기사(技師)의 직책으로 왕실 직속 창경원의 동물원과 식물원을 관리하는 전문 업무를 맡았다가, 1916년에 일본으로 귀국하였음을 알 수 있다. 위의 송별회 기사에서 거론된 인물 가운데 각별히 주목해야 하는 인물은 바로 고등법원 판사로 재직하고 있던 아사미 린타로(淺見倫太郞, 1869-1943)이다. 아사미는 약 1,000종 4,000책 규모의 우리 고문헌을 수집한 장서가로 잘 알려져 있다. 아사미는 고문헌을 모으고 장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당시 우리나라에 머물고 있던 여러 일본인 학자들과 공사(公私)의 교유를 가지고 있었다. 오카다 역시 아사미와 학술적 교유를 맺고 있었던 인물임을 확인할 수 있으며, 오카다의 한국 고문헌 수집 활동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사진3] 『서서서목초본(西序書目草本)』 / 버클리대 소장본(소장처 청구기호: 25.3) 권말 필사기
위의 사진은 오늘날 미국 버클리대에 소장되어 있는 아사미 컬렉션 가운데 하나로 규장각 소장 도서의 목록집인 『서서서목초본(西序書目草本)』이라는 자료이다. 붉은 글씨로 적은 필사기(筆寫記)에는 “이상 오카다 노부토시씨의 소장본을 빌려 보고 對校를 마쳤다. 대정 원년(1912) 9월 9일에 남산 아래 정씨 집안의 관사에서. 아사미 린타로.(以上借觀岡田信利氏所藏本對校畢 大正元年九月九日南山之下鄭家洞官舍 淺見倫太郞)”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 자료가 본래 오카다가 소장하고 있던 목록집을 빌려 필사의 방법으로 새로 만든 자료임을 확인할 수 있다.
장서 목록
앞서 언급했듯이 오카다의 전공은 동식물학이었다. 조선에 머무는 기간 동안에도 주로 이 관심분야를 중심으로 많은 문헌을 수집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장서목록은 1933년 이마무라 유타카[今村豊]에 의해 『강전신리씨장서목록(岡田信利氏藏書目錄)』이라는 제목으로 경성에서 간행되었다.
[사진4]『岡田信利氏藏書目錄』 중 조선본 부분
목록집에는 일본서인 화본(和本) 489종 1083책, 조선본(朝鮮本) 47종 113책, 중국본(支那本) 90종 225책, 낱장이나 축 단위로 세는 매축물(枚軸物) 31점 등 총 626종 1,421책 31점의 자료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일본서로 분류되어 있는 자료 가운데 실은 조선본인 경우가 적지 않으며, 그가 소장했던 것이 확실했던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이 장서목록에는 빠져 있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조선본의 경우 이 목록집에 실려 있는 47종 113책보다 몇 배 큰 규모로 수집했을 것으로 보인다. 목록집의 서문에 따르면 그의 장서는 도호쿠제국대학(東北帝大) 도서관의 가리노 문고[狩野文庫]에 일부가 소장되어 있고, 동경대 도서관에 일부가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