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해외소장기관 > 개인수집가

시데하라 다이라(幣原坦, 1870-1953)

가+ 가-

인물 소개
시데하라 다이라(幣原坦, 1870-1953)는 역사학자이자 교육 관료로 잘 알려져 있다. 오사카부 카도마시 출신이다. 1893년에 동경대학 국사과를 졸업하였다. 평생에 걸쳐 동양사 전반에 걸친 연구를 진행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조선사(朝鮮史)를 깊이 연구하였다. 아울러 일본의 식민지 행정 체계를 수립하고 식민지 교육을 추진한 교육 관료로 앞장서서 활동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수집했던 우리나라의 고문헌은 현재 일본 동양문고(東洋文庫)에 소장되어 있다.
한국에서의 활동
시데하라는 1900년에 처음으로 한국에 발을 디딘 것으로 보인다. <주한일본공사관기록(駐韓日本公使館記錄)>을 보면 1900년 11월에 시데하라의 봉급 협상과 여비 지급에 관한 논의가 있고, 같은 해 12월에 한국의 중학교에 초빙된 시데하라의 출발 여비 금 200원에 대한 지급을 마쳤다는 기록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후 약 5년간 중학교 교사로 근무를 하다가 1905년부터 학부(學部)의 학정참여관(學政參與官)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의 교육 행정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 일제의 식민지 초기 교육 정책의 입안을 담당한 셈이다. 이후 1906년 일본으로 돌아간 후에는 문부성의 고위 관료로 재직하였고, 1910년에는 동경대학의 교수로 부임하여 조선사 강좌를 담당하였다.
그는 1900년부터 1906년까지 우리나라에 체류하면서 학교 행정 기획을 주관하고 교과서를 일본어로 편찬하는 사업에 관여하였다.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한 저술도 다수 남겼다. 그는 특히 조선시대의 정쟁(政爭) 문제에 주목하였는데, 조선의 역사를 당쟁의 폐단을 부각시키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교사로 재직하는 동안 틈틈이 역사 관련 고문헌을 수집하였으며, 그 자료를 바탕으로 1907년에 동경대학에서 『조선정쟁지(朝鮮政爭志)』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 구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양문고와 시데하라 다이라
시데하라가 수집한 장서는 1941년 9월 1일에 동양문고(東洋文庫)에 일괄적으로 기증된 것으로 보인다. 시데하라 기증본에는 기증지(寄贈紙)가 함께 붙어 있어서 쉽게 파악할 수가 있다. 총 175종 570책의 규모인데, 역사학을 전공한 인물답게 역사와 지리 관련 자료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동각잡기(東閣雜記) / 현 동양문고 소장
오른쪽에 쇼와16년(1941)에 기증한 기증지가 있고, 왼쪽에 시데하라가 사용하던 장서인이 날인되어 있다.
시데하라 다이라의 동생인 시데하라 키쥬로(幣原喜重郞, 1872-1951)는 동양문고의 설립자인 이와사키 히사야와의 매제(妹弟)이기도 하며, 1947년에 동양문고 이사장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따라서 시데하라가 동양문고에 도서를 다량으로 기증한 배경에는 이와 같은 두 가문의 구연(舊緣)이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데하라가 사용한 장서인 3종. 왼쪽부터 '폐원도서(幣原圖書)', '폐원탄인(幣原坦印)', '폐원도서(幣原圖書)'이다. 맨 왼쪽 장서인을 가장 많이 사용하였다.